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주일이 흘렀다.
다혜는 그동안 조심스러워졌다. 학교에서 나를 볼 때마다 눈을 피했고, 문자도 예전처럼 자주 보내지 않았다. 하루에 열 통씩 오던 문자가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그런 다혜를 애써 몰아붙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준비했다.
준혁이 모은 영상들, 검도부 후배들의 증언, 그리고 옥상에서 다혜가 직접 인정한 사실까지.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파일을 폴더별로 나누고, 날짜순으로 정리하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이걸 정리하는 게 다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다혜와 정리하고 끝내려 했다. 그런데 상황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있었다. 처음엔 뭔지 몰랐다. 그냥 시끄러운 애들 몇 명이 휴대폰 화면에 몰려서 웃고 있는 정도로만 보였다.
그런데 곧, 낯익은 간판과 낯익은 나비 머리핀이 화면에 잡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급식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도, 웃음소리도, 모든 게 한꺼번에 멈췄다. 마치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누가 유출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준혁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도 나만큼 당황해 있었으니까. 준혁이 급하게 나를 쳐다봤다.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네가 한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가.
"저거 정다혜 아니야?"
"진짜 최영도 선배랑?"
"와, 서윤이랑 2년 사귄 거 아니었어?"
수십 개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뜨겁고 날카로운 시선들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선들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급식실 반대편에서, 다혜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는 게 보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손에 든 숟가락이 떨리며 식판에 부딪혔다.
쨍그랑-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급식실 전체가 그 소리 하나에 집중된 것처럼, 모두의 눈이 다혜에게로 향했다.
다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무도 그걸 세워주지 않았다.
급식실 안이 온통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이미 메신저에 영상을 퍼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들이 겹쳐 들렸다. 나는 그 소리들이 마치 벌떼가 날아드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예상했던 폭로였지만, 이렇게 갑자기 터질 줄은 몰랐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준혁이었다.
"서윤아. 너 괜찮아?"
"모르겠어."
정말로 몰랐다. 이 상황이 잘된 건지, 잘못된 건지. 계획대로 되고 있는 건지, 완전히 틀어진 건지.
오후 수업이 끝날 때쯤,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한 시선도, 다혜를 향한 시선도 뒤섞여 있었다.
축구부 쪽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영도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영도 선배 그거 진짜냐."
"주장 자리 위험한 거 아니야."
축구부 애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운동장을 지나칠 때, 축구부 애들 몇몇이 나를 힐끔거리며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는 게 보였다. 나는 못 본 척 지나쳤다.
방과 후, 나는 다혜를 다시 옥상으로 불렀다. 이번엔 다혜가 먼저 와 있었다. 눈이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혜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오빠, 나 아니야. 내가 퍼뜨린 거 아니야."
목소리가 이미 갈라져 있었다. 울다가 온 게 분명했다.
"알아."
"나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혜의 목소리가 무너지듯 갈라졌다. 눈물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지만 소용없었다. 눈물은 그보다 빠르게 흘러내렸다.
"학교에서... 애들이 나 쳐다보는 눈빛이... 나 진짜 무서워. 무슨 벌레 보듯이 봐."
나는 그런 다혜를 오래 바라봤다.
예전이었다면 안아줬을 것이다. 위로했을 것이다. 다혜가 힘들어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다혜를 향해 뻗고 싶어지는 손을, 나는 애써 주머니 속에 밀어넣었다.
"다혜야."
"응."
"우리, 여기서 끝내자."
다혜의 눈이 커졌다. 방금까지 흐르던 눈물이 순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오빠..."
"협박이었다는 거, 처음엔 믿었어. 근데 영상 보면 알잖아. 너도 알잖아."
내 목소리는 담담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는데, 목소리만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다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작은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면서도, 나는 다가가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근데 더는 못 하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옥상을 떠났다.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발 한 발이 마치 다른 사람의 다리를 빌려 걷는 것 같았다.
등 뒤로 다혜의 울음소리가 오래 따라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지금까지 버틴 게 다 소용없어질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학교 안에서 다혜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들도 하나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급식실에서도 혼자 앉는 날이 늘어갔다.
한번은 복도에서 다혜와 마주쳤다. 다혜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지나쳤다. 향수 냄새가 스치듯 났다. 예전엔 그 향이 좋았는데, 지금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급식실에서의 장면을, 옥상에서의 대화를 몇 번이고 되짚었다. 잘한 걸까.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건드린 걸까.
어딘가에서 끝난 게 아니라, 이제야 겨우 시작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준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표정이 또 심각했다.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어깨부터 치고 들어왔을 텐데, 이번엔 곧장 얼굴을 굳힌 채 다가왔다.
"서윤아."
"왜, 또 무슨 일이야."
준혁은 잠시 머뭇거렸다. 말을 꺼내기 전에 주변을 한번 살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영도 선배가 너 찾는다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