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이 차가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복도를 걸어 다닐 사람이 있나.'
문을 살짝 열자,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등불 몇 개만이 흐릿하게 벽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저 끝, 은서의 방 쪽 모퉁이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숨을 죽이지 않았다면 놓쳤을 정도로.
나는 발끝으로 걸으며 그쪽으로 향했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도둑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시녀일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거지.'
모퉁이를 돌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은서의 방문 앞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체구가 크지 않았다.
옷은 온몸을 감싸는 형태였고, 얼굴의 절반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손에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등불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저거 진짜 위험한 거잖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소리치면 늦을 것 같은데.'
'저 사람이 문을 열면 은서 씨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먼저 발이 나갔다.
머릿속에서 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다리가 앞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손목을 잡아채며 뒤로 밀쳤다.
예상보다 힘이 세게 들어갔다.
내 손아귀 안에서 상대의 팔뼈가 삐걱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검은 옷의 남자가 벽에 부딪히며 나동그라졌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어라.'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회사원으로 살면서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내가, 지금 이렇게 가볍게 사람을 던져버렸다는 게 이상했다.
손목에는 아직도 그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의 힘은,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남자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구냐."
그가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는 짙은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두 눈만 드러난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선명했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마치 손끝에서 뭔가가 새어 나가는 듯한, 그런 이질적인 떨림이었다.
그와 동시에, 복도의 촛불이 일제히 밝게 부풀어 올랐다.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순간적으로 몇 배는 커졌다.
'……이게 뭐야.'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 빛을 보고 흠칫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소환자……"
그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확신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듯한, 그런 어투였다.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편이 바닥에 흩어지며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끝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방문이 벌컥 열리고, 은서가 뛰어나왔다.
잠옷 위에 겉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채였다.
"무슨 소리였……"
그녀는 말을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괜찮으세요? 방금 그 빛은……"
"괜찮아요."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손끝의 저릿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누가 당신 방문 앞에 있었어요. 단검을 들고."
은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뒷걸음질쳤다.
"단검이요……?"
"네. 다행히 창문으로 도망쳤어요."
하연이 뒤늦게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경비병들 전부 창밖으로! 은서 님 방 주변부터 확인하고!"
궁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경비병들이 창밖으로 뛰쳐나가고, 시녀들이 은서를 둘러싸고 안심시키려 애썼다.
누군가는 등불을 들고 정원 쪽으로 달려갔고, 누군가는 복도의 유리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조금 전 내 몸이 반응했던 방식을 곱씹었다.
'단순히 놀라서 그런 게 아니야.'
'몸이 저절로 반응했어. 그리고 그 빛도.'
'내가 그 남자를 던진 힘도, 정상적인 게 아니었어.'
하연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진지했다.
"강도윤 님, 방금 그건…… 소환자의 힘이 처음 발현된 겁니다."
"제 힘이요?"
"소환된 존재는 이 세계의 마력에 적응하며 힘을 얻습니다. 보통은 서서히 나타나지만, 위협을 느끼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그 빛이 그 증거입니다.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까 그 자객이 도망치며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소환자……'
'그놈은 내가 뭔지 알고 있었어.'
'놀란 것도 아니고,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었어. 그냥…… 확인하는 눈빛이었어.'
즉, 누군가 이미 내 존재를 알고, 자객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나를, 벌써 누군가는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은서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시녀 한 명이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당신을 위험에 빠뜨렸어요."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제 탓이에요."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보냈는지가 더 중요하죠."
하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깨진 창문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객이 도망친 방향으로 보면…… 서흔국 쪽 인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작이 아니고요?"
"공작이라면 이렇게 서투르게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성급하고, 계산이 부족한 접근입니다."
방 안이 다시 무거워졌다.
내부에는 대귀족, 외부에는 서흔국.
양쪽 모두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정오, 나는 그 두 세력이 동시에 지켜보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이 세계에 내 이름을 걸어야 했다.
창밖의 부서진 유리창 틈으로, 차가운 밤바람이 스며들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일이 정말 무사히 지나갈까.'
'저 자객이 다시 오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는데.'
나는 그 생각을 끝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손끝에 남아 있던 그 저릿한 감각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