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늑대신님, 밤마다 이러깁니까

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하늘의 색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하늘은 짙은 잿빛이었는데, 지금 내 위로 펼쳐진 하늘은 마치 누군가 캔버스에 물감을 마구 풀어놓은 것처럼 보라와 남빛이 뒤섞여 있었고, 그 경계마저 흐릿하게 번져 있어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색색의 하늘 사이로, 태양이라기엔 너무 크고 붉은 무언가가 지평선 위에 낮게 걸려 있었는데, 그 크기가 내가 알던 태양의 몇 배는 되어 보여서 나는 잠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여기가...' 하는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등 뒤로 딱딱한 흙바닥의 감촉과 함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이 느껴져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팔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풀썩 주저앉아야 했다. 그런데... 이 몸, 내 몸이 아니다.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대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손등에 굵은 힘줄이 서 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낯설 정도로 두꺼운, 분명 내가 알던 스물넷 이도윤의 손이 아니었다. 손톱 밑에는 흙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고, 손목 안쪽으로는 본 적 없는 옅은 흉터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 모든 게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이 몸에 익숙해져 있는 듯한 감각이 동시에 밀려들어서 나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원래 마르고 왜소한 편이었고, 손도 작아서 친구들에게 여자 손 같다는 놀림을 받곤 했었는데, 지금 눈앞의 이 손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을 이식받은 것처럼 크고 단단했다. 팔뚝을 걷어 올려보니 근육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 아래로 팽팽하게 당겨진 살갗의 감촉마저 낯설었다. 이게... 정말 내 몸이라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두 개의 회색 눈동자였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밀려들어왔다. 아니, 밀려들어왔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거기 있던 기억이 갑자기 재생되기 시작한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분명 지난 주말, 강원도의 한 야산으로 혼자 캠핑을 떠났었고, 텐트를 치던 도중 이상하게 조용한 숲의 정적에 소름이 돋았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그 흔한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마저 뚝 끊긴 것처럼 조용했었고, 나는 그 정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랜턴을 켜고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텐트 지퍼를 뜯고 들어온 건 사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릉. 낮게 울리는 그 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회색보다는 오히려 은백색에 가까운,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짙은 잿빛으로만 보였던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텐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었다. 몸집이 일반 늑대의 두 배는 되어 보였고, 어깨 근육이 꿈틀거릴 때마다 텐트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눈은 마치 사람의 눈처럼 이지적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그 눈이 나를 향해 고정되는 순간 나는 이미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버렸다. 다리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손끝은 침낭 지퍼를 붙잡은 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목구멍 안쪽에서 비명이 만들어지다가도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삭아버렸다. 이빨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그 순간의 감각은, 아플 겨를도 없이 그저 뜨겁고 차가운 것이 동시에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피가 쏟아지는 소리, 심장이 점점 느려지는 소리, 그리고 시야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어두워지던 감각까지, 그 모든 게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건 그 늑대의 목소리 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분명 의미는 전해졌다. [미안하다, 인간아. 하지만 너를 빌려야겠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빠르게 흩어졌었고, 그렇게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히 죽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나는, 낯선 몸으로 낯선 땅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나는 이렇게 숨을 쉬고 있고, 눈을 뜨고 있고, 이상한 하늘 아래 낯선 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흙의 서늘함, 코끝을 스치는 낯선 풀 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까지, 모든 감각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듯 지나치게 또렷하게 다가왔다. "...설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니 목소리마저 낯설었다. 원래보다 훨씬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한 번 더 소리를 내보고 싶었지만 목이 잠긴 것처럼 말이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콧대가 더 높았고, 턱선은 더 날카로웠으며, 눈썹 위로는 흉터인지 뭔지 모를 자국이 만져졌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방 하나가 더 있는데 그 방문이 처음으로 삐걱 열리는 듯한, 이질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깨어났구나, 그릇아.] 낮고 서늘한, 그러나 분명 여자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감정이라곤 없는 듯 무미건조했지만, 그 안에 미묘하게 깔린 흥미로움 같은 것이 함께 느껴져서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저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낮은 산맥뿐, 사람의 그림자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리까지 자란 풀들이 파도처럼 물결쳤고, 그 사이로 낯선 향, 흙과 풀과 무언가 비릿한 것이 섞인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누구야... 어디 있어. 나와."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몸 자체가 아직 나에게 낯설어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사다. 그리고 지금부터, 너는 내 몸을 나눠 써야 할 거야.] 담담한 통보였다. 마치 오늘 날씨가 좋다는 말을 하듯, 아무런 감정의 굴곡도 없이 던져진 그 말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내 몸을 나눠 쓴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대신 머릿속에서는 온갖 물음들이 뒤엉킨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죽은 거 아니었나. 그 늑대가 날 물었을 때, 분명히. 그런데 지금 이건 뭐지. 이 몸은 대체... 그리고 저 목소리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과 함께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꼈고, 그와 동시에 손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짙어지는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손끝이 저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저림은 순식간에 뜨거운 무게감으로 바뀌었고, 손가락 하나하나가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이어졌다. 우뚝! 손톱이, 아니 손톱이었던 것이 순식간에 검은 발톱으로 변해가는 걸 목격하면서, 나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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