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늑대신님, 밤마다 이러깁니까

2화

정신을 차린 것은, 몸의 감각이 다시 인간의 것으로 돌아온 뒤였다. 온몸이 물속에서 막 건져 올려진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피가 도는 느낌이 들면서 손끝부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서 몇 번이나 깜빡거려야 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코끝으로는 낯선 흙냄새와 마른 풀 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손부터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아까 그 발톱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사람의 손 모양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손가락 마디마디가 유난히 길쭉하고 손톱 끝이 살짝 두꺼운 것이, 여전히 낯선 크기와 형태였다. 손바닥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 감촉을 확인해보는데, 이게 정말 내 몸이 맞나 싶어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하는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머릿속 저편에서 아까의 그 목소리가 다시 낮게 울려왔다. [놀라지 마라. 완전히 변할 뻔했지만, 지금은 낮이니까 참을 만했다.]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종을 울리듯 낮고 서늘하게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는데, 그 울림 하나에 등줄기가 저릿하게 반응했다. "낮이니까...?" 나는 얼떨결에 소리 내어 되물었다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텅 빈 초원 한가운데서 혼자 중얼거리는 꼴이라니, 누가 봤으면 영락없이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밤에만 이 몸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네가 잠들었을 때, 그때 나는 늑대가 되고, 이 몸도 늑대가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왔다. 죽었다 살아난 것도 모자라, 이젠 밤마다 늑대로 변한다는 저주까지 떠안게 된 셈이었으니, 이게 웃을 일인지 울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대체 나는 어떤 삶 속으로 던져진 걸까. [나는 아사다. 본래 하늘궁에서 옥황상제를 삼킨 죄로, 전쟁신 치우에게 저주를 받아 이 형벌을 짊어지게 되었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슬픔도 딱히 묻어나지 않아서 오히려 그게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듯 무심한 어조였는데, 그 무심함 안에 얼마나 긴 시간이 눌려 담겨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옥황상제니 전쟁신이니 하는 단어들이 낯설게 귀에 감겼지만, 지금 내 처지에 그런 신화적 배경까지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그럼 나는... 왜 하필 나야?"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왔다. 억울함인지 두려움인지 구분이 안 되는 감정이 목구멍 언저리에 걸려 있었다. [네가 죽어가는 순간, 마침 근처에 있었을 뿐이다. 영혼이 빠져나가려는 몸이 필요했고, 너의 몸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지독하게 실용적인 대답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나는, 죽어가던 참에 우연히 재활용된 셈이었다. 무슨 운명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라니.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걸 토해내 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입술을 깨물며 삼켜야 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누구여!"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팡이를 짚은 노인 한 명이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허리는 굽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게 살아있는 노인이었고, 낡은 갈색 두루마기 같은 옷을 걸친 채 양 떼를 몰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등에는 물통으로 보이는 가죽 부대를 하나 매달고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소리가 초원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거기 벌거벗고 뭐 하는겨! 정신 나간 놈이여, 뭐여!" 그제야 나는 내가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초원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팔로 몸을 가리며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휘청거렸는데, 노인은 그 꼴을 보고도 딱히 놀라는 기색 없이 익숙하다는 듯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거, 옷 벗고 자빠져 있는 거 보니 필시 어디서 도망친 노예 놈 아니면, 요수한테 물려서 정신 나간 놈이구먼." 노인의 짐작이 어이없을 만큼 정확해서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그저 시선을 내리깔았는데, 노인은 그런 내 반응을 보고 뭔가 더 확신이 든 모양이었다. 노인은 혀를 쯧쯧 차더니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 하나를 벗어 내 쪽으로 휙 던졌고, 나는 그걸 얼떨결에 받아 걸쳤다. 옷에서는 양털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것 같은, 묘하게 정겨운 냄새가 났다. "이름은 있는겨?" "이도윤... 입니다." "도윤이라...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구먼. 어디 마을 출신인지도 모르겠고." 노인은 팔짱을 끼고 나를 한참 뜯어보더니, 뭔가 셈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속에 담긴 계산이 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지금 당장은 캐물을 처지가 아니었다. "하여간 여기 이러고 있다간 저녁때 늑대 밥 되기 딱 좋으니께, 일단 나 따라오랑께."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밑으로는 마른 풀이 서걱거리며 밟혔고, 저 멀리로는 낮은 구릉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서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곳은 청랑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법칙으로 돌아가지.] 노인을 따라 걸으며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아사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발걸음을 옮기면서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뒤엉켜 어지러웠다. 죽었다가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몸으로, 그것도 신화 속 존재와 몸을 나눠 쓰며 살아가야 한다니, 이게 현실이라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하늘은 분명 낯익은 파란색인데, 그 아래 펼쳐진 초원의 넓이도, 바람의 결도, 어딘가 미묘하게 원래 알던 세상과는 어긋나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자꾸만 발끝을 붙잡았다. "근데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려쌌는겨?" 앞서 걷던 노인이 불쑥 뒤를 돌아보며 묻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허, 아무것도 아니긴. 사람이 혼잣말을 그렇게 해쌌으면 필시 뭔가 씌인겨. 뭐, 어차피 알 바 아니니께 넘어가긴 하겠구먼." 노인은 그러면서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나를 살피듯 흘긋거렸다. 저 눈빛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뭔가 더 깊은 의심인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자신을 최노인이라 소개했다. 이 근방에서 오래도록 양을 치며 살아온 사람이라 했고, 마침 일손이 부족하던 참이라며 나를 데려가 목양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의 말투에는 은근한 계산이 섞여 있었지만, 당장 갈 곳도 없고 몸을 의탁할 곳도 없는 나로서는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걷는 내내 최노인은 이 초원의 이름이며, 근처 마을까지의 거리며, 밤이 되면 초원 어디로도 함부로 나다녀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는데, 그 말투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걱정스러움이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낯선 놈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뚝뚝한 배려가 고맙기도 했다. "단디 들어. 여기서 살아남을라믄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되는겨. 하나는 밤에 함부로 돌아댕기지 말 것, 또 하나는 내 말 안 듣고 게으름 피우면 이 지팡이 맛을 보는겨."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휙 들어 보이는 최노인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이는 걸 보며, 나는 이 노인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지팡이 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매서웠고,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뼈아프게 확인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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