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나는,
가면 안쪽이 뜨거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오래된 가죽 냄새와 함께 어딘가 축축한 흙내가 훅 끼쳐 들어왔고, 그 냄새는 마치 내가 아는 어떤 장소, 달빛이 비껴드는 뒷산의 냄새와 겹쳐지며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손목의 흉터는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으로 욱신거렸는데, 그 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나는 무력하게 느끼고 있었다. 시야 한켠이 검게 얼룩지기 시작했고, 파티장의 조명이 흩어지는 물감처럼 번져 보이더니, 나는 무릎이 꺾이려는 순간 다미의 손이 내 팔을 붙잡는 걸 느꼈다.
"서윤아, 왜 그래! 얼굴이 하얘." 다미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붙잡듯 이를 악물고 가면을 벗어냈다. 손가락이 떨려서 가면 끈을 푸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고,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거실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씻은 듯이 시야가 맑아졌다. 방금 전까지 눈앞을 가득 채우던 어둑한 얼룩들이 사라지고, 낯익은 파티 조명과 낯익은 얼굴들이 되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다미의 집 특유의 은은한 방향제 냄새까지, 익숙한 것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익숙함이 이토록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나는 스스로도 낯선 안도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괜찮아. 잠깐 어지러웠나 봐."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저릿하게 남아 있었고,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못내 께름칙했다. 마치 몸 안 어딘가에 낯선 손님이 들어와 앉은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물감이었다.
오유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피며 망토를 도로 받아 들었다. "역할극이 좀 과했나 보다. 미안, 서윤아." 그녀의 손에 들린 낡은 가죽이, 조명 아래에서 유독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아서, 나는 눈을 피했다. 저 가면을 쓰기 전과 후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그저 놀이였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진짜 괜찮은 거지?" 다미가 내 어깨를 잡고 얼굴을 살폈다. 그 눈빛에 담긴 순수한 걱정이, 나는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저 눈빛에 답할 수 있을까.
"응, 진짜 괜찮아. 물 좀 마시면 될 것 같아."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어색했을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현관 쪽에서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터졌다. 강주희였다.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태연히 들어서는 그 뻔뻔함이, 이 파티에서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라는 걸, 나는 다미의 굳어지는 표정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다미의 얼굴에서 방금 전까지의 걱정스러운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경계의 날이 섰다.
"어머, 여기서도 늑대 놀이야? 재밌겠다." 강주희는 눈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걸린 늑대 가면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고, 그 뒤를 따라온 무리들이 낮게 킬킬거렸다. 그녀의 옷차림은 파티 콘셉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화려한 원피스였는데, 그것조차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겠다는 계산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마치 자신은 어디에 있어도 주인공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주희야, 너 초대 안 했는데." 다미가 팔짱을 끼며 앞을 막아섰다. 평소의 애교 섞인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어머, 섭섭하게. 우리 학생회 임원인데 안 부르면 어떡해." 강주희는 여유롭게 웃었지만, 그 미소 뒤편에 자리한 뭔가가,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미와 강주희 사이에 흐르는 이 팽팽한 긴장이,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이 마주 설 때마다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지는 걸, 나는 여러 번 목격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한지민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쟤 지금 다미랑 학생회장 자리 놓고 붙는 중이야. 다음 학기 선거 얘기, 몰랐어?" 나는 몰랐다. 학교 사정에 어두운 내가 알 리 없는 이야기였고, 그 순간 나는 이 자리에 내가 왜 초대되었는지, 그리고 왜 강주희가 굳이 이 시간에 이 집까지 찾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다미의 편이 몇이나 되는지, 그 세력을 눈으로 확인하러 온 걸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강주희의 시선이 방 안을 한 바퀴 훑고 지나갔다. 누가 누구 편인지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다 그 시선이 나에게서 멈췄고, 나는 갑작스러운 눈맞춤에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근데 서윤이 너, 요즘도 그 편의점에서 일해?" 강주희가 갑자기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에는 아무 악의도 없다는 듯 다정한 결이 실려 있었지만, 나는 그 다정함이 얼마나 얇은 막인지 이미 잘 알았다. 저런 목소리로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걸, 나는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더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우리 학교 다니는 애가 편의점 알바에 학교 뒷산 늑대 목격담까지, 진짜 화젯거리 많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시선이 내 손목으로 향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소매를 끌어당겼다. 붉은 두 줄의 흉터가, 파티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그녀가 봤을까. 심장이 쿵,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저 눈이 정확히 무엇을 본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서 더 불안했다.
"전학 얘기도 있던데, 정말이야?" 강주희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고, 나는 그 질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학. 그건 내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버지가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학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로 형편이 기울었다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이었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음악 소리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아득하게 멀어졌다.
"무슨 말이야, 그게."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되물었지만, 강주희는 이미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흔들리는 걸 즐기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어머, 몰랐어? 우리 엄마가 학부모회에서 들었다는데, 너희 아빠 사업 정리하신다고. 그럼 여기서 못 살잖아."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그 안에 숨은 잔인함이, 손끝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다정함을 가장한 칼날이, 정확히 어디를 찔러야 아픈지 알고 겨눈 것 같았다.
다미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주희야, 그만해" 하고 낮게 경고했지만, 강주희는 그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늑대 여자가 어디로 갈지."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몇몇은 못 들은 척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힐끔거렸다. 오유나가 뭐라 입을 떼려다 다미의 눈치를 보고 삼키는 게 보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목의 흉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 열기를 감추려 팔을 등 뒤로 숨겼지만, 이미 몸 안쪽에서 뭔가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분노도 아니고 수치심도 아니었다. 더 깊고, 더 원초적인 무언가가, 살갗 아래에서 조용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