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장례식장 복도, 오후 세 시.
낯선 남자 하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정장, 무표정한 얼굴.
손에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다.
'구청 아동보호팀 정민호'
도윤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명함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쭉 끼쳤다.
"무슨 일이시죠."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딱딱했다.
"강하은 학생 보호자 관련해서 확인할 게 있어서요."
미숙이 앞으로 나서며 눈을 부라렸다.
팔짱을 낀 채 민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애 아빠 장례 치르는 중인데. 사람이 죽었는데 조사를 나와?"
"죄송합니다. 저희도 원해서 이 시점에 온 게 아닙니다."
민호는 담담하게 서류를 펼쳤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학교 측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하은 학생이 최근 결석이 잦고, 보호자 연락이 안 된다고요. 그러다 아버님 사고 소식이 접수돼서, 저희가 확인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하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에 쥔 편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마른 느낌이었다.
'뭐라고 해야 되지.'
"제가…… 오빠입니다. 방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첩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오빠분이시라고요?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등록이 안 돼 있는데요."
"아버지가 재혼을 숨기셨던 것 같습니다. 편지가 있어요."
도윤은 하은을 슬쩍 돌아봤다.
편지를 받아 민호에게 내밀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하은이 그 편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손끝에 힘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그냥 두기로 했다.
민호는 잠시 하은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학생, 이분 진짜 오빠 맞아요?"
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네…… 아빠가 알려줬어요."
민호는 수첩에 뭔가를 적으며 말을 이었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현재로선 강하은 학생 법적 보호자가 없는 상태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삼 년 전 사망 신고가 되어 있고요. 이대로면 일시보호소나 시설로 인계될 수도 있습니다."
하은의 눈이 커졌다.
숨이 턱 막힌 듯 어깨가 굳었다.
"시설이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겁먹은 토끼 같은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도윤은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도윤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설? 방금 만난 애를 시설로 보내라고?'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이 스쳤다.
회사 일정, 원룸 크기, 통장 잔고.
그리고 그 계산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상한 순간도 함께 왔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제가 후견인 신청하겠습니다."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복도의 형광등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였다.
미숙도, 소라도, 심지어 민호까지 도윤을 쳐다보았다.
도윤 자신도 스스로가 한 말에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 뱉은 말이 자기 입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주워담을 수도 없었다.
하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민호는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지만, 아주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후견인 신청은 가정법원에 하셔야 합니다. 절차가 간단하지 않아요. 친족 관계 증명, 소득 증명, 주거 환경 확인까지 몇 주는 걸립니다."
"그동안은요?"
"임시로 보호자 지정을 해두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것도 서류가 필요합니다."
도윤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서류, 서류, 또 서류.'
이럴 때 필요한 건 서류가 아니라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소라가 슬쩍 나서며 말했다.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저기,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희 팀에 법무 자문 있는 거 아시죠. 서류 준비 도와드릴 수 있어요."
도윤이 소라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갑자기 이런 일까지……"
"괜찮아요. 선배님 혼자서는 못 해요, 이거."
소라의 단호한 말투에 도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며칠 만에 처음으로 짓는 웃음이었다.
"고맙다."
"고마운 건 나중에요. 지금은 일단 민호 씨 말이나 잘 들으세요."
민호는 서류를 봉투에 넣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일단 오늘 발인까지는 시간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번 주 안에 관할 가정법원에 신청서 접수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저희 쪽에서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대로면……"
"시설로 인계됩니다."
민호는 그 말을 끝으로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몸을 돌렸다.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타박, 타박, 규칙적인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다들 숨을 몰아쉬었다.
미숙이 먼저 한숨을 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아이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은은 도윤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작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 진짜 오빠랑 살아도 돼요?"
도윤은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부담감, 낯섦, 그리고 알 수 없는 책임감.
그 세 가지가 동시에 가슴을 짓눌렀다.
'후회할 거야, 분명히.'
하지만 눈앞의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조건이 있어."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조건이요?"
"학교는 다녀야 하고,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되고, 거짓말 안 하고."
하은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눈가에 눈물이 아직 남아있는 채로.
"그거면 돼요?"
"그거면 돼."
"진짜요? 용돈 같은 것도 안 받아요?"
"용돈은 나중에 얘기하고."
"거짓말 안 하는 조건에 오빠도 포함이죠?"
도윤이 순간 멈칫했다.
"...그건 왜 물어봐?"
"그냥요."
하은은 시치미를 뚝 떼며 시선을 돌렸다.
도윤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미숙이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하려고?"
"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도윤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아이를 그냥 시설로 보낼 수도 없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이건 해야 될 것 같아요."
미숙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하은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밥은 잘 챙겨 먹어. 저놈 요리 못하니까."
"저 요리 못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몰라서 물어? 3년 전에 라면 태우던 거 아직도 기억나."
하은이 픽 웃었다.
소라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윤만 억울한 표정으로 미숙을 쳐다보았다.
"라면은 누구나 태울 수 있는 거예요."
"라면을 태우는 건 재능이야, 재능."
소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삼켰다.
분위기가 잠깐 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발인이 다가올수록 장례식장 안팎의 분위기는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조문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국화 향이 배어든 복도만 남았다.
그날 밤, 발인 준비를 마친 도윤은 하은과 함께 장례식장 밖 벤치에 앉았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하은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숨을 내뿜을 때마다 하얀 김이 옅게 피어올랐다.
"오빠."
"응."
"저 진짜…… 짐 안 될게요."
도윤은 하은을 바라보았다.
작은 어깨, 마른 손목, 그리고 애써 담담한 척하는 표정.
뭔가가 마음 한구석을 찔렀다.
"짐이라고 생각 안 해."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하은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불자 하은의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오빠는 저 만나기 전에 무슨 일 하셨어요?"
"회사 다녀. 그냥, 평범한 회사원."
"결혼은요?"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오빠 집에 들어가면 저 말고 다른 사람도 있는 건가 해서."
도윤은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짧게 말했다.
"없어. 혼자 살아."
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하늘을 봤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도윤은 그 짧은 침묵 속에서 하은이 뭔가를 삼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 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벨소리가 벤치 위의 정적을 깨듯 요란하게 울려댔다.
도윤은 미간을 좁히며 휴대폰을 들었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오는 낯선 전화가 결코 좋은 소식일 리 없다는 걸, 왠지 모르게 짐작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도윤 씨죠? 여기 강태식 씨 명의 채무 관련해서 연락드렸는데요."
도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옆에 앉은 하은이 그 표정을 보고 불안한 눈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오빠…… 왜 그래요?"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