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나는,
야산 초입에 서서 어둠에 잠긴 능선을 올려다보며, 오늘도 또 이곳으로 발걸음이 향한 걸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밤 열 시, 편의점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은 원래 논둑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꾸만 이 산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름길이라 여겼다. 이 편이 십 분쯤 빠르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오늘은 그 변명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냥 발이 저절로 이쪽으로 움직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서윤아, 너무 늦게 다니지 마.]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지만, 그 목소리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오히려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 뿐이었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를 놓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리석었다. 이제는 걱정해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 늦은 밤길을 걸으며 죽은 사람의 잔소리를 곱씹고 있는 내 꼴이.
산 어귀의 공기는 낮보다 서늘했고, 풀벌레 소리마저 뚝 끊겨 있었는데, 그 정적이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낯설었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종일 서 있었던 다리가, 이 서늘한 공기 속에서는 오히려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발밑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그렸고, 나는 그 무늬를 밟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산속으로 들어갔다.
갈증이었다.
목이 마른 것과는 다른,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알 수 없는 허기 같은 것이 며칠째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그 허기는 밥을 먹어도 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았다. 편의점 삼각김밥을 세 개나 먹은 날에도, 집에 돌아와 냉수를 한 대접이나 들이켠 날에도, 뭔가가 명치 아래에 얹힌 것처럼 답답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뭘까,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다.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을 때, 저만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빛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그것은 눈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 짙고 깊은 두 개의 눈동자.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을 발하는 그 눈은, 마치 어둠 자체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어릴 적 동물병원에서 보았던 그 늑대의 눈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신기하네요, 얘가 이렇게 얌전한 건 처음 봐요.] 그때 병원 원장님이 했던 말이 귓가에 스치듯 되살아났고, 나는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그때도 그 늑대는 나를 저렇게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에게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녀석이, 유독 나에게만은 순한 눈빛을 보였었다. 원장님도 신기해했었고, 나도 그때는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기억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늑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털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번들거렸고, 몸집은 내가 알던 개과 동물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 있었으며, 어깨선은 매끈하면서도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감이 밀려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신중하고 느렸는데, 그 느림 속에는 어떤 위협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듯한, 이상한 배려마저 느껴졌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과,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다리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움직이지 않았고, 손끝은 싸늘하게 식어갔지만, 이상하게도 그 서늘함이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뭐야, 너."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린 말에, 늑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서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이상하리만치 지적인 응시가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찾아낸 것처럼,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저 손이 저절로 움직였고, 늑대의 코끝이 내 손가락에 닿았을 때 서늘하고 축축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 감촉은 예상외로 부드러웠고, 나는 그 순간 아주 잠깐 동안, 이 늑대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마저 품었다.
그 순간이었다.
늑대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내 손목을 짧게 스치듯 물었고,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것 같았다. 따끔한 통증이 손목을 타고 번지는가 싶더니, 곧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살갗 아래로 뜨거운 물이 흘러들어가는 듯한, 낯설고 기묘한 열감이었다.
"아…!" 나는 손목을 움켜쥐고 뒷걸음질 쳤고, 늑대는 그런 나를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산 안쪽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발소리도,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없이, 그저 어둠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남은 건 정적과, 손목에 새겨진 두 줄의 붉은 자국뿐이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그저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옅은 흉터의 형태로 살갗에 남았을 뿐인데, 그 낯선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무늬처럼 자연스럽게 살갗에 스며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손목을 소매로 가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걸음을 옮겼다. 논둑길을 걸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늑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 채 집 앞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이미 술에 취해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그 옆을 조용히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 소리만 낮게 웅웅거리고 있었고,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그 사이로 섞여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조용히 닫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형광등 아래에서 손목의 상처를 다시 살폈을 때, 그것은 마치 오래된 문신처럼 살갗에 스며들어 있었고, 만져보니 미열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그 자국을 따라 그어보았다. 통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는데, 그 대신 묘한 저릿함이 남아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한심했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무서움보다 더 강한 어떤 이끌림을 느끼고 있는 내가. 정상이라면 지금쯤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적어도 병원에라도 가봐야 했을 텐데, 나는 그저 이 흉터를 들여다보며 이상한 안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마침내 손에 넣은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만족감이었다.
창밖으로 산 쪽을 바라보며, 나는 그 늑대가 다시 나타나기를,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능선 위로, 아까 보았던 그 황금빛 눈동자가 자꾸만 어른거렸다. 나는 커튼을 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손목의 미열은 밤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