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잔고 무한, 낮에는 노가다

2화

행복분식은 골목 끝에 있었다. 낡은 간판, 삐걱거리는 문, 김이 뿜어져 나오는 떡볶이 판. 현장 일이 끝나고 처음으로 찾은 곳이었다. 이준호의 몸에 남은 기억이 이 가게를 알고 있었다. 단골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몇 번 왔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간판 불빛이 반쯤 꺼져 있었다. 행, 복, 분, 식 중에 '복' 자만 유독 밝게 빛났다. 나머지 글자는 필라멘트가 늙었는지 껌뻑거렸다. 그 아래 서서 잠깐 숨을 골랐다. 하루 종일 벽돌을 나른 어깨가 뻐근했다. 열아홉 살짜리 몸은 아직 근육이 덜 붙어서 그런지 회복도 느렸다. 문을 열자 종이 딸랑거렸다. "어, 왔어요?" 카운터에서 나를 알아본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였다. 짧은 단발머리, 앞치마, 날카로운 눈매. 박선영. 이준호의 기억 속에서 몇 번 마주친 얼굴이 그대로 겹쳐졌다. 기름 냄비 앞에서 국자를 든 손목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몇 년은 저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 같은 손놀림이었다. "네, 늦었죠."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열아홉짜리 몸으로 어른한테 반말할 순 없었다. 몸에 밴 습관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남으려는 처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전생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다 반말로 눌러버렸는데. 이 몸으로 옮겨오면서 뭔가 성격까지 절반쯤 물려받은 기분이었다. "떡볶이 2인분?" "1인분이면 돼요." 박선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요즘 통장 사정 뻔한데." 뻔한데, 라는 말이 속을 긁었다. 알기는 아는데 왜 더 서럽게 들리는 걸까. 팔만 삼천 원. 그 숫자가 통장 화면에 떠 있는 걸 오늘 아침에도 확인했다. 국자로 떡볶이를 뒤적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자리에 앉으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낡은 테이블 네 개, 벽에는 누렇게 바랜 메뉴판, 구석 자리에 붙어 있는 손글씨 공지문. 오늘의 튀김은 오징어튀김입니다. 그 아래 작은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정성이 느껴지는 가게였다. 구석 테이블에 여자 하나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소라야, 저기 손님 왔어." 박선영이 그쪽을 향해 소리쳤다. 노트북 앞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크고, 웃는 인상이었다. 화면에 작은 마카롱 사진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색색깔로 예쁘게 찍힌 사진들이었다. "어, 준호 오빠!" 오빠.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반응이 나왔다. 이준호의 기억이 몸을 움직였다.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하는 이 느낌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마치 남의 손을 빌려 쓰는 것 같은 기분. "소라 씨, 요즘 마카롱 장사는 잘 돼요?" 한소라. 박선영의 사업 파트너이자 룸메이트라는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준호는 몇 번 그 마카롱을 사 먹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딸기맛이었나. 아니면 얼그레이. 기억이 뭉텅뭉텅 잘려 있어서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 잘 되죠! 다음 달에 팝업스토어도 하나 잡았다니까요. 오빠도 나중에 투자 좀 해줘요. 오빠는 뭔가 큰 사업하는 사람 같아 보이던데." 큰 사업.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실소였다. 내가 지금 팔만 삼천 원짜리 통장 들고 있는데. 겉으로는 그냥 웃었다. "제가 뭐 그럴 형편이 되나요." "에이, 딱 봐도 뭔가 있어요. 눈빛이 그래." 한소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훑어봤다. 신비로운 사업가로 보인다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 아니라고, 저는 건설 현장 나가는 사람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한소라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에이, 오빠 그거 다 위장이잖아요. 나도 다 알아요." 위장은 무슨. 이건 진짜인데. 하지만 부정해봤자 더 의심만 살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넘겼다. 한소라는 노트북을 다시 두드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팝업스토어 자리 임대료가 왜 이렇게 비싸지." 그 말에 박선영이 국자를 든 채 끼어들었다. "내가 몇 번 말했지, 그 자리 말고 다른 데 알아보라고." "거긴 유동인구가 다르잖아." 둘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가게를 채웠다. 오래 같이 산 사람들끼리만 나올 수 있는 리듬이었다. 나는 그냥 그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흘려들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어이, 여기 순대국 있나!" 걸걸한 목소리, 중년 남자였다.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김덕배 아저씨, 여긴 분식집인데 무슨 순대국이에요." 박선영이 눈을 흘겼다. "아, 그럼 순대나 좀 줘봐. 어디 아저씨한테 이렇게 매정하게 대해." 김덕배는 자리에 털썩 앉으며 나를 힐끗 봤다. 배가 나온 체형에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 나와 같은 현장 소속인 건가, 아니면 그냥 근처 다른 공사장 사람인가 궁금했다. "어, 준호 아니여? 오늘도 현장 나갔다 왔나 보네. 얼굴에 흙먼지가 그대로여." "네, 좀 그렇죠."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돌아갔다. 이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냥 가난한 스무 살도 안 된 노동자였다. 신비로운 사업가는 무슨. 이 몸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이 안에 뭐가 들어앉았는지 이들은 절대 알 수 없었다. 김덕배가 순대를 받아 한 점 집어먹으며 물었다. "거 요새 현장 어때, 일당 밀린 건 없고?" "아직은 괜찮아요." "괜찮으면 다행이지. 나 저번 현장은 두 달치 밀려서 진짜 죽을 뻔했어." 그 말에 속이 서늘해졌다. 