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청연 왕국 기사단 본청은 도씨 가문의 영지에서 마차로 반나절 거리에 있었다.
건물은 회색 석재로 지어졌고, 정문에는 창을 든 여성 문지기 둘이 서 있었다.
서혜란이 다가서자 문지기들의 태도가 즉시 바뀌었다.
"서혜란 대검사님을 뵙습니다." 한 명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본청장을 뵈러 왔다." 서혜란이 짧게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도현은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는 기사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갑옷을 입은 이들도, 서류를 든 이들도 그랬다.
간혹 남성 관리도 보였지만, 하나같이 시선을 낮추고 벽 쪽으로 걸었다.
그들은 서혜란과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숙였고, 도현과 눈이 마주치면 짧게 흠칫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이곳이 이 세계의 축소판이다.' 도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는 조용히 걷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오래 사는 법이다.'
복도 끝에서 서류 뭉치를 든 젊은 남성 관리 하나가 도현과 어깨를 스쳤다.
그는 사과의 말도 없이 고개만 더 깊이 숙이고 지나갔다.
도현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낯설지 않은 자세였다. 자신도 이곳에 익숙해지면 저런 걸음으로 걷게 될지 궁금했다.
본청장실에서 서혜란이 문서를 내밀며 설명을 요구했지만, 대답은 짧고 냉정했다.
"규정대로입니다, 대검사님. 예외는 왕실 직계나 특급 마력 보유자에게만 허용됩니다."
"제 아들은 검술에 재능이 있습니다." 서혜란이 말했다.
"재능이 아니라 마력의 문제입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본청장은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매년 수십 명씩 재능 있다는 남성들이 신청서를 들고 옵니다. 재능만으로 검을 든다면 이 나라 절반이 기사가 되었겠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롱보다는 지루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수백 번은 반복했을 대답이었다.
서혜란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도현도 그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규정이 문제가 아니다. 규정을 만드는 근거가 문제다. 근거를 바꾸지 않으면 규정도 바뀌지 않는다.'
본청장실을 나서면서, 도현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혼자 기사단 무기고를 좀 둘러보고 싶습니다."
"무기고를?" 서혜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어서요."
서혜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뒤 정문에서 보자."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도현이 뭔가를 생각해두었다고 말할 때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무기고는 본청 건물 뒤편에 있었다.
석재 건물과 달리 목재와 철골로 지어진 낮은 창고였고, 문 앞에는 창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담당관은 젊은 여성 기사였고, 도현을 보자마자 표정이 삐딱해졌다.
"보호 대상 등록 예정 남성이 무기고엔 왜." 그녀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제안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도현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제안?"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뭘, 검술 대회 나가게 해달라는 소리냐?"
"무기 설계에 관한 것입니다."
담당관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기 설계? 마력도 없는 놈이?"
도현은 그 말에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마력 없이도 작동하는 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화약과 압축된 힘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화약이라니, 그건 연회용 폭죽에나 쓰는 걸 말하는 거냐?"
주변에서 지나던 다른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갑옷을 반쯤 걸친 이도 있었고, 검을 손질하다 손을 멈추고 다가온 이도 있었다.
하나둘 웃음소리가 커졌다.
"보호 대상 남성이 무기를 만든다니, 그것도 볼 만하겠다."
"그러다 손가락이나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이봐, 그러다 폭죽 터지면 우리가 치료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또 다른 이가 맞장구쳤다.
"보호 대상은 치료소도 따로 있잖아. 걱정 마라, 알아서 할 거다."
도현은 그 웃음소리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렇다면 예상 밖의 결과로 되돌려주면 된다.'
"설계도만 봐주실 수 있습니까." 도현이 다시 물었다.
"됐다." 담당관이 손을 내저었다. "우리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가서 얼굴이나 씻고 다녀라."
웃음소리가 다시 터졌다.
누군가는 그의 등을 툭 치며 지나갔다. 밀치는 것도 아니었고 다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를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손짓이었다.
도현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무기고를 나섰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의 속에서 무언가가 단단해지고 있었다.
모욕은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프지 않은 척할 수 있게 되었다.
'표정을 바꾸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순간, 저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쓴다.'
'재능이 아니라 마력의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력 없이도 통하는 힘을 보여주면 된다. 그것으로 이 규정을, 이 시선을 뒤집으면 된다.'
어릴 적, 서혜란은 훈련장에서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힘은 두 가지다. 타고난 힘과 만들어낸 힘. 타고난 힘이 없다면, 만들어낸 힘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뼈에 새기듯 되새기고 있었다.
검을 쥐어본 적 없는 손으로, 검을 쥔 자들보다 더 멀리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력이 아니라면 다른 것으로.
무기고 뒤편 담벼락에 잠시 등을 기댔다.
등 뒤로 웃음소리가 아직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저들의 웃음이 언젠가 다른 소리로 바뀔 것이다. 그 날을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다.'
+++
정문 앞에서 서혜란을 만났을 때, 그녀는 도현의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표정이 평소보다 굳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굳이 캐묻지 않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본청장이 뭐라 하든, 청연 왕국의 법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가 대신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 도현이 마차에 오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를 말이냐."
"기사단 소속 대장장이, 다솜이라는 분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서혜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솜을 어떻게 알았느냐."
"어머니가 쓰시는 검을 벼린 사람이라 하셨지요."
서혜란은 마차 창문을 잠시 응시했다. 오래전 일을 떠올리는 눈빛이었다.
"다솜은 손이 거칠고 말도 거칠다. 하지만 쇠를 다루는 재주는 본청에서 제일이다. 왕실 대검사들 중에도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검을 쓰는 이가 드물다."
"그런 분이라면 제 설계도를 봐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설계도라니?"
"화약과 압축된 힘을 이용한 무기입니다. 마력 없이도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서혜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마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공방은 여기서 멀지 않다. 가보자."
마차가 방향을 틀어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망치질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울려오고 있었다.
쇠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 규칙적이면서도 무거운 소리였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 무기고에서의 모멸감을 다시 삼켰다.
손등에 아직 남의 손짓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차가 골목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망치질 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공방 앞에 이르렀을 때, 열린 문틈으로 붉은 화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빛 속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쉼 없이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결심을 안고, 도현은 처음으로 다솜의 공방 앞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