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마법시계가 영에 도달하자 강당 조명이 어두워지며 정식 배치 명단이 영상판에 떠올랐다. 이름과 부대가 나란히 배열된 긴 목록이었는데, 나는 손끝까지 저려오는 긴장을 억누르며 명단을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갔다. 심장이 벌써부터 이상하게 빨리 뛰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심장이 침착하게 뛰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목석이겠지.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제일 검단, 제이 궁수대, 마도공학대... 다들 각자의 배치를 확인하며 안도하거나 실망하는 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됐다!" 하며 옆자리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 소음들 사이에서 나는 오직 내 이름 하나만을 찾느라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다. 5년. 오 년을 이 학당에서 버텨온 이유가 결국 저 명단 어딘가에 적힐 두 글자짜리 결과 때문이었는데, 정작 그게 어디 있는지조차 안 보이니 속이 타들어갈 노릇이었다.
일 반, 이 반, 삼 반 순으로 훑었지만 없었다. 정예부대 쪽에도 없었다. 설마 누락됐나, 하는 생각에 처음부터 다시 훑는 사이 옆에서 누군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 눈은 오직 '강도윤' 세 글자를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다 목록 맨 아래, 다른 이름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으로 표기된 한 줄을 발견했다. 글자 색부터 달랐다. 강도윤 - 예비 배치 대상, 칠흑대. 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씨발.
예비, 라는 두 글자가 눈에 콱 박혔다. 확정이 아니라는 뜻인가. 아니면 확정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가.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갔고, 손끝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명단을 다시 봤다. 착각인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세 번을 더 읽었다.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강도윤. 예비. 칠흑대. 세상에 이보다 불길한 조합이 또 있을까.
주변 시선이 하나둘 나에게 쏠리는 걸 느꼈다. 몇몇은 놀란 얼굴을, 몇몇은 재미있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중엔 대체 뭐가 저렇게 재밌는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는 놈도 있었다. 아까 낄낄대던 그 귀족 자제 하나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거참, 삼 할짜리 생존율에 예비라니, 저놈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옆의 친구가 맞장구쳤다.
"평민이 수석을 하니 저렇게라도 손을 봐줘야지."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소리는 아니지 않나? 예비니까 말이야." 그 말에 처음 웃던 놈이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칠흑대에 누가 자원해? 자원 없으면 예비가 그냥 확정이지. 그것도 몰라?" 낮은 웃음이 다시 강당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웃음소리 하나하나를 귓속에 각인하듯 들으며 생각했다. 이 새끼들, 다 알고 있었구나. 나만 몰랐던 거고.
그 말이 정확히 내가 짐작하던 그림을 완성시켜 줬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이게 실제로 나에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오 년 동안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 결국 이렇게 최전선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표를 끊어준 셈이었다니.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건 소설이 아니라 내 실제 인생이었다. 소설이라면 작가한테 항의 메일이라도 보내지, 이건 항의할 곳도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앉을 수는 없었다. 앉는 순간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꼴이 될 것 같았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현목을 향해 물었다.
"예비 대상자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목소리는 최대한 담담하게 나왔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새끼, 뭘 어쩔 셈인지 확실히 말을 해야 할 텐데. 겉으로는 정중하게 묻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욕이 한 사발이었다. 씨발, 예비는 무슨 개소리야, 확정이면 확정이고 아니면 아니지 왜 애매한 딱지를 붙여서 사람을 이렇게 흔들어놓느냔 말이다.
조현목은 여전히 그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나를 바라봤다. 저 표정이 문제였다. 사람 목숨줄을 쥐고 있으면서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칠흑대에 지원자가 없을 경우, 상층부 회의를 거쳐 강제 배치가 확정됩니다. 지금으로선 확정이 아닙니다."
확정이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들렸다. 확정이 아니라는 건, 아직 뒤집을 여지가 있다는 뜻도 되지만, 동시에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도 될 수 있었으니까.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아직 판결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위로가 되기는커녕 목에 걸린 칼날의 무게가 더 실감 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 지원자가 나타나면 저는 배치에서 제외되는 겁니까."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배에 힘을 줬다. 이 순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저 웃고 있는 귀족 자제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더 얹어주는 꼴이 될 테니까.
조현목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그가 말끝을 흐리며 나를 훑어보는 눈빛에, 나는 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었다. 저 눈빛, 저건 동정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으면서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둔 사람의 눈빛.
"칠흑대의 생존율을 알고 나서 자원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강당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번졌다. 귀족 자제들 중 누구도 죽음의 땅에 자원할 리 없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서 몇 년이나 안전한 후방 부대에 배속되기 위해 부모의 인맥과 뇌물을 동원해온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삼 할짜리 생존율을 자랑하는 최전선에 제 발로 걸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즉 나에게 배정된 저 예비라는 딱지는, 사실상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뜻이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런 게 절망이라는 감정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뭔 개같은 상황인지. 오 년을 갈고닦아서 겨우 수석을 했더니 상이 아니라 사형장 입장권을 받은 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중간 성적으로 조용히 묻혀 지냈을 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스쳤지만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칠흑대. 마경 최전선. 삼 할도 안 되는 생존율. 여성으로만 구성된 배타적인 부대. 그 모든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재조립되며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됐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부대에 남자인 내가 예비로 배정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애초에 규칙을 어겨서라도 밀어붙일 만큼, 누군가는 나를 확실하게 그 최전선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지금 그냥 배치를 받은 게 아니라, 죽으라는 선고를 받은 거다. 조현목의 저 여유로운 웃음이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었는지,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가 됐다.
주변을 둘러봤다. 몇몇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몇몇은 이제 흥미를 잃었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이 강당에 앉은 인간들 중, 평민 출신인 나를 진심으로 걱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각자의 배치를 받고 안도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 내 목숨이 어떻게 되는지는 그저 여흥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강당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고,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선명했다. 이대로 순순히 끌려갈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게 될 테니까. 조현목의 시선이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나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생각했다. 두고 봐라, 이 새끼야. 순순히 뒈져줄 생각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