일당이 밀린다는 게 어떤 건지, 이 몸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전생에서는 돈 걱정을 이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 옆 테이블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이고, 준호 오빠 왔네!" 화려한 원피스, 진한 화장. 조미애였다. 충청도 사투리가 살짝 섞인 말투로 나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오빠, 요즘 뭐 큰 일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거 진짜여?" "소문요? 그런 거 없는데요." "에이, 겸손하기는. 내가 딱 보면 알아. 오빠는 그냥 노동자 아니여. 뭔가 있어." 조미애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손톱에는 화려한 네일아트가 되어 있었다. 이 골목 어디에도 안 어울릴 것 같은 화려함이었는데, 이 가게 안에서는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이 사람들은 다들 나를 뭔가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쩌면 이준호의 원래 성격이 그런 오해를 사는 스타일이었나 보다. 아니면 그냥 다들 심심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걸까. 어느 쪽이든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떡볶이가 나왔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확 닿았다. 한 젓가락 집어 먹었다. 맵고 달았다. 전생에서는 이런 걸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두목 딸과 다니던 곳은 다 비싼 룸살롱이나 고급 레스토랑이었으니까. 그때는 이런 떡볶이 같은 걸 먹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자존심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했다. 뜨거운 떡볶이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는데, 그 열기가 서러움을 데워 올리는 것 같았다. 죽어서 다시 태어났는데 왜 하필 이렇게 가난한 몸으로, 이렇게 팍팍한 삶으로 떨어졌을까. 떡볶이 하나를 더 집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총을 쥐고 사람을 겨눠본 적이 있다는 것도, 죽기 직전까지 배신과 계산 속에서 살았다는 것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냥 흙먼지 묻은 얼굴의 스무 살도 안 된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경고: 감정 동요가 감지되었습니다. 정체 은폐 지수가 하락합니다.] "뭐?"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박선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매워요?" "아, 아니에요.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신경이 곤두섰다. 감정 동요까지 감시한다고? 이 시스템은 대체 어디까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정체 은폐 지수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게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젓가락을 든 손이 잠깐 멈췄다. 다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 가게 안에서, 나만 혼자 다른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떡볶이를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며 박선영에게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안 섰다. 다음이 있을지, 이 시스템이라는 게 나를 언제까지 이 몸에 붙여둘지도 몰랐으니까. 그날 밤, 반지하 방으로 돌아와 시스템 창을 다시 불러냈다. 뭔가 더 알아야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는 언제 어떻게 발목을 잡힐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은 여전히 습했다. 벽지에는 곰팡이 자국이 얼룩덜룩 번져 있었고, 창문 밖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흔들렸다. [시스템 상세 정보를 요청하셨습니다.] [일부 정보는 접근 권한이 부족하여 열람할 수 없습니다.] "뭐가 부족한데." [신뢰 등급 상승이 필요합니다.] 신뢰 등급. 그건 또 뭔가. 화면을 아무리 눌러봐도 더 이상의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시스템은 딱 필요한 만큼만, 그것도 반쯤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내라는 식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명령어들을 눌러봤다. 정체 은폐 지수, 라고 입력했다. [해당 정보는 신뢰 등급 2 이상부터 열람 가능합니다.] "내 등급은 몇인데." [현재 신뢰 등급: 0] 0. 숫자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시작부터 바닥이라는 소리였다.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이 시스템이 얄미웠다. 마치 시험지를 던져주고 문제도 안 알려준 채 풀어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흔들렸다. 아까 골목에서 느꼈던 그 시선이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 나를, 아니 정확히는 이 시스템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그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감정 동요가 감지된다는 그 경고문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슬퍼도 슬퍼하면 안 되고, 화가 나도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겉으로는 완벽하게 이준호로 살아야 한다는 건가. 눈을 감았다. 팔만 삼천 원짜리 통장, 흙먼지 묻은 안전화, 행복분식의 떡볶이 냄새. 그 모든 게 뒤섞여서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어디선가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을 시스템의 존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신뢰 등급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이 몸에, 이 삶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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