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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마차가 멈춘 곳은 거대한 광장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횃불과 등불이 사방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소란스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횃불의 그림자가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낯선 파문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돌바닥은 차가웠고, 발밑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냄새, 짐승의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피 냄새까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이런 곳이었구나.) 높은 단상 위에, 쇠사슬에 묶인 이들이 한 줄로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이 동물인간이었다. 귀가 늘어진 자, 뿔이 난 자, 비늘 같은 무늬가 피부에 새겨진 자. 모두 표정이 없거나, 혹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한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고, 그 옆의 남자는 눈을 감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여기가… 노예 경매장이구나.) 관헌들은 나를 그 줄의 끝자락에 세웠다. 손목의 쇠사슬이 차갑게 살을 파고들었다. 살짝 움직이려 하자 쇠사슬이 부딱, 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상품을 고르는 눈빛들이었다. 누군가는 나의 팔을, 누군가는 나의 다리를, 또 누군가는 그저 얼굴만을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는 그 시선들을 피하려 고개를 숙였지만, 어디로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단상 위에서 진행자가 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산속에서 발견된 미등록 고양이족 여아입니다! 나이는 열여섯 가량, 훈련되지 않은 순수한 야생종으로 추정됩니다!" 나는 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순수한 야생종… 그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몇몇은 낮게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저것 봐, 귀가 아직도 쫑긋거리는군." "손발이 다 온전해 보이는데." 그런 말들이 화살처럼 귀에 박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앞으로만 고정했다. "시작가는 은화 삼십!" 손이 몇 개 올라갔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한쪽 방향에서 유난히 강렬한 시선을 느꼈다. 등줄기가 먼저 반응했다. 마치 누군가 차가운 손끝으로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상 아래 가까운 자리에 앉은 남자였다. 비단옷을 화려하게 걸치고,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귀족이었다. 그의 옷깃에는 은실로 짜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화려함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의 눈빛이 나를 훑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달랐다. 마치 물건의 결함을 찾는 듯한, 혹은 어떻게 부숴야 더 재밌을지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옆에 앉은 남자에게 몸을 기울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저 다리, 저 팔… 온전하군." 그가 옆 사람에게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전한 채로 사서 내 방식대로 바꾸는 게 더 재밌지." 옆 사람이 그 말에 낮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줄기로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무슨 뜻이야, 저 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온몸이 떨렸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어느 것도 좋은 쪽은 아니었다. "은화 백!" 그 남자가 손을 들며 외쳤다. 주위가 순간 조용해졌다. 다른 이들이 하나둘 손을 내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안도한 듯한 표정으로, 몇몇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백에 도전할 사람 없습니까?" 진행자의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람에게 팔린다고?) 방금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팔다리를 바꾸겠다는, 온전한 채로 부수겠다는 그 말. 숨이 가빠졌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았다. 손목의 쇠사슬을 붙잡고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관헌의 손이 어깨를 짓눌렀다. "움직이지 마라." 관헌이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나는 그 손의 무게에 짓눌려 더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 "백일. 낙찰까지 셋을 세겠습니다. 하나…" 진행자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든… 제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소리가 내 귀에마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둘…" 그 순간,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광장을 갈랐다. "은화 삼백."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광장의 모든 소음을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돌아갔다. 나도 눈을 떴다. 단상 옆, 어둠이 진 자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검은 로브를 걸친 그의 걸음걸이는 조용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끌어당겼다. 로브 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고, 그 아래로 드러난 손이 유난히 창백했다. 비단옷의 귀족, 조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굳었다. "백은호. 또 네놈이냐." 그가 낮게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른 분노가 섞여 있었다. 로브를 걸친 남자, 백은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조태율 공." 그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언가는 결코 순종적이지 않았다. "넌 늘 이런 식으로 값을 올려놓고 물러나지. 이번엔 진짜로 살 생각이냐." 조태율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탁, 탁, 하고 울렸다. 백은호는 그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은 조태율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먹잇감을 훑는 눈빛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자비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손목으로, 다시 얼굴로 옮겨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은화 삼백에 이의 있으십니까?" 진행자가 조태율을 향해 물었다. 조태율은 잠시 백은호를 노려보다가, 결국 손을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불쾌함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됐다. 다음 물건에나 관심 두지. 백은호, 이번엔 넘어가주는 거다." 그는 낮게 씹어뱉듯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슬쩍 몸을 비켰다. "낙찰되었습니다! 은화 삼백, 백은호 님께!" 진행자의 목소리가 광장에 퍼졌다. 그 소리와 함께 주변의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백은호를 바라봤다. (저 사람이… 나를 산 거야?) 다리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가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젊었고, 표정에는 이상하게도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 눈매는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 담긴 눈빛만은 부드러웠다. 그는 내 앞에 멈춰 서서, 쇠사슬에 묶인 내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쇠사슬의 자국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많이 놀랐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다가와 내 손목의 쇠사슬을 매만졌다. 차가운 쇠붙이 위로 그의 손끝이 스치자, 이상하게도 그 손끝만큼은 따뜻했다. 어쩐지, 그 눈빛 속에서 처음으로 안도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안도가 무엇을 대가로 하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관헌이 다가와 내 손목의 쇠사슬을 풀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손목이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가 진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백은호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시선들이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고, 그중 몇몇은 여전히 조태율이 있던 자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그의 손 위에 얹었다. 그의 손은 크고 단단했지만,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본다 해도, 그곳에 남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등 뒤에서 여전히 울리는 진행자의 목소리와, 다음 순서를 알리는 소리만이 광장의 소란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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