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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교실 뒷문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는 늘 숨을 죽이는 버릇이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음보다 내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릴까 봐, 신발 밑창을 바닥에 닿기 전부터 조심스레 내려놓는 습관까지 생겼을 정도였는데,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자리를 찾아가 앉는 것. 그게 한빛고등학교 2학년 3반에서 내가 지켜온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는 걸, 그날 아침에도 다르지 않게 실천하고 있었다.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으며 창밖을 힐끗 보니, 운동장 너머로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아침 공기가 뿌옇게 깔려 있었고, 그 흐릿한 풍경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무료한 하루의 시작이길 바랐던 걸까. 그러나 담임이 조회 시작 전부터 유난히 들뜬 얼굴로 교탁 앞을 서성이는 걸 보고서야,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평소라면 출석부를 든 채 대충 인원을 세고 넘어갈 사람이 오늘따라 몇 번이나 넥타이를 고쳐 매는 걸 보니, 저건 분명 평소와 다른 신호였다. 반 아이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몇몇은 화면을 서로에게 들이밀며 낮게 탄성을 내지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소란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신났을까, 하는 생각조차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거니, 늘 그래왔듯이. "오늘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다." 담임의 말에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가, 곧 이어지는 이름 하나에 폭발하듯 술렁였다. "백서아 학생이야." 백서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광고판마다 걸려 있는, 전 국민이 알 만한 그 아이돌이 우리 학교에, 그것도 하필 내가 있는 이 반에 온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문 쪽으로 목을 빼고 있었고, 누군가는 벌써 휴대폰 카메라를 문틈에 대고 있었는데, 나는 그 흥분의 온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멀뚱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설마, 진짜로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한 걸 느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하얗고 고른 피부, 어깨선 아래로 살짝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들어온 그녀는 정말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봤던 얼굴이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한 윤곽으로 눈앞에 서 있었고, 나는 그 순간 숨을 삼키며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교복을 입은 모습이 어색할 만도 한데, 그녀는 마치 원래부터 이 교실에 다니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발을 옮겼고, 그 걸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파도처럼 따라붙었다. 왜 하필, 하는 의문이 스치는 사이 그녀의 시선이 교실을 한 번 훑고 지나갔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선이 나에게서 잠깐 멈춘 것 같았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지웠다. 국민적 아이돌이 나 같은 무명의, 친구 하나 없는 남고생을 눈여겨볼 이유가 있을 리 없었으니까. 담임의 소개가 끝나자 백서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 전체를 향해 인사를 건넸고, 아이들은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몇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고, 뒷자리 누군가는 눈물까지 훔치는 척 소란을 피웠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그저 몸을 낮추며, 이 소용돌이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길 바랄 뿐이었다. "자리는… 저기 창가 쪽이 비어 있네." 담임이 손짓한 곳은 하필 내 옆자리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옮겨왔고, 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시선을 책상 위로 떨어뜨렸다. 왜 하필 내 옆이어야 하나, 이 넓은 교실에 빈자리가 여기 하나뿐이었나.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백서아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그녀가 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낯익은 향이 훅 끼쳐왔다. 어딘가 익숙한, 그러나 어디서 맡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향이었다. 달큰하면서도 서늘한, 꽃과는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잘 부탁해." 그녀가 짧게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을 열면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아서 그냥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별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고 앉았고, 나는 그 옆에서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고도 나는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던 탓이었는데, 칠판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수업 중간중간 나를 흘깃거리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괜한 착각인가 싶어 애써 무시하며 칠판만 바라봤다. 필기를 하는 척 손을 움직였지만 정작 노트에는 아무 의미 없는 선만 그려져 있었다. 도대체 왜,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반 아이들이 우르르 백서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자는 아이, 사인을 부탁하는 아이, 그저 말을 걸어보고 싶어 서성이는 아이까지, 순식간에 그녀의 자리는 인파로 둘러싸였다. 누군가는 앨범을 들고 와 사인을 받겠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부탁했고, 또 누군가는 조심스레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물었다. 백서아는 그 모든 요청에 익숙하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응해주었는데, 그 여유로움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나려 했는데, 하필 그 순간 백서아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어디 가?" 그녀가 물었고, 나는 순간 말을 잃은 채 우뚝 멈춰 섰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또 한 번 나에게로 쏟아졌다. 방금까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조차 잠깐 대화를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게 느껴졌고, 그 시선들이 등에 꽂히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심 속에서 나는 손끝이 떨리는 걸 느끼며 겨우 대답을 짜냈다. "그냥… 화장실." "그래." 그녀는 짧게 웃으며 다시 주변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의 눈빛에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읽은 것 같았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기엔 너무 깊고, 그저 친절함이라기엔 너무 집요한 시선이었다. 복도로 나와서도 나는 한참을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심장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듯 불규칙하게 뛰었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그냥 우연이겠지. 아이돌이라는 사람들은 다 저렇게 사람 대하는 게 익숙해서 저런 눈빛도 아무 뜻 없이 나오는 거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교실로 돌아갔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또 그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머무르는 순간들을 몇 번이나 더 느꼈고, 그럴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점심시간에도, 체육 시간에도, 심지어 자율학습 시간에도 그녀는 마치 나의 동선을 계산하고 있다는 듯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정확한 타이밍에 시선을 맞춰왔다. 이대로 아무 일 없이 하루가 끝나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지막 수업을 마쳤을 때, 종이 울리자마자 백서아가 내 자리 앞으로 다가왔다. 가방을 챙기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교실 안의 소음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오직 그녀가 다가오는 발소리만이 선명하게 귓가에 남았다. "이준호."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담임이 출석부를 부를 때 딱 한 번 언급된 이름을, 그녀는 이미 완전히 외운 듯한 말투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불렀다. 나는 그 순간 왜인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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