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3화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등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젯밤 잠을 설쳤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설친 게 아니라 거의 못 잤다. 눈을 감으면 쪽지 속 사진 한 장이 눈꺼풀 안쪽에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이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이해가 자꾸 스며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몸은 자꾸만 그 방향으로 기울었다.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눌러가며 교실로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에 엎드렸다. 오 분만, 딱 오 분만 자자고 생각했는데 그 오 분이 삼십 분이 됐다. 종이 치는 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었다. 1교시가 끝나갈 무렵, 하은이 교실 앞문에 나타났다. 다른 반 학생이 다른 반 교실 앞에 서 있는 건 드문 일이었다. 반 아이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몇몇은 대놓고 수군거렸다. "저 누구야?" "3반 아니야?" "3반이 여기 왜 와?" 내 짝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낮게 말했다. "야, 너 찾는 거 같은데."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하은은 이미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심지어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는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열 걸음 남짓, 그 사이에도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잠깐 얘기 좀 해." 하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또렷했다.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 나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나중에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 두 사람은 계단 아래 창고 근처, 인적이 드문 구석에서 마주 섰다. 그곳은 늘 곰팡이 냄새와 낡은 대걸레 냄새가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하은은 그런 냄새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나에게 내밀었다. 동영상이었다. 재생 시간은 12초. 화면 속에는 보건실 안쪽, 17번 서랍이 있는 벽면이 비쳤다. 시간 표시는 어제 오후 4시 40분경. 화면 속에서, 문이 살짝 열리고 누군가의 손이 서랍 쪽으로 뻗어졌다. 그 손이 서랍을 열고, 안에 있던 컵을 꺼내 어딘가로 사라졌다. 화면이 흔들리며 곧 영상이 끝났다. 12초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이게 뭐야."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 낮아졌다. "내가 찍은 거야. 그때 나 혼자 있었으니까, 이 손도 내 거지." 하은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거로 제출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증거를 숨기거나 지운다. 하은은 그걸 굳이 저장해뒀다가 나한테 보여줬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애의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범주 안에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럼 네가 가져간 거잖아." 내가 마침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회피하고 싶었지만, 이 이상 회피할 방법이 없었다. 하은은 그 말에 웃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아."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곧바로, 이렇게 태연하게 인정할 줄은 몰랐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늘어놓았으면 화를 낼 명분이 생겼을 텐데, 이 인정은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럼 왜…" "왜 그랬냐고?" 하은이 내 말을 가로챘다. 그 눈빛에 아주 짧게, 어떤 열기가 스쳤다. 나는 그 열기를 안다. 그건 좋아한다는 감정과 소유하고 싶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을 때 나오는 눈빛이었다. "이도현 학생 거니까." 그 말이 전부였다. 아무런 설명도, 아무런 부연도 없었다. 그저 그 사실 자체가 모든 이유라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순간 이 애 머릿속 회로가 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짜여 있다는 걸 느꼈다. 나에게는 "내 것"과 "네 것"이 명확히 구분되는데, 하은에게는 "네 것"이 곧 "내가 가질 것"으로 자동 번역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오래전 그 아이의 편지를 다시 떠올렸다.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이해하는 순간, 그 아이는 자신이 이해받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경고음처럼 울렸다. 나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다. "돌려줘." "이미 없어." "뭐?" "검사할 수 있는 곳으로 넘기지는 않았어. 그냥, 내가 갖고 있었어." 나는 잠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그 문장을 처리하길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별 뜻 없어. 그냥, 도현 학생 몸에서 나온 거니까. 소중하게 보관하고 싶었어." 하은은 그 말을 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인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는 사람처럼, 딱 그런 표정이었다. 문제는 내가 연예인이 아니라 같은 학교, 같은 나이의 평범한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한 칸 한 칸이 유난히 높게 느껴졌다. 등 뒤에서 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 학생, 화 안 났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 안 난 거 맞지? 왜냐면… 이해해주는 거잖아." 그 마지막 말이 내 발걸음을 잠깐 멈추게 만들었다. 이해해주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데, 하은은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정정하는 것 자체가 관심을 준다는 뜻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굳이 바로잡지 않는 게 더 안전한 오해도 있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한동안 멍했다. 짝이 뭐라고 물었지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야, 무슨 얘기 했어?" "그냥." "그냥 뭐?" "몰라, 그냥." 짝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다행이었다. 그날은 누구든 나에게 더 캐물으면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업 내용도, 급식 메뉴도 흐릿하다. 다만 점심시간, 복도에서 소희와 마주쳤던 것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도현아, 왜 그래? 얼굴이 왜 그래?" 소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소희는 원래 표정이 크고 솔직한 애였다. 걱정도 크게, 웃음도 크게.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잠깐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별일 없다고만 대답했다. 소희는 그 대답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한참 쳐다봤다. 마치 거짓말 탐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오늘 학원 끝나고 시간 있어?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 "오늘은 좀 힘들어." "왜?" "그냥, 좀 피곤해서." 소희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금세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그럼 내일! 내일은 무조건이야. 도망가면 국물도 없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는 소희의 텐션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평소라면 저 텐션이 반가웠을 텐데, 오늘은 그 밝음마저 버거웠다. 그날 오후, 나는 담임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손을 들고 교무실로 가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로 시작하는 문장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조립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하은이 한 짓을 어른들에게 말하는 순간, 이 사건은 훨씬 커질 것이었다. 학교, 학부모, 상담, 어쩌면 경찰까지. 나는 그 소란이 무서웠다. 정확히는, 그 소란 속에서 하은이 어떻게 될지가 무서웠다. 이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 문장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날 밤, 내 휴대폰으로 낯선 번호에서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하은이었다. 언제 번호를 알아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 학교에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하은에게만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오늘 미안했어.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나는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몇 분 후,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현 학생은 진짜로 화 안 났어? 아니면 그냥 참는 거야?〉 또 몇 분 후. 〈참는 거면, 참지 않아도 돼. 나 어떤 반응이든 다 받아줄 수 있어.〉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답장을 하지 않고 화면을 꺼버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말로 화가 나지 않은 걸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천장을 한참 쳐다보다가 결국 잠들었는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상하게, 그날 밤에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걸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교실 사물함에는 또 다른 봉투가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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