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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화랑영웅학교 입시 당일, 나는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채였고,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아홉 달간의 훈련 끝에 도달한 이 아침이 낯설 만큼 담담하게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다져온 시간들이 내게 어떤 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거였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나는 손바닥을 몇 번이고 쥐었다 폈다. 떨리는 건가. 아니, 이건 떨림이 아니라 오히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감각이었다. 나는 그 긴장을 애써 눌러 담으며 가방을 챙겼고, 아버지가 차려준 아침상 앞에 앉아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아버지는 별다른 말없이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 손길에서 지난 아홉 달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시험장은 도심 외곽의 거대한 훈련 시설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문으로 향하는 길, 아스팔트 위로 아침 햇살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응시자들의 긴장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한도현!" 유아라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긴장과 자신감이 묘하게 섞여 있었고, 입가에는 애써 지어낸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지난 아홉 달간 그녀 역시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떨리지 않아?" 내가 묻자 유아라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떨려. 너나 걱정해, 오늘 진짜 1위 할 거라며." 그녀는 팔짱을 끼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는데, 그 몸짓 하나에도 자신감이 배어 있어서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에 나는 씩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원작 속 지식대로라면 오늘 시험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나는 그 정보를 이용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계획을 이미 세워둔 상태였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이다. 정문을 통과하며 나는 유아라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가 내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시험 진행자인 김도윤 감독관의 확성기형 음파가 시험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응시자 여러분, 지금부터 종합 실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공기를 진동시키듯 웅웅 울렸고,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심호흡을 하며 대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변 응시자들의 숨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 가동음까지 모든 감각이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장애물 통과 구간에서는 좁은 통로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야 했는데, 나는 아버지와 함께 다져온 국소 경화 기술을 발끝에 실어 도약의 힘을 배가시켰고, 근력 측정에서는 팔뚝 일부를 순간적으로 경화시켜 기록을 끌어올렸다. 실전 대응 시뮬레이션까지 나는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다져온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순위표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아라 역시 산성 분비 능력을 정교하게 컨트롤하며 만만치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녀가 표적을 향해 정확한 궤적으로 분비물을 쏘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묘한 경쟁심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저 아이가 내 곁에서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거봐, 나 잘하지?" 유아라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씩 웃었다. "인정할게." 나는 짧게 답하며 다음 구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시험 후반, 실전 대응 시뮬레이션 구역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익숙한 위화감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스치는 것 같았고,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원작 속 그 장면이었다. 시뮬레이션용 로봇, 이른바 '제로포인트'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예정된 프로그램을 벗어나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어?!" 근처에 있던 응시자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시뮬레이션 구역 중앙에서 거대한 금속 로봇이 굉음을 내며 일어섰고, 관절이 뒤틀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 눈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는 순간 나는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원작에서는 이 사고로 응시자 몇 명이 크게 다쳤고, 주인공이 나서서 겨우 진압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서술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몇 초 안에 저 응시자들이 다친다. "다들 뒤로 물러나!" 나는 소리치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유아라가 놀란 눈으로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 "한도현, 미쳤어?!" — 나는 이미 몸을 던진 뒤였다. 제로포인트 로봇의 팔이 휘둘러지는 순간 나는 팔 전체를 최대한으로 경화시키며 그 일격을 막아냈다. 쿠웅, 하는 충격이 뼛속까지 울렸고 발바닥이 지면에 반쯤 파묻히는 듯한 반동이 전신을 관통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근처에 쓰러져 있던 응시자 두 명을 끌어당겨 구역 밖으로 밀어냈다. "괜찮아요?!"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응시자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로봇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음 공격에 대비해 자세를 낮췄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세차게 뛰었고, 손끝은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시험장 상공에 설치된 모니터링 카메라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방향을 트는 게 느껴졌다. 렌즈가 회전하는 미세한 기계음이 유난히 크게 귓가에 박혔다. 심사위원단이 실시간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원작에는 없던 전개였다. 이건 완전히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장면이었으니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궤도를 벗어난 건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물러설 곳은 없었다. 제로포인트 로봇이 다시 한번 팔을 치켜드는 그 찰나, 나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마지막 힘을 짜내 몸을 던졌다. 팔뚝 전체에 남은 경화의 감각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듯 저릿하게 저려왔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시험장 통제실 유리창 너머로 심사위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무언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손짓을 섞어가며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놀라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읽혔다. 저들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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