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인구관리청 3층, 상담실 안은 냉방이 너무 세게 돌았다.
손끝이 시렸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꾹꾹 눌러가며 감각을 확인했다.
셋째 손가락이 유난히 차가웠다.
긴장하면 늘 그랬다.
"강준서 씨, 치유 적성 등급 A."
책상 너머 남자가 서류를 넘겼다.
고급 관복 위로 인구청 마크가 반짝였다.
넘기는 손끝이 기계처럼 정확했다.
"등급이 높으면 뭐가 좋은 건데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국가 지정 배우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그 단어가 귀에 걸렸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번 크게 뛰었다.
나는 아직 재수 중인 고3이었다.
수능도 두 번 망친 재수생.
대학도 못 붙었는데 결혼이라니.
이게 무슨 개그야.
"저 아직 스무 살인데요."
"성비 불균형 특별법 3조, 치유 적성 남성은 예외 없이 대상이 됩니다."
남자는 표정이 없었다.
마치 서류를 읽는 기계 같았다.
눈도 안 깜빡이는 것 같았다.
"싫다고 하면요."
"징집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어느 쪽이든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
숨이 턱, 막혔다.
결혼 아니면 군대.
이게 선택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나라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요."
"평범하게 사는 남자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치유 적성자는 특히 희귀하니까요."
담담한 말투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저 사람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매일 이런 통보를 몇 명한테 하는 걸까.
"보수는요."
결국 내가 물은 건 그거였다.
돈 앞에서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통장이 먼저였다.
"동거 시급 십만 원. 하루 여덜 시간 기준."
계산이 빨랐다.
하루 팔십만 원.
한 달이면 이천사백만 원.
학원비, 생활비, 하다못해 편의점 도시락값까지.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저절로 굴러다녔다.
"할게요."
말이 먼저 나가고 후회가 뒤따라왔다.
그래도 이미 뱉은 말이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현명한 선택입니다."
남자가 처음으로 살짝 미소 비슷한 걸 지었다.
아니, 저건 미소가 아니라 그냥 입꼬리가 움직인 거였다.
이 사람도 웃는 법을 잊은 게 분명했다.
"상대는 누굽니까."
남자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 뜬 얼굴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서하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배우.
영화 포스터에서만 보던 얼굴이었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도, 편의점 냉장고 유리문에도 저 얼굴이 붙어 있었다.
"저 사람이... 저랑요?"
목소리가 뒤집혔다.
"본인도 이미 통보받았습니다."
말투가 너무 사무적이라 오히려 무서웠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얼마나 이상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는 걸까.
"그, 그분이 동의를 했다고요?"
"동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가 지정입니다."
동의를 안 했으면 나 도망갈 수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내가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
주소를 받아 찾아간 곳은 도심 외곽의 고급 주택이었다.
담장부터가 우리 집 한 채 값이었다.
대문 앞에 서서 나는 몇 번이나 벨을 눌렀다.
손끝이 떨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손이 멈췄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폰 너머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서 왼쪽 방. 그 방만 써요."
그게 다였다.
대화 시작도 못 하고 끝났다.
나는 인터폰 화면을 한참 쳐다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게 첫 만남의 인사인가.
저 사람 원래 저런 성격인가, 아니면 나만 특별히 싫은 건가.
현관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확 끼쳤다.
집이 넓은데도 사람 사는 기척이 거의 없었다.
신발장에 신발 두어 쌍, 그게 다였다.
가족도, 애완동물도, 하물며 화분 하나도 없었다.
거실 소파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티브이 화면 속에서 웃던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실내복 차림인데도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곧았다.
저게 배우라는 직업병인가.
나였으면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을 텐데.
"안녕하세요, 저 강준서라고..."
"이름 알아요."
말을 끝까지 못 했다.
칼로 자른 것처럼 대사가 끊겼다.
목소리가 화면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낮고, 훨씬 건조했다.
"저기, 저는 그냥 시키는 일 하면서..."
"시키는 일은 없어요. 존재만 하면 돼요."
존재만 하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나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런데도 눈빛만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는데, 위압감은 왜 이렇게 큰 건지.
"이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하나예요."
"뭔데요."
목이 마른 상태로 물었다.
"나한테 말 걸지 마세요."
딸깍.
그녀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현관에 그대로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방을 든 손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바닥에 놓았다.
쿵.
소리가 텅 빈 거실에 울려서 나 혼자 화들짝 놀랐다.
이게 맞나.
아니, 이게 맞을 리가 없다.
이런 조건으로 하루 팔십만 원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말 걸지 말라니, 그럼 나는 이 집에서 유령처럼 살아야 하는 건가.
그런데도 지갑 사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돈이 죄다, 진짜.
하루 팔십만 원이면 한 달 학원비가 그냥 나온다.
그래, 참자. 어차피 말도 못 걸게 생겼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겠지.
배정받은 왼쪽 방은 작지 않았다.
침대, 책상, 옷장, 다 새것이었다.
누가 쓴 흔적이 전혀 없었다.
혹시 나 이전에 다른 사람이 이 방을 썼던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배정받은 왼쪽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집 안 어딘가에서 낮은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벽 너머 저쪽 방에서, 방금 그 냉랭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 걸지 말라고 했으니까,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런데 왜 자꾸 그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 걸까.
천장의 무늬를 세다가, 나는 결국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