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날 아침, 조식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쓰고 있었다. 어떻게 물어야 자연스러울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그냥 지나가는 호기심처럼 보일지, 밤새 이불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도 정작 어머니 유서연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시뮬레이션은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나를 향해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식기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하녀가 조용히 수프를 내려놓는 소리가 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숟가락을 쥔 손에 괜히 힘을 주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지금인가. 아니, 조금 더 있다가. 아니, 지금.
"어머니." 나는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노예 목걸이가 마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수프를 뜨던 유서연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아주 짧은 정지였지만, 나는 그 정지를 놓치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니."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미세한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왕도에서 봤어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그저 어린애의 순수한 궁금증처럼 보이도록 애썼다.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서요."
어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꽤 오래 머물러서, 나는 혹시 뭔가 들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노예의 마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억류시켜서, 반항하려는 순간 그 마력이 역류해서 고통을 주는 구조라고 들었다." 어머니는 찻잔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 나라의 마법 체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술 중 하나야. 왕국 초기에 만들어졌고, 지금은 개량을 거쳐서 더 정교해졌다고 하더구나."
마력을 억류시킨다는 말이 내 귀에 못처럼 박혔다.
억류. 역류. 고통.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꾸 되풀이되며, 나는 그 목걸이를 찬 그 아이의 목선이 떠올라 잠깐 숨이 막혔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보니."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그 눈빛에는 순수한 모성애가 담겨 있었고, 그게 나를 더 죄책감 들게 만들었다.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신기해서요. 마법이니까요."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내 그릇에 빵을 하나 더 올려주며 화제를 돌렸다. 나는 그 빵을 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그 목걸이의 구조를 되짚고 있었다. 억류된 마력. 역류하는 순간의 고통. 반항이 곧 자해로 이어지는 저주 같은 장치.
그날 오후, 나는 집사 박현수를 서재로 조용히 불렀다.
서재의 문을 닫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첫 번째 시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박현수는 저택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었고, 나를 처음 왕도 노예 시장에 데려간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얼굴에는 늘 어떤 그늘이 있었는데, 나는 그 그늘의 정체를 오늘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박현수." 나는 최대한 어른스러운 척 말투를 골랐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배에 힘을 주고. "노예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박현수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입가의 근육이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게 보였다.
"도련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그가 딱 잘라 대답했다.
"내가 신경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도련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그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구조는 어린 귀족 한 명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이 맞았다. 완벽하게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었는지, 아니면 어딘가 후련해서 나온 웃음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늙은 귀족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나는 물었다.
박현수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는 당혹감과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도련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대답 대신 손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가 볼 수 있을 만큼의 마력을 흘려보내며 [감정]을 시전했다.
손끝에서 미약한 열기가 번져 나갔다. 이 스킬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그 이질적인 감각, 마력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 상대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그 느낌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대상: 박현수]
[신뢰도: 78%.]
[숨겨진 감정: 죄책감 62%, 무력감 41%.]
숫자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박현수의 눈이 커졌다. "도련님, 방금 뭘 하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당신이 그 아이를 처음 저에게 보여준 이유가 뭔지 알고 싶었어요."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을 담아 말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나요."
박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침묵이 서재 안의 공기를 무겁게 눌렀다.
"도련님은... 아직 그 축복이 이렇게 강력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게다가 이런 스킬은..."
"저는 진심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내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단단하게 나왔다. "저 아이를 구하고 싶어요. 아니, 저 아이 같은 사람들 전부를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 나는 내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전생의 기억, 다경과의 첫 만남, 그 목걸이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 그 모든 게 응축돼서 이 한마디로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박현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주 미약한 기대가 교차했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다시 눈을 뜨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계 소리만 서재 안을 채웠다. 초침이 열 번, 스무 번을 넘도록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도련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본 척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노예제에 반하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반역으로 취급됩니다."
반역이라는 단어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반역.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여기서 잘못 움직이면 죽는다. 진짜로. 두 번은 없다.
나는 그날 완전히 진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경과의 만남, 전생, 그 모든 걸 말하지 않았지만, 박현수는 이미 내가 뭔가 특별한 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서재를 나서기 전, 한 번 더 나를 돌아보았는데, 그 시선에는 이전과는 다른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에게 처음으로 확신을 심어줬다.
내 능력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어머니의 설명, 박현수의 창백한 얼굴, 죄책감 62%라는 숫자. 그 숫자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데, 나 자신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나는 다시 한 번 [감정]을 열어보았다. 이번에는 나 자신을 대상으로.
[대상: 서하 하윤]
[마력 구조: 분석 중...]
몇 초간 정지된 화면 앞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에는 다를 것 같았다.
[오류.]
한 단어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또야.
여전히 나 자신은 볼 수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오류, 오류, 오류. 마치 이 시스템 자체가 나를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 오류 자체가,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보통 스킬이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작동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유독 나 자신에게만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말 우연일까?
나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그 질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신호를 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대체 뭘 숨기고 있는지, 아니 뭐가 나조차 모르게 숨겨져 있는지, 그날 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