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가족의 협력이 시작되고 나서, 준비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혼자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몰랐던 계획이, 형제들이 하나씩 역할을 맡으면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영지 내 정보를 모으는 일을 맡았고, 아린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긁어모으는 역할을 자처했다. 나는 그저 듣고, 확인하고, 실행하는 쪽이었다.
"영지 전체를 다 뒤질 수는 없으니까, 일단 눈에 띄는 곳부터 조사했어." 진우가 낡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며 말했다. 그의 손끝이 지도 위 동쪽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채석장. 관리인 하나가 계속 걸려."
"관리인?" 내가 물었다.
"이름은 데릭이야." 진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인간이 관리하는 구역 노예들 부상률이 다른 채석장보다 세 배는 높아. 처음엔 그냥 작업 환경이 나쁜가 했는데, 계속 파보니까 이상한 게 하나 더 나왔어."
"뭔데?"
"죽은 노예 숫자. 은근슬쩍 축소해서 보고하고 있어. 세 명이 죽었는데 보고서엔 한 명이라고 적혀 있더라고."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축소 보고라니.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숫자로 지워버린다는 게, 아무렇지 않게 서류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사무적이었다.
아린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알아본 것도 있어. 데릭이라는 인간, 성격이 아주 지저분하대. 채찍질 하나는 아주 즐긴다는 소문이야. 노예들 급식비도 몰래 빼먹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신다더라."
"소문 믿을 만한 거야?"
"세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다 똑같은 얘기를 해. 소문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야." 아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등줄기에 열기 같은 게 훅 올라오는 걸 느꼈다. 데릭. 손끝이 저절로 말려들었다. 이게 첫 번째 시험대구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명료하게 떠올랐다.
"직접 가서 확인해볼래요." 나는 말했다.
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혼자? 위험해. 데릭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방금 얘기했잖아."
"제가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나는 형제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계획 하나를 떠올렸다. 저택 근처 마을에서 배운 은신 마법이었는데, 마력 소모가 상당히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존재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아직 제대로 시험해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험해볼 기회도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아린이 만들어준 알리바이를 이용해 저택을 빠져나왔다. "몸이 안 좋아서 방에서 쉬고 있다"는 말을 어머니께 전하는 건 아린의 몫이었고, 나는 그 틈을 타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와 동쪽 채석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심장이 두근거렸다.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계속 뒷목을 스쳤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채석장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은신 마법을 시전했다. 마력이 몸을 타고 빠져나가는 감각이 낯설었다. 마치 몸 안의 온기가 서서히 빨려나가는 느낌이었는데, 그 대가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야에서 흐릿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황을 관찰했다.
데릭은 정말로 진우와 아린이 말한 그대로였다.
채찍을 든 채 노예들 사이를 오가며,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린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짝, 짝, 소리가 언덕 위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한 노예가 돌을 나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자, 데릭은 다가가 발로 그를 걷어차며 욕설을 뱉었다.
"일어나, 이 게으른 새끼야!"
넘어진 노예는 몸을 웅크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데릭은 그 위에 다시 채찍을 들어 올렸다.
손끝이 떨렸다.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씨발, 저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
머릿속에서 온갖 계획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뛰어 내려가서 막을까. 아니, 그건 미친 짓이다. 은신 마법이 풀리는 순간 나는 정체를 들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제들과 세운 계획 전체가 무너진다. 참아야 했다.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감정]을 조심스럽게 데릭에게 시전했다.
[대상: 데릭]
[건강 상태: 정상.]
[마력 보유량: 낮음 (일반인 수준).]
[숨겨진 정보: 착취 기록 다수, 상급자에게 뇌물 상납 중.]
마력이 낮다는 게 확인되자마자, 나는 계획을 세웠다. 반격이라기보다는, 견제. 데릭 같은 인간을 정면으로 상대할 힘은 아직 내게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눈에 띄지 않는 균열 하나를 만들 수는 있었다.
[분해] 스킬을 데릭이 사용하는 채찍의 손잡이 결합부에 흘려보내는 거였다. 물리적으로 즉시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가 다음번 채찍질을 시도할 때 손잡이가 갈라지도록.
숨을 죽였다. 마력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실 한 가닥처럼 가늘게 흘려보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양이었지만, 채찍의 목재 결합부에 균열을 만드는 데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데릭이 다시 채찍을 크게 휘두르는 순간, 손잡이가 그대로 부러지며 그의 손등을 강타했다.
"으아악!"
그의 비명이 채석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돌 깨는 소리도, 노예들의 낮은 신음도 전부 멈춘 순간이었다.
주변 노예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데릭은 손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는데, 그가 내지르는 신음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나는 언덕 위에서 숨죽인 채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조금 전까지 채찍을 휘두르던 위세는 사라지고, 손을 감싸 쥔 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만 남아 있었다.
인과율이 이럴 때는 도와주네.
이게 시작이었다.
작은 반격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내 힘이 진짜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데릭 같은 인간을 조금이라도 견제할 수 있다면, 이 힘을 더 키워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싶었는데, 걸음을 옮길수록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마력을 과하게 쓴 여파였다. 열이 오르고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저택 대문을 통과할 때쯤 이미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웠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서 어머니가 놀라 의사를 불렀을 정도였다. 이불을 몇 겹씩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고, 정신은 몽롱한 채로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힘에는 분명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몸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밤늦게, 저택 복도를 지나던 집사 박현수는 내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옅은 빛을 목격했다.
마력 특유의 청백색 잔광이었다.
박현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빛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가 알고 있는 [감정] 스킬의 흔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낮에 채석장에서 벌어진 이상한 사고 소식이 이미 저택에 퍼져 있었다. 관리인 데릭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채찍이 부러지며 손을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하인들 사이에서는 "그 인간이 하늘의 벌을 받은 거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었다.
박현수의 시선이 내 방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섰다.
나는 그 순간, 열에 시달리며 잠들어 있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장 믿었던 사람의 눈앞에서, 내 비밀의 첫 번째 흔적이 완전히 드러나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