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겨진 여동생의 후견인

1화

빈소는 조용했다. 국화 향이 진하게 코를 찔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향이 목구멍 안쪽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강도윤은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영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지 무릎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눌렸다. 사진 속 강태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뻔뻔할 정도로 밝은 웃음이었다. 저 인간은 죽어서도 저렇게 웃는구나, 도윤은 생각했다. 도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십 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 저렇게 웃고 있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향을 피우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연기가 위로 곧게 올라가다가 흩어졌다. 도윤은 그 흩어지는 연기를 눈으로 좇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십 년 동안 쌓인 말들이 목구멍 어딘가에서 뒤엉켜 나오지 않았다. 장례식장 직원이 다가와 조문 순서를 안내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관절이 뻐근했다. 오래 무릎을 꿇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문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저기, 손님, 신발을……" "아, 저……" 말소리가 뭉개졌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상복도 아닌, 헐렁한 회색 후드를 입은 아이가 서 있었다. 키가 작고 어깨가 좁았다. 소매가 길어 손끝이 반쯙 가려져 있었다. 손목에는 검은 리본이 감겨 있었다. 아이는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발끝이 안으로 살짝 모여 있었다. 겁먹은 토끼 같았다. "저기…… 여기, 강태식 님…… 맞나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장례식장 도우미가 곤란한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았다. 도윤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불규칙하게, 이상하게. "누구시죠?" 도윤이 물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사무적으로 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갈라졌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눈이 도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순간 도윤은 숨이 턱 막혔다. 그 눈매, 그 콧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낯익음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소름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말도 안 돼. 이게 뭔……' "저는…… 강하은이에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도윤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귓속이 멍하게 울렸다. "강하은이 누군데요."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낮게 깔렸다. "아버지…… 딸이요." 주변 조문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곧바로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시작했다. 도윤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서는 게 느껴졌다. '딸이라니. 아버지한테 딸이 있었다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가, 다시 소음처럼 가득 찼다.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언제부터, 어떻게, 왜 몰랐지, 왜 아무도 말 안 했지. "장난하는 거면 여기서 하지 말고요."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갔다. 본인도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장난 아니에요." 하은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 진짜예요. 아빠가…… 아빠가 편지에……" 하은은 후드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종이 끝이 손에 쥐어져 닳아 있었다. 얼마나 여러 번 펼치고 접었는지, 접힌 자국을 따라 종이가 얇아져 있었다. 도윤은 그 편지를 받아들지도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장례식장 도우미가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했다. 조문객 몇몇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가 아들이라던데." "근데 딸이 있었어?" "몇 살인데 저렇게 어려." 도윤의 관자놀이가 다시 욱신거렸다. 이대로 여기 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쪽으로." 도윤은 하은의 팔을 살짝 잡고 빈소 옆 대기실로 데려갔다. 아이의 팔이 놀랄 만큼 가늘었다. 잡은 손끝에 뼈가 그대로 느껴졌다. 작은 방에는 조화가 몇 개 쌓여 있었고, 플라스틱 의자 두 개가 마주 놓여 있었다. 공기는 빈소보다 더 텁텁했다. 하은은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옷자락만 만지작거렸다. 소매 끝을 잡아당기고, 놓고, 다시 잡아당겼다. 도윤이 편지를 펼쳤다. 낯익은 필체였다. 삐뚤빼뚤하지만 힘 있는 글씨. 아버지의 손글씨가 맞았다. 십 년 전 마지막으로 받았던 편지와 똑같은 필체였다. 그때는 찢어서 버렸었다. 『하은아, 아빠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봐라. 도윤이 형이라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회사 다닌다. 형한테 가면 아빠 대신 돌봐줄 거다.』 도윤의 눈앞이 순간 흐려졸다. '대신 돌봐줄 거다? 언제 그렇게 저 혼자 다 정해놓으신 겁니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종이 끝이 구겨졌다. 편지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이런 걸 남겼다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몇 살이에요."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열다섯이요. 고등학교…… 일 학년이요." 도윤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숨이 목에 걸려 잘 내려가지 않았다. '열다섯. 아버지가 재혼한 지 얼마나 됐다는 거야.' 계산이 되지 않았다. 아니, 계산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요." 하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동자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돌아가셨어요. 삼 년 전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방 안의 공기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도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손끝만 만지작거렸다. 편지 끝을 다시 접었다가 펼쳤다. "그럼 지금까지…… 혼자……" "네." 하은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새어 나오지 않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윤은 그 좁은 등을 잠시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처음 보는 아이였다. 존재조차 몰랐던 아이였다. 하지만 저 어깨의 떨림이, 낯설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겹쳐 보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혼자 방에 앉아 밤을 새우던 그 시절. 아무도 오지 않는 밤. 전화도 오지 않는 밤. '나도 저랬었지.'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도윤은 애써 그 감정을 삼켰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저……" 도윤이 뭔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타박, 타박,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대기실 문을 살짝 열었다. "선배님, 여기 계셨네요. 조문객들이 자꾸……" 여자는 말을 하다 말고 하은을 발견했다. 표정이 순간 굳었다. 눈이 하은의 눈물 자국에서, 후드에서, 도윤의 손에 들린 편지로 빠르게 옮겨 다녔다. "어…… 죄송해요, 제가 방해했나요?"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저었다. "아니, 소라야. 잠깐만, 이건……"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그러나 소라의 시선은 이미 하은의 헐렁한 후드와 눈물 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뭔가를 오해한 눈빛이었다. 표정이 딱딱하게 식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괜찮아요, 나중에 얘기해요." 소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탁. 도윤은 그 문을 바라보며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저 표정, 왠지 심상치 않은데.' 방금 그 눈빛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었다. 뭔가를 확신한 눈빛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도윤은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지금 당장 쫓아가서 해명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서 있는 하은을 두고 갈 수도 없었다. 하은은 여전히 눈물을 참으며 도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어깨가 또 한 번 흔들렸다. "저…… 갈 데가 없어요." 도윤의 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빈소 밖에서는 여전히 국화 향이 짙게 흘러들어 오고 있었고, 방금 나간 소라의 발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도윤은 왠지 저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하게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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