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차이현의 차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규칙적으로 차이현의 옆얼굴을 스치며 명암을 만들었는데, 그 명암이 바뀔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다르게 읽혔다. 핸들을 쥔 손가락은 미세하게도 흔들림이 없었고, 창밖의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지나갈 때마다 그 색이 순간적으로 얼음처럼 투명해졌다가 다시 짙은 어둠으로 돌아왔다.
지안은 조수석 유리창에 이마를 붙일 듯 가까이 기댄 채,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무의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손목 안쪽의 얼얼한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차 안을 가득 채운 이 침묵의 질감이었다.
"아까 그 사람들, 원래 그렇게 사나워요?" 지안이 침묵을 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간을 그렇게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니까요."
"그럼 대표님은요."
차이현은 대답 대신 짧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대답인지 회피인지 지안은 구분할 수 없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각도는 분명 웃음의 형태였는데, 그 눈빛만은 조명이 꺼진 무대처럼 아무 것도 비추지 않았다.
"손목, 아직 아파요?" 차이현이 화제를 돌렸다.
지안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손자국이 아직 옅게 남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니 뻐근한 통증이 뒤늦게 올라왔다.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 너무 쉽게 하네요."
그 말에 지안은 순간 말을 잃었다. 차이현의 목소리에는 비난이 아니라, 어딘가 걱정 비슷한 것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조한 어조 아래에 숨겨진 그 온도가 낯설어서, 지안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희 엄마도 그런 말 자주 해요. 저보고 뭐든 너무 쉽게 참는다고."
"어머니와 사이가 어떤데요."
"...복잡해요."
차이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신호가 걸리자 잠시 차를 멈춰 세우고, 지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지한 차 안에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림 다시 그려볼 생각 없어요?"
지안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왜요?"
"면접 볼 때부터 눈치챘거든요. 당신 손가락, 펜을 쥐는 방식이 아니라 붓을 쥐던 습관이 남아 있는 손이었어요."
지안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작은 습관을, 누군가가 알아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엄지와 중지 사이가 살짝 안으로 굽어드는 각도, 그것을 알아본 사람은 지안의 가족 중에도 없었다.
"그림, 그만둔 지 오래됐어요."
"그만둔 거예요, 아니면 그만두라고 강요당한 거예요."
그 질문이 신호등의 초록불보다 더 늦게 지안의 머릿속에 도착했다.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신호가 바뀌었고 차는 다시 움직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이 지안의 눈앞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재능은 숨겨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더라면, 지안은 그 순간 다른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 안에는 그 말을 대신할 침묵만이 흘렀다.
***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지안은 차에서 내리기 전 잠시 머뭇거렸다. 안전벨트를 풀어내는 손가락이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고마워요, 오늘."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내 클럽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책임도 내 몫이었어요."
"그래도요."
차이현은 잠시 지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오래 머무는 동안, 지안은 자신의 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좁아진 듯했고, 어딘가에서 옅은 향이 흘러왔다. 인공적이지 않은, 어딘가 오래된 나무 냄새 같은 그런 향이었다.
"그 클럽 이름, 야연이라고 했죠. 무슨 뜻이에요?"
"밤의 잔치." 차이현이 짧게 답했다.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죠."
"저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되나요?"
그 질문에 차이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다시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 색이 아주 잠깐, 지안이 클럽에서 보았던 그 손님들의 것과 닮아 보였다.
착각이었을까.
지안은 그 짧은 순간을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차이현의 표정은 원래의 무심함으로 돌아가 있었다.
"들어가요. 늦었으니까."
지안은 차에서 내렸고,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붉은 후미등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안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라온이 손목 단말기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늘 밤, 평소랑 좀 다른 텐션이신데요."
"...그런가."
"차이현 대표라는 분, 좀 특이한 사람 같던데요. 검색해봤는데 음영테크 CEO 맞더라고요. 근데 개인정보가 이상하게 텅텅 비어 있어요."
"무슨 뜻이야?"
"출생 기록, 학력, 다 있는데 이상하게 사진이 5년 이상 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이 야연이라는 클럽,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등록된 사업체 목록에 없어요."
지안은 그 말을 곱씹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좁은 현관에 불을 켜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잠시 시큰거렸다.
"라온, 그 클럽 손님들 있잖아. 아까 봤던 사람들."
"네."
"눈동자 색이 다 이상했어. 얼음처럼 투명하거나, 불처럼 붉거나. 그런 게 렌즈로 되는 건가?"
라온은 잠시 침묵했다. 평소라면 즉시 대답이 돌아올 질문이었는데, 그 짧은 정지가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왔다. 마치 대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감추는 것 같은 정지였다.
"...확인해볼게요."
그 짧은 대답 뒤에 남은 여백이, 지안의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지안은 현관 안쪽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그 순간, 신발장 위에 놓아둔 스케치북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밀어넣었던 그대로였는데, 오늘 밤은 이상하게도 그 표지를 다시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끝이 표지의 낡은 가죽 질감을 스치는 순간, 오래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려나오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지안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스케치북을 펼쳤다.
펼친 스케치북 첫 장에는, 오래전 스승이 그려준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재능은 숨겨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래 서명처럼 남겨진 이름, 한재우.
지안은 그 이름을 손끝으로 짚으며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종이의 결이 손끝을 스치는 감촉이 낯설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이 스케치북을 펼친 게 언제였는지, 그 기억조차 흐릿했다.
그 이름을 다시 마주했더라면, 지안은 이 순간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차이현이라는 사람의 눈동자가, 야연이라는 클럽의 존재하지 않는 등록 서류가, 그리고 이 스케치북 속에 남은 오래된 이름이, 모두 어떤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는 예감. 그 예감이 지안의 손끝을 타고 천천히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