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어머니의 1주기가 다가올수록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지는 걸 느끼면서,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슬픔이 옅어진 게 아니라,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이 바뀐 것뿐이라는 걸, 나는 가슴 한구석이 늘 버석거리는 감각으로 매일 확인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천장의 얼룩진 자국부터 눈에 들어왔고, 그 무늬가 꼭 엄마의 마지막 얼굴선처럼 보여서, 나는 몇 초쯤 숨을 참았다가 다시 뱉어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이상한 습관이었다. 언제부터 생긴 건지도 정확히 모르겠는 그 버릇을, 나는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마저 나를 지탱해주는 얼마 안 되는 장치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서윤아,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지?" 다미가 급식실에서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을 때, 나는 대답 대신 국물을 떠먹었다. 미역국이었다. 국물이 미지근했고, 건더기는 다 가라앉아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웃으면서 뭐 하냐고 되물었을 텐데, 요즘의 나는 그런 여유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르바이트 있어." 나는 짧게 답했고, 다미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젓가락을 든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가, 다시 반찬 쪽으로 향했다. 그 사소한 머뭇거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다미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배려한다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나를 배려하는 애였다.
한다미는 중학교 때부터 내 옆에 있어준 유일한 친구였다. 학생회에 응원단까지 하느라 늘 바빴지만, 그 와중에도 나를 잊지 않고 챙기려 애쓰는 애였다. 시험 기간에는 매번 요약 노트를 복사해서 건네줬고, 생일이면 어떻게든 짬을 내서 작은 케이크 하나라도 사 들고 왔다. 그런 다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면서도, 나는 요즘 들어 자꾸만 그 애와의 거리를 스스로 벌리고 있었다. 다미가 다가올수록, 나는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게 다미를 위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엄마가 떠난 뒤로 세상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 같았다. 엄마가 있던 세상과, 없는 세상. 그리고 나는 없는 쪽에 남겨진 채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뒤로 눈에 띄게 무너져갔는데, 술병이 늘어가는 만큼 일자리는 자주 바뀌었고, 집안의 생계는 어느샌가 내 몫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용돈벌이 정도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는데, 이제는 그게 없으면 당장 다음 달 공과금이 밀릴 지경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다미에게도, 담임선생님에게도. 그저 혼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밤을 넘기는 게 이제는 익숙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서윤이 넌 다정한 아이야,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너무 곁을 많이 내주지는 마.]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된장을 풀며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곁을 내준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 나는 오히려 사람을 좋아하고 곁에 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그 말이 자꾸 되풀이해서 떠오르는 걸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곁을 내준 만큼, 잃을 때의 상실도 그만큼 커진다는 걸. 엄마는 그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던 걸까. 알 길이 없어서, 나는 그 말을 곱씹을수록 가슴이 더 버석거렸다.
방과 후,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다미의 문자를 확인했다. [서윤아 오늘 진짜 시간 없어? 애들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는데.] 나는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손끝이 핸드폰 화면 위에서 몇 번이나 머뭇거렸지만, 나는 끝내 [미안, 다음에]라는 짧은 문장 하나만 남기고 화면을 껐다. 화면이 꺼지는 순간, 나는 내가 무언가를 자꾸 밀어내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그저 관성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감정을 소모할 필요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이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물건을 찍고, 봉투에 담고, 인사를 하고.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만 나는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었다. 바코드 찍는 소리, 카드 승인음, 자동문 열리는 소리. 그 무의미한 소음들이 오히려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진열대를 정리하며 시간을 죽였는데, 그럴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저마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웃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 마치 다른 세상의 풍경처럼 낯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취기가 잔뜩 밴 목소리였다. 골목 어귀 가로등 아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서윤아, 오늘 저녁은 뭐 먹었냐." 아빠가 물었지만, 나는 그 질문 뒤에 숨은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편의점 삼각김밥이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미안하다...." 아빠의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안의 핸드폰이 서늘하게 식어가는 걸 느끼면서, 나는 아빠를 원망해야 할지 이해해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 나서야, 나는 참아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다미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심지어 아빠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그것이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사진 속 엄마는 여전히 그 미소 그대로였는데, 나는 그 미소를 볼 때마다 마음이 두 갈래로 찢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워서 보고 싶은 마음과, 더 이상 그리워하기가 버거운 마음.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결국 후자를 택하려 애쓰고 있었다.
한심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까지 안전해지려는 이 태도가. 하지만 나는 그 한심함마저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아플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건 진짜 편안함이 아니라 그냥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 차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다음 날, 나는 다미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나 요즘 좀 정신없어서, 당분간 연락 못할 것 같아. 이해해줘.]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서랍 깊숙이 넣어버렸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내가 스스로 닫아버린 문 같아서, 나는 잠깐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창밖으로 늦가을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훑고 지나갔다. 바싹 마른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제부터는 정말로 혼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다짐인지, 그때의 나는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