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마당에 낯선 그림자 둘이 들어섰을 때, 나는 이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청운문 복장. 검은 무복에 은실로 문양을 새긴 어깨끈. 허리에 찬 검은 장식용이 아니었다.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들이 마을에 들어올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상 현상.
"소문이라니." 강태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등 뒤로 돌아간 손이 문틀을 짚고 있었다. 몸으로 문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저 사람은 지금 나를 등지고 서 있는 거다.
"뒷산에서 나무가 뿌리째 뽑힌 흔적, 바위에 이상한 실금, 흙에 파인 손자국." 청운문 사내가 하나씩 나열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하는 게, 마치 장부라도 읊는 것 같았다. "근처 나무꾼이 발견해서 문파에 알렸소. 이 마을에 그런 힘을 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오."
나는 마당 구석에 서 있었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발이 걸려 넘어졌을 때 흙바닥에 남긴 그 손자국.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순간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때는 그냥 재수 없게 넘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넘어진 게 아니라 힘이 새어나간 거였다. 통제가 안 되던 시기였다. 지금도 완전히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는 기 감응이 무반응인 아이입니다." 강태산이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 힘이 있을 리 없소."
"그러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내가 되받았다. 표정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런 말을 백 번은 해본 얼굴이었다. "불구든 아니든, 마을에 이상한 힘이 도는데 원인을 모른 채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확인만 하면 됩니다. 아니면 그만이고."
아니면 그만이고. 저 말이 제일 무서웠다. 확인해서 맞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사내들의 시선이 슬쩍 내 쪽으로 넘어왔다가 다시 강태산에게 돌아갔다. 나는 그 시선의 무게를 그대로 느꼈다. 저울 위에 올라간 기분이었다.
그 순간, 백선화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창을 든 채였다. 훈련을 하다 온 모양이었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고, 소맷단이 걷어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한눈에 읽은 듯했다. 걸음이 느려지지 않았다. 창끝을 슬쩍 땅에 짚고 사내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흔적들, 언제 발견됐다 했소." 그녀가 물었다. 인사도 없이, 곧바로 본론이었다.
"나흘 전이오."
"나흘 전,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열이 있어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백선화가 딱 잘라 말했다.
거짓이었다. 나는 그날 뒷산에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볕을 쬐고 있었고, 그 힘을 어떻게든 다뤄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흙바닥에 손자국을 남겼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눈빛도, 목소리도, 어느 한 곳도 떨리지 않았다.
사내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눈짓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증인이 있습니까."
"제가 증인입니다." 백선화가 말했다. 창을 다시 짚으며 한 발 더 앞으로 나섰다. "아이 어미가 아이 상태를 착각할 리 없지요."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뒷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뭔가 있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서고 있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낯빛 한 번 바꾸지 않고.
이 여자, 배짱이 대단하다. 나는 그 생각을 삼켰다.
청운문 사내들은 못 미더운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캐물을 근거가 없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사내가 말했다. 목소리에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아이를 문파로 불러 정식으로 조사하겠소.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다음은 없소."
그들은 몸을 돌려 마당을 나섰다. 검은 무복 자락이 바람에 한 번 흔들리고,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걸 느꼈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 마당에는 무거운 침묵이 남았다. 강태산이 백선화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놀람과 걱정이 반씩 섞여 있었다.
"왜 그런 거짓을 했소." 그의 목소리에 놀람이 섞여 있었다.
"증거도 없이 아이를 문파로 끌고 가게 둘 순 없으니까요." 백선화가 창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손끝이 창대를 쓸어내리는 동작이 무심했지만,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돌아봤다. 눈빛이 복잡했다. 걱정과 확신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강윤이가 요즘 뭔가 달라진 건 나도 압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걸음걸이가 달라졌고, 눈빛도 예전 같지 않아요. 밤에 마당에 나가 앉아 있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저 아이가 남을 해치거나 나쁜 일을 할 애가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 말에 나는 뭔가 목이 막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밤마다 나가 앉아 있는 것도, 눈빛이 달라진 것도, 그 모든 변화를 하나하나 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감쌌다. 조건 없이.
