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복도는 거실보다 조명이 낮았다.
이서연을 부축한 채 몇 걸음을 옮기는 동안 향 냄새가 코끝에 계속 따라붙었다.
로즈마리와 뭔가 다른, 조금 더 무거운 향이었다.
이서연의 몸이 자꾸 내 쪽으로 기울었다.
체중이 가벼웠다.
가벼운데도, 그 무게가 손끝에 오래 남았다.
"저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발끝이 자꾸 카펫에 걸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서연의 눈꺼풀이 반쯤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그 눈이 나를 향했다가, 초점을 놓치고 벽 쪽으로 미끄러졌다.
"저 오늘···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괜찮아요. 곧 나아질 겁니다."
내 목소리는 낮았다.
너무 낮아서, 위로처럼 들렸을지 위협처럼 들렸을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겁먹게 하지 마. 그럼 도망가려고 해.’
형진 형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냥 자연스럽게 데려가. 걔들도 나중엔 자기가 원해서 그런 거라고 믿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형이 정말 그렇게 믿는지 궁금했었다.
지금은, 그 말이 이상하게 편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이서연의 발이 내 발끝을 스치듯 따라왔다.
복도 끝 방문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 문 뒤에 뭐가 있는지 이서연은 몰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간극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여기, 좀 쉬시죠."
나는 준비된 방문을 열었다.
낮은 조명 아래 침대 하나와 협탁, 그 위에 놓인 물잔이 보였다.
정민수가 미리 세팅해 둔 그대로였다.
물잔 옆에는 작은 알약 케이스도 놓여 있었다.
뚜껑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재빨리 협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이서연이 침대에 앉으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머리가··· 좀 이상해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문을 반쯤 닫으며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낮고 부드럽게 들렸다.
스스로 들어도 어색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이서연이 침대에 몸을 눕히며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감독님, 저··· 오늘 촬영 얘기, 계속하실 거죠···?"
"네."
거짓말이었다.
이서연은 그 대답을 듣고서야 편해진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그 숨소리를 문 너머로 들으며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받았다.
"네."
"한 감독."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성그룹 이사였다.
"이서연이 오늘 어디 있는지 압니까."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다른 무게가 있었다.
나는 이서연 방문을 슬쩍 돌아봤다.
문틈으로 어두운 실내가 보였다.
"대본 수정 논의로 잠깐 뵀습니다."
"그래요."
짧은 대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로 라이터 소리가 들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였다.
"한 감독이 요즘 우리 서연이랑 자주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품 때문입니다."
"그렇겠죠."
이사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척하는 소리였다.
"우리 서연이, 다치는 일 없게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 끝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거실로 돌아오는 길, 오혜진이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다.
와인잔은 이미 두 번째로 채워져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가 아까보다 흐트러져 있었다.
"이서연 씨는요?"
오혜진이 물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늘어졌다.
"많이 피곤해하시더라고요. 잠깐 눕혔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오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와인잔을 살짝 흔들었다.
잔 안의 붉은 액체가 조명을 받아 일렁였다.
"그렇구나."
더 묻지 않았다.
로즈마리 향이 아직 거실을 채우고 있었고, 오혜진의 눈꺼풀도 무거워 보였다.
"감독님도 한 잔 하세요."
오혜진이 잔을 내밀었다.
"운전해야 해서요."
"에이, 한 잔인데."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다음에 마시겠습니다."
오혜진이 어깨를 살짝 늘어뜨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 시선이 잠시 나를 훑고 지나갔다.
뭔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남기고 복도로 나섰다.
걸음이 빨라졌다.
이서연의 방문 앞에 서서,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낮은 숨소리를 들었다.
일정한 간격의 숨소리였다.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손끝에서부터 그 냉기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였다.
느리고, 일정했다.
"감독님?"
오혜진이었다.
와인잔을 든 채, 복도 끝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아까와는 다르게 서늘해져 있었다.
와인잔을 쥔 손끝이 잔 표면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서 뭐 하세요."
목소리에서 취기가 사라져 있었다.
너무 갑자기, 너무 완전하게.
나는 손잡이를 놓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등 뒤로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이서연의 숨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혜진의 시선이 내 손에서, 문틈으로, 다시 내 얼굴로 옮겨갔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 시선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소름이 돋았다.
"이서연 씨 상태 좀 확인하려고요."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혜진이 천천히 다가왔다.
구두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또각.
또각.
와인잔 속 붉은 액체가 조명 아래 흔들렸다.
"확인이요."
오혜진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제가 도와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