3화
‹ ›훈련의 첫 두 달은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뒷산을 뛰고, 학교가 끝나면 근처 체육관에서 격투술 기초를 배우고, 밤에는 수영장 야간반에 등록해 폐활량을 늘리는 일과를 반복했는데, 처음 한 달은 근육통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새벽마다 이를 악물었고, 어깨는 늘 뭉쳐 있어서 잠자리에 누우면 저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노트에 적어둔 '1위'라는 세 음절이 그 모든 고통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으니까.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건 외로움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짜낸 계획표를 혼자 지켜야 했고, 누구에게도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으니까. 가끔은 뒷산 정상에서 숨을 몰아쉬며,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인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정말 이렇게 하면, 그 결말을 피할 수 있을까.
답 없는 물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고 뛰었다.
경화 능력 훈련은 특히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나는 팔 전체를 굳히는 대신 손끝이나 팔꿈치 같은 국소 부위만 순간적으로 경화시키는 연습을 반복했고, 처음엔 어설프게 굳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던 것이 두 달째부터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강도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거울 앞에서 주먹을 내지르며 손등이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원래 살빛으로 돌아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나는 작은 성취감에 입꼬리가 올라가곤 했다. 처음에는 손끝 하나만 굳히는 데도 삼십 초 가까이 걸렸지만, 이제는 눈 깜빡할 사이에 원하는 부위만 정확히 경화시킬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노트에 적어둔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체육관 관장님은 내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걸 알아채고는 종종 스파링 상대를 붙여주었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선배들을 상대로도 제법 버텨내는 나 자신을 보며 묘한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했다. 물론 그 자신감은 매번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나면 금세 쪼그라들었지만.
그러던 어느 토요일, 체육관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어, 한도현? 여기서 뭐 해?" 유아라였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그리고 나처럼 화랑영웅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응시자.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는데, 나는 그 시선이 어쩐지 불편해서 어깨를 으쓱했다.
체육관 입구에 서 있는 그녀는 교복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채였고, 방금 도착한 듯 숨이 살짝 가빠 보였다. 나는 땀에 젖은 티셔츠 자락을 슬쩍 잡아당기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냥… 개인 운동." 나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원작 속 지식을 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요즘 부쩍 늘어난 훈련량에 대해선 최대한 얼버무리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개인 운동치고는 좀 과한데." 유아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너 원래 그렇게 열심히 하는 타입 아니었잖아. 뭐,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거야?"
그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각성이라는 단어가 하필 이렇게 정확하게 내 상황을 짚어낼 줄은 몰랐고,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설마 눈치챈 건가.
아니, 그럴 리가. 그저 우연히 던진 단어일 뿐이겠지.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손끝이 떨리는 걸 애써 감췄다.
"그러는 너는? 산성 분비 능력 관리하러 온 거야?"
유아라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손등을 들어 보였다. 손등 위로 옅은 자국이 남아있었는데, 아마도 조금 전까지 능력 훈련을 하다 온 흔적인 듯했다. "당연하지. 나도 이번 입시 만만하게 안 봐. 근데 말이야…" 그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요즘 눈빛이 달라졌어. 뭔가 되게… 절박해 보인달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피했다. 절박하다는 표현이 이렇게 정확하게 나를 관통할 줄 몰랐고, 나는 그 순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유아라의 시선이 내 얼굴 위에 오래 머무는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체육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쳐다보았다. 초침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냥, 1위 하고 싶어서." 나는 결국 짧게 대답했다.
"1위?" 유아라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너 이름값으로 봐도 상위권 정도면 충분한데 굳이 1위? 왜, 나랑 경쟁하고 싶어서?"
그녀의 말투에는 반쯤 농담이, 반쯤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기색이 섞여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걸 느꼈다. 우리는 분명 친구였지만, 동시에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 애매한 거리감이 이 순간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유아라의 집안도 나름 이름값이 있는 집안이었다. 능력자 명문가 출신은 아니었지만, 부모님 두 분 다 꽤 이름 있는 헌터 출신이라던가.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자기 이름 뒤에 붙는 기대치를 의식하는 눈치였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어쩐지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곤 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엔 그런 동질감보다 경계심이 먼저 앞섰지만.
"경쟁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원작을 안다는 사실을, 내가 정해진 미래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답답할 줄이야.
차라리 다 털어놓으면 편할까. 아니, 그럴 리가. 미친놈 소리나 듣겠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키며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유아라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돌렸다. "뭐, 좋아. 그럼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해보자고. 근데 한도현, 너 진짜 나한테 지면 안 돼. 알지?"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은 진심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유아라도 나만큼이나 절박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녀의 어깨가 평소보다 무겁게 처져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만 절박한 게 아니었구나.
체육관을 나서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짙게 깔려 있었고,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 있었다. 이제 훈련은 두 달째, 남은 시간은 일곱 달. 유아라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 이상, 나는 더 이상 조용히 혼자만의 싸움을 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가 눈치챈 게 각성뿐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애써 그 불안을 떨쳐내려 가방을 고쳐 메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직감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곧 다른 형태의 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어머니'라는 두 글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걸음을 멈췄다. 평소라면 그냥 저녁 메뉴를 묻는 전화였을 텐데,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손끝이 먼저 떨려왔다.
무슨 일이지.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도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려댔고, 나는 결국 마른침을 삼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