이건 계산이 아니었다. 적어도 계산으로 보이지 않았다.
강태산은 한참을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유난히 길었다.
"불구라는 낙인 위에 다른 이상한 소문까지 얹히면, 이 마을에서 살기가 더 힘들어질 거요." 그가 말했다.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백선화가 말했다. 창을 벽에 기대 세우며,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이 끝나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조현탁이 마당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조용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나는 마당에 혼자 나와 밤하늘을 봤다. 별이 유난히 많은 밤이었다.
바람이 조금씩 불어와 마당의 나뭇잎을 흔들었다. 사삭. 사사삭.
그 소리마저도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축적량 41%]
[경고: 관찰 위험 수준 유지]
숫자는 여전히 경고를 띄우고 있었다. 41퍼센트. 저 숫자가 100이 되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정확히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확신만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고보다 더 크게 마음에 남은 건, 백선화의 그 말이었다. 저 아이가 나쁜 일을 할 애가 아니라는 걸 안다는 말.
그녀는 진짜 강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안에 있는 존재가, 그 강윤과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도 어쩌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도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나를 감쌌다.
괜찮다고 되뇌던 마음이, 이번엔 조금 다르게 흔들렸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신세를 지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 온기를 아직은 놓고 싶지 않다는 다른 생각이 겹쳤다. 두 생각이 부딪혔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론이 안 나는 채로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강태산이 짐을 꾸리는 걸 봤다. 마당에 봇짐 여러 개가 나와 있었고, 조현탁도 함께였다. 그는 말없이 밧줄로 짐을 단단히 묶고 있었다.
"무슨 짐이에요." 내가 물었다.
강태산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손은 짐을 묶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이 마을에 계속 있다간, 저들이 다시 올 거다." 그가 말했다. "당분간 본가로 옮겨야 할 것 같구나. 며칠 뒤 출발한다."
본가.
강윤의 기억 속에 있는, 청명국 남쪽 고을이었다. 큰 대문과 넓은 마당,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 곳. 강씨 가문이 대대로 자리를 지켜온 터. 거기까지 가려면 산길과 관도를 거쳐 며칠은 걸리는 여정이었다.
"조현탁도 함께 갑니까." 내가 물었다.
"호위가 필요하니까." 강태산이 짐을 다시 여미며 말했다. 매듭을 확인하는 손길이 꼼꼼했다. "요즘 관도에 도적 떼가 늘었다는 소문도 있고. 산길을 도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그러면 시일이 더 걸린다."
도적 떼라는 말에, 나는 문득 [축적량 41%]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아직 절반도 안 되는 힘이었다. 이걸로 무슨 일이 생기면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도적을 만난다면. 산속에서 짐승을 만난다면. 아니면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을 만난다면. 경우의 수를 하나씩 세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마을을 떠난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도 있었다.
여기서는 이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청운문 사내들이 한 번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할 거다. 새로운 곳이라면,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
짐을 꾸리는 강태산의 손이 평소보다 무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듭 하나를 묶고, 다시 풀고, 다시 묶었다. 손에 익은 일일 텐데도, 오늘은 유난히 시간이 걸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 여정이 결코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마당 한쪽에서 백선화가 창을 정비하고 있었다. 창날을 숯돌에 문지르는 소리가 사각, 사각,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눈이 잠깐 나를 향했다가, 다시 창끝으로 돌아갔다.
"출발할 때까지 몸조리 잘해라." 그녀가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창날에 고정된 채였다. "긴 길이다."
"네." 내가 답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그걸로 됐다는 듯 다시 창을 문지르는 데 집중했다.
출발은 사흘 뒤였다. 그 사흘 동안, 나는 최대한 볕을 모아둬야 했다. 관도 위에서, 산길 위에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힘을 아껴도 부족할 판인데, 지금 채워둔 41퍼센트로 버틸 수 있을지, 나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여정이 끝날 때쯤, 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