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약해도 구원은 하겠습니다

4화

실험을 시작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일주일 동안 나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만약 이 힘이 진짜라면, 그리고 만약 이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 반대로 만약 이게 다 착각이거나, 혹은 위험한 부작용이 있는 거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심장이 쿵쿵거리다가 이내 진정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결심했다. 확인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저택 뒤뜰에는 마구간과 작은 텃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늙은 개 한 마리와 몇 마리의 닭이 있었다. 사람들 눈을 피하려면 새벽이 가장 나았다. 하늘이 아직 푸르스름한 색을 벗지 못한 그 시간, 저택 사람들 대부분은 잠들어 있었고, 마구간지기조차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뒤뜰로 걸어가,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 그 개를 대상으로 [감정]을 시전해보았다. [대상: 개(추정 나이 8세)] [건강 상태: 관절염 초기, 시력 저하.] [마력 반응: 미미함.] 정상 작동. 문제없었다. 한 번 더 확인하려고 [감정]을 다시 걸어봤다. 결과는 똑같았다. 됐다, 우연이 아니었어. 나는 좀 더 욕심을 내서, [분해]라는 새로운 스킬을 시도해보았다. 다경이 준 마법 자유도라는 축복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겁도 났다. 아무리 늙고 병든 개라지만, 내 실험 때문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지만 그 걱정을 누르고 조심스럽게 마력을 흘려보냈다. [분해] 스킬을 개의 관절염 부위에 조심스럽게 흘려보내자, 놀랍게도 마력이 그 부위의 염증 물질을 미세하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뭔가가 스르륵 풀려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하게 부드러운 흐름이었다. 개가 낑낑거리다가 이내 편안한 숨소리를 냈다. 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됐다. 진짜 됐어.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 때문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 박동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벅찬 감각이었다. 나는 다음 날 닭 한 마리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엔 좀 더 자신감이 있었다. 마력을 흘려보내는 속도를 조금 줄이고, 저항이 느껴지는 부위는 우회해서 접근했다. 결과는 재현됐다. 마력을 조절하는 방식, 흘려보내는 속도, 대상의 저항력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며칠에 걸쳐 나는 조심스럽게 실험을 확장했다. 다리를 저는 닭, 눈이 흐린 늙은 고양이 한 마리, 심지어 마구간 구석에서 발견한 상처 입은 들쥐까지. 대상이 커질수록, 상태가 심각할수록 소모되는 마력의 양도 늘어났다. 어떤 날은 몇 번의 시전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지쳤다. [분해] 스킬은 병이나 상처, 심지어 특정 물질의 결합 구조까지도 풀어낼 수 있었다. 이게 만약 그 노예 목걸이의 마력 억류 구조에 적용된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목걸이. 그 저주받을 물건. 마력을 억류하고, 자유를 옭아매고,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그 구조물. 만약 정말로 그걸 풀 수 있다면, 이건 단순한 스킬 실험이 아니었다. 이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발견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실험을 계속하던 어느 날, 나는 뒤뜰에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을 느꼈다. 등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 나는 반사적으로 [분해]를 거두고 몸을 굳혔다. 고개를 돌리자 차형 서하 진우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거기서 뭐 하냐." 그가 물었다. 열 살이었지만 이미 어른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지금은 유난히 매섭게 느껴졌다. "닭한테 뭐 한 거야."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는 급히 손을 내렸다. 목소리가 미묘하게 갈라졌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챘다. "그럼 저 닭은 왜 다리를 절다가 갑자기 안 저는 거냐." 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닭에서 나에게로, 다시 닭에게로 옮겨갔다. "너 요즘 밤마다 몰래 나가는 것도 알아. 뭐 하는 거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마다 나간 걸 알고 있었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며칠 전부터? 아니면 처음부터? "형이 왜 그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매일 밤 네 방 확인하러 왔었으니까." 진우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목소리 끝에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동생이 밤마다 사라지는데 형이 모르면 그게 형이냐." 그 말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겉으로는 차갑고 무뚝뚝한 이 형이, 밤마다 몰래 내 방을 확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심장 어딘가가 뻐근해졌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내가 겨우 물었다. "때가 되면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진우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때가 된 것 같아서." 그때 정원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리듬감 있는 발걸음. 누나 서하 아린이 다가오고 있었다. "둘이서 뭐 하고 있어?" 그녀가 물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아린은 늘 이렇게 스킨십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조금이라도 표정이 어두우면 바로 다가와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곤 했다. "하윤이가 뭔가 숨기고 있어." 진우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아린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장난스러운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진지한 빛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진짜야? 뭔데?"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꽂혔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뒤뜰의 아침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완전히 숨길 수도, 완전히 밝힐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과 거짓말을 조합해봤지만, 그 어느 것도 이 두 사람의 눈빛 앞에서는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눈빛에서, 나는 뭔가 다른 걸 봤다. 걱정과 애정, 그리고 신뢰. 그건 의심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두 분한테는 말할게요."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는 아직 비밀로 해주세요." 진우와 아린이 서로를 쳐다봤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감정]과 [분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힘으로 뭔가 특별한 걸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형과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개를 치료했던 것, 닭의 다리를 고쳤던 것, 마력을 흘려보내는 감각까지. 전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아린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나 눈을 크게 떴고, 진우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며 하나하나 곱씹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진우가 팔짱을 끼며 정리했다. "네가 다친 걸 고칠 수도 있고, 사람 감정도 읽을 수 있다는 거지?" "네." "그걸로 뭘 하려는 거냐."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까지 말한 이상, 더는 돌릴 수 없었다. "노예 목걸이를 풀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새 지저귀는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린의 손이 내 손을 더 꽉 쥐었다. "그거 위험한 생각이야." 진우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경고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알아요." "그런데도 할 거야?"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짧지 않았다. 진우와 아린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말없이 몇 초가 흘렀다. 그 몇 초 동안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도와줄지 아니면 말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도울게." 아린이 말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 속엔 결연한 각오가 섞여 있었다. "단, 조건이 있어." 진우가 덧붙였다. "위험해지면 바로 말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목이 메었다. 이 저택에 온 이후로 늘 혼자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내 편에 서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밤, 저택 어딘가에서 아버지 서하 강호가 진우와 아린이 늦은 시간 뒤뜰에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는 하인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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