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늑대신님, 밤마다 이러깁니까

4화

설이가 우리 곁에 완전히 눌러앉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언덕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녀석이었는데, 저 멀리 풀숲 사이에서 노란 눈동자만 반짝이며 이쪽을 훔쳐보던 게 고작이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아예 오두막 앞마당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고 눕더니, 그 다음엔 마루 밑에 웅크려 낮잠을 자는가 싶다가, 급기야 최노인이 부엌에서 육포를 던져줄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나조차도 저게 정말 같은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쓸데없이 정 주지 마라. 요수 새끼한테 먹을 걸 왜 줘, 쯧쯧." 최노인은 그렇게 혀를 차면서도, 정작 아침이면 부엌 뒤편 항아리에서 육포 한 줌을 꺼내 손에 쥐고 나오는 걸 잊는 법이 없었다. 겉으로는 귀찮은 척, 성가신 척을 다 하면서도 은근슬쩍 챙겨두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저 노인네도 설이한테 단단히 정이 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 저놈, 사냥은 좀 하는가 몰라." 어느 날 아침, 최노인이 지팡이로 마당 흙바닥을 툭툭 치며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나는 문득 설이가 처음 만났을 때만큼 사납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원래 야생의 요수였을 텐데, 지금은 그저 우리 곁을 지키는 순한 개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내가 손을 내밀면 코를 킁킁대며 다가와 손등을 핥고, 배를 보이며 벌러덩 눕는 모습이라니, 이게 정말 산속을 떠돌던 맹수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너무 방심하지 마라. 저것도 결국 짐승이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본성이 튀어나올 수 있어.] 아사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설이가 내 손을 핥으며 낑낑거릴 때의 그 눈빛이, 도저히 그런 위험한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상은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아침이면 최노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고, 물통을 짊어진 채 우리 밖으로 나서서 양 떼를 몰고,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며 설이와 함께 뛰어다니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이면 다시 양 떼를 우리 안으로 몰아넣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그 사이사이 최노인의 잔소리와 지팡이질을 견디며 목양 일을 하나둘 배워나가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처음엔 양들이 죄다 똑같아 보이던 것이 어느새 무늬만 보고도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구분이 가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이 오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오두막 안이 어둠에 잠기면, 낮 동안의 그 평화로운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가슴 한구석을 채워왔다. [잠들지 마라. 최대한 버텨봐라.] 아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게 언제까지고 잠들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지는 그 순간을 억지로 버텨봐야, 결국 새벽녘 즈음이면 스르르 의식이 흐려지고 마는 게 매번이었다. 그날 밤도 나는 오두막 구석에 마련된 짚더미 위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고,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는 걸 느끼며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오늘은 제발 아무 일 없기를...' 하는 것이었다. 짚더미에서 올라오는 마른 풀 냄새와, 저 멀리 초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오두막 밖에서 들려오는 최노인의 고함 소리에 눈을 떴다. "이게 뭔 일이여! 양이, 양이 물려 죽었어!" 우뚝! 그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쿵, 하고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반쯤 감겨 있던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양 한 마리가 목이 물어뜯긴 채 쓰러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흩뿌려진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채로 아침 햇살에 검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파리 몇 마리가 벌써 냄새를 맡고 날아들었는지 죽은 양의 상처 주변을 맴돌았고,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훅 찔러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설마, 어젯밤에 내가...' 하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 머릿속에서 아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왔다. [그래, 어젯밤 일이 맞다. 배가 고팠다.] 너무나 담담한 그 대답에, 나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 늑대가 된 이 몸이 최노인의 양 떼를 습격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최노인이 씩씩거리며 나를 돌아보았고, 그의 눈빛에는 짙은 의심이 서려 있었다. 평소 인자하던 그 눈빛이 이렇게까지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너, 어젯밤에 뭐 했냐." "저, 저는 그냥 잤는데요..."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며 최노인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을 노려보았고,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애꿎은 땅바닥만 내려다보아야 했다. 발끝으로 흙바닥을 슬쩍 문지르며 시선을 피하는 내 모습이, 누가 봐도 뭔가 켕기는 사람의 태도였을 텐데, 다행히 최노인은 그걸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쯧, 요즘 산속에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닌다더니. 그놈들 소행인가." 그러다 최노인의 시선이 마당 한쪽에 앉아 있던 설이에게로 향했다. "저놈이 밤에 어디 나갔다 온 거 아녀? 저놈 눈빛이 원래 좀 사나웠잖어." 최노인은 결국 요수의 짓일 거라 단정 지으며 설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지팡이를 들고 설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려 했다. 그 지팡이 끝이 향하는 방향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꼈다. "안 돼요!" 나는 저도 모르게 최노인과 설이 사이를 가로막으며 양팔을 벌렸다. 설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꼬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저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걸 보고 있자니, 정작 진짜 범인인 나 자신이 더 죄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뭐여, 이놈이 갑자기?" 최노인이 지팡이를 든 채로 멈춰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 "설이는... 어젯밤 내내 저랑 같이 있었어요. 얘가 그런 게 아니에요."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스스로가 낯설었지만, 나는 설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물러설 수 없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써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잠결에도 얘 숨소리 들었거든요. 계속 제 옆에 딱 붙어 있었어요." 최노인은 한참을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지팡이를 거두며 혀를 찼다. "흥, 요즘 산속에 이상한 요수들이 늘었다더니. 조심혀야겠구먼. 울타리도 좀 더 높여야 쓰겄어." 그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진짜 범인이 다름 아닌 나 자신, 아니 내 몸을 빌린 아사였다는 사실을, 최노인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죽은 양의 사체를 치우러 가는 최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아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짚더미 위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어두운 오두막 천장을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야?" [나도 통제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배고픔은, 본능이라 쉽지 않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매일 밤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지내야 하는 거야?" [......] 아사는 대답 대신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게 느껴져서, 나는 괜히 손끝으로 짚더미를 만지작거리며 답을 기다렸다. [미안하다.] 그녀의 대답에서 처음으로 미안함 비슷한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언젠가 이 비밀이 최노인에게 들통나는 날이, 결코 좋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가슴 한구석에 조용히 똬리를 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 예감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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