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나는 밤마다 늑대가 된다

2화

나는, 한 달 남짓 지나는 동안, 다미의 연락에 단 한 번도 답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손끝이 저릿하게 굳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동조차 무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복도의 구석으로만 걸었고, 급식실에서는 가장 늦게 들어가 가장 빨리 나왔으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반사적으로 어깨부터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킨 대가로, 나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안정을 얻었다. 감정을 소모할 사람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소진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나를 지켜주는 방법이 될 줄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나는 곧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병원에서 보조 일을 하며 받는 돈은 크지 않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진심으로 좋았다. 소독약 냄새가 밴 작업복을 걸치고 케이지 사이를 오갈 때면, 이상하게도 숨이 편해졌다. 다친 동물들을 돌보고, 겁먹은 강아지를 진정시키는 일에는 이상하게도 내가 소질이 있었다. "서윤이 너, 진짜 신기하다." 사장님이 어느 날 유기견 한 마리를 다루는 나를 보며 감탄했다. 그 강아지는 낯선 사람만 보면 사납게 짖어대던 애였는데, 내 손이 닿자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으르렁대던 이빨을 감추고, 배를 뒤집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냥... 눈을 마주치고 기다려주면 돼요."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사실 나조차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과,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는 감각. 그런 걸 어떻게 말로 옮길 수 있을까. 동물들과 있으면, 사람과 있을 때는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판단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의 눈빛은 늘 무언가를 캐묻는 것 같았지만, 동물의 눈빛은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너 혹시 커서 수의사 할 생각 없니?" 사장님이 지나가듯 물었을 때, 나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런 꿈을 꾸기엔,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학교에서도 성적만큼은 놓지 않으려 애썼다. 성적이 곧 내가 이 집을, 이 동네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이 성적표를 나눠주며 "이서윤 학생, 이번에도 상위권이네"라고 칭찬했을 때, 반 아이들 몇몇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 시선 속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경계심이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런 시선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성적표를 접어 가방에 넣는 것으로, 나는 그 시선들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늑대 여자 온다.] 언젠가부터 반 아이들 사이에서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유독 동물을 잘 다루고, 늘 혼자 다니며, 어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 별명이 신경 쓰였다.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는 낙인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 거리감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느껴졌다. 늑대라 불리면, 아무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가오지 않는 편이 더 편했다. 강주희 무리는 여전히 나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던졌지만, 나는 최대한 반응하지 않는 법을 익혀갔다. 감정을 드러내면 그만큼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무표정을 유지하는 데에는 요령이 있었다. 턱에 힘을 빼고, 시선은 먼 곳에 두고, 숨을 천천히 내쉬는 것. 그렇게 하면 어떤 말도 살갗을 스치듯 지나갔다. "저기 늑대에게 자란 애 좀 봐." 복도를 지나가는데 뒤에서 강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뒤따랐고, 누군가 "쟤네 아빠도 요즘 백수라며" 하고 덧붙이는 말이 귀에 박혔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손마디가 살짝 하얗게 도드라졌지만, 표정만큼은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 애들의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점점 멀어질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밤, 나는 텅 빈 방에 앉아 오늘 벌어들인 돈을 셈했다. 지폐 몇 장과 동전들을 손바닥 위에 늘어놓고, 편의점과 동물병원 아르바이트비를 합치면 이번 달 생활비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았다. 계산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나는 안도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빠는 최근 새로 취직한 공사장 일도 며칠 안 가 그만두었다고 했고, 나는 그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실망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걸, 나는 언제부턴가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서윤아, 이 늑대 좀 봐. 눈이 정말 예쁘지 않니?]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갔던 동물병원에서 임시 보호 중이던 늑대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그 늑대는 나를 오래도록 응시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동물에게 압도적인 끌림을 느꼈다. 케이지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 짐승은, 사람을 경계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나를 향해서만은 이상하리만치 얌전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었다. [너는 동물이랑 잘 통하는구나.] 그 말이 왜 이제 와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기억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창밖의 어둠이 신경 쓰였다. 야산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뭔가 야릇한 기운이 섞여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이유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며 커튼을 닫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마치 누군가 창밖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는데, 커튼 틈으로 다시 내다봐도 어둠뿐이었다. 착각일 거라고, 나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안정된 척, 평온한 척 지내는 나날 속에서도, 나는 이따금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곤 했다. 목이 마른 것과는 다른, 뭔가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갈증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 이끌림은 더 선명해졌고,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야산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기는커녕,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었다는 것.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