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내 파티원이 검도부 미녀라니

1화

무영검전. 정식 명칭은 '무영검전: 칠흑의 계승자'였지만, 나를 포함한 유저 대부분은 그냥 무영검전이라고 불렀다. 2년 전 오픈했을 때만 해도 반짝 인기몰이 하다 사라질 게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망겜 예정'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었고, 나도 처음엔 그 말에 반쯤 동의했다. 하지만 튜토리얼을 세 번쯤 반복해보고 나서, 나는 이 게임이 다를 거라고 확신했다. 전투 시스템의 타이밍 판정이 프레임 단위로 짜여 있었고, 그 미묘한 차이를 몸으로 익힌 유저와 그렇지 못한 유저 사이의 격차가 압도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였다. 남들은 그저 스킬을 누르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안에 숨어 있는 계산식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크리티컬 확률 12퍼센트에 치명타 배율 1.8배. 방어 관통 스킬은 상대 방어력의 30퍼센트를 무시하고 들어간다. 이런 숫자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박혀 있는 유저는 서버 안에서 나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들이 감으로 싸울 때 나는 계산으로 이겼고, 그 결과가 랭킹 3위라는 숫자로 정직하게 돌아왔다. 랭킹이 높아지면 좋은 파티를 구하기가 쉬워진다는 건 상식이었다. 실제로 랭킹 게시판 상위 100위 안에 들면 하루에도 몇 번씩 파티 제안 메시지가 쌓였다. 그런데 정작 내가 반년 넘게 함께한 파티는 그 게시판을 뒤져서 만든 인연이 아니었다. 우연히 던전 입구에서 마주친 세 명, 그게 시작이었다. 산. 남성형 검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유저였는데, 검격의 궤적이 특이하게도 낭비 없이 깔끔했다. 대개 초보들은 스킬을 연타로 몰아넣다가 쿨타임에 걸려 멈춰서는데, 산은 항상 한 박자 늦게 다음 스킬을 채워 넣었다. 그건 반응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다음 세 수를 미리 그려놓고 움직이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리듬이었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세 번째 던전에서 확신했다. 보스 패턴이 바뀌는 순간, 파티원 전부가 허둥댔는데 산 혼자만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치 패턴을 외우고 있었던 것처럼. 타마. 고양이귀가 달린 도적 캐릭터로, 인게임 스탯 창을 보면 볼륨감이 상당한 외형이었지만 정작 플레이는 그런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냉정했다. 함정을 미리 감지하고, 몹의 어그로 범위를 정확히 계산해서 움직이는 두뇌파. 채팅창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었고, 필요한 말만 짧게 했다. "뒤에 함정." "왼쪽 몹 어그로 넓음." 그게 타마의 채팅 전부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 절제된 화법이 계산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절제가 아니라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에나. 금발 엘프 힐러였고, 파티 안에서 가장 말이 많았다. 채팅에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누가 조금이라도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태도가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반년쯤 지나고 나니 그 밝음이 파티 분위기를 얼마나 지탱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알았다. 산이 실수를 해도, 타마가 무뚝뚝하게 지적을 해도, 모에나가 중간에서 웃음으로 그 틈을 메웠다. 넷이 모이면 던전 클리어율이 압도적으로 올라간다는 걸 통계로도 증명할 수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록한 로그만 봐도, 이 조합의 클리어율은 서버 평균의 두 배에 가까웠다. 우리는 서로의 닉네임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게 오히려 편했다. 나이도, 학교도, 얼굴도 모르는 채로 여섯 달을 함께 싸웠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이한 신뢰였는지 새삼스러웠다. 계산으로 사는 나에게, 정보 없이 믿는다는 건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 넷에게만은 예외였다. 그 신뢰에 균열이 생긴 건 지난주였다. "우리 한번 만나볼까?" 산이 파티 채팅에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쯤 다시 읽었다. 게임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실제로 만난다는 건, 계산이 통하지 않는 변수였고, 나는 변수가 많은 상황을 늘 경계했다. 크리티컬 확률처럼 명확한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 표정이나 말투나 침묵의 의미 같은 건 내 계산식 밖의 영역이었다. "찬성." 타마가 짧게 답했다. 그 짧은 두 글자에서도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도요! 드디어!" 모에나의 이모티콘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셋의 반응이 이렇게 빠르니 나 혼자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나는 잠시 커서를 채팅창에 올려놓고 뭐라고 쳐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그러죠"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남겼다.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소는 학교 앞 번화가의 프랜차이즈 카페로 정해졌다. 시간은 토요일 오후 세 시. 나는 약속 이틀 전부터 이상하게 잠이 잘 안 왔는데, 그게 단순한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밤에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나는 자꾸 파티창을 열어 아이디 세 개를 눈으로 훑었다. 산, 타마, 모에나. 이 이름들 뒤에 어떤 얼굴이 있을지, 계산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 답이었다. 토요일 오전, 나는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다. 무채색 니트에 청바지, 별다를 것 없는 조합이었지만 거울 앞에 서서 그것을 다섯 번쯤 확인했다. 머리를 넘겨봤다가 다시 내려봤다가, 결국 원래대로 되돌렸다. 반년 넘게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고 던전을 클리어해온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가슴 안쪽이 답답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인게임 파티창을 열어 봤다. 산, 타마, 모에나, 그리고 나, 진. 넷의 아이디가 나란히 떠 있는 그 화면을, 나는 손끝으로 한 번 쓸어보았다. 액정 유리의 매끈한 냉기가 손끝에 닿았다. 이 사람들의 실제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는 안전장치처럼 느껴졌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얼굴이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실망을 줄 일도 없었다. 그 안전장치를 오늘 내가 스스로 부수러 가는 셈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삼십 분 동안, 나는 계속 최악의 시나리오를 계산하고 있었다. 만약 대화가 하나도 이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만약 서로 실망하면 파티가 깨지는 건 아닌지. 확률로 따지면 낮은 시나리오였지만, 낮은 확률도 결국 확률이었고, 나는 그 낮은 확률을 무시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크리티컬 확률 12퍼센트도 결국 열 번에 한 번쯤은 터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창에 이마를 살짝 대니 유리의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다. 버스 창밖으로 학교 앞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카페 위치가 익숙했다. 우리 학교에서 도보로 십 분 거리, 검도부 애들이 자주 간다는 소문이 있는 그 카페였다.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정보가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그저 우연으로 넘겼다. 이 동네에 카페가 몇 개 없으니 겹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셈을 맞춰버렸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저 손바닥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카페 문 앞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유리문 안쪽으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겹쳐 보였고, 그중 누구도 산인지 타마인지 모에나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여섯 달을 계산했는데, 정작 지금 이 문 앞에서는 아무런 셈도 서지 않았다. 문을 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했다. 안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은 문 벨 소리가, 이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카페 안쪽 창가 자리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보고 말았다. 그건 절대로,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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