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인왕국의 대장장이 소년

3화

공방의 문은 낮았다. 도현은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섰고,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안쪽에서는 여전히 망치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쨍- 쨍- 쨍- 불규칙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그 소리를 더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리듬은, 그 손이 이미 수천 번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는 뜻이었다. 작업대 앞에 선 이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키가 도현의 가슴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팔뚝의 근육은 성인 기사 못지않게 단단했다. 드워프 특유의 짙은 눈썹과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땀에 젖은 이마 위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그녀는 손목으로 슥 밀어 올렸다. 그 손목에도 오래된 화상 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손님이네." 다솜이 망치를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서혜란 대검사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요." "오랜만이네, 다솜." 서혜란이 짧게 인사했다. "내 아들이 자네에게 볼일이 있다고 하는군." 다솜의 시선이 도현에게 옮겨갔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마치 물건의 값을 매기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 조그만 도련님이?"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도현을 훑어보았다. "체격을 보니 검도 제대로 못 들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다솜 님." 도현이 정중히 인사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인사는 짧았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다솜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대개 이 나이대 도련님들은 눈도 못 마주치던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서혜란은 밖에서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공방 안에는 도현과 다솜만이 남았다. 망치질 소리가 사라진 공방은, 오히려 그 정적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말해보시게." 다솜이 팔짱을 끼며 작업대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대롱거렸지만, 그 모습이 우습기보다는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도현은 미리 준비해온 종이를 펼쳤다. 그 위에는 원통형 구조물과 관통형 격발 장치가 그려져 있었다. 선은 떨리지 않았다. 며칠간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그린 결과였다.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서 좁은 관 안에서 못을 발사하는 장치입니다. 마력이 아니라 압축된 힘으로 작동합니다." 다솜은 그림을 잠깐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뭔가, 애들 장난감인가?" 그녀가 웃으며 되물었다. "화약으로 못을 쏜다고? 그런 게 무기가 되겠나." "화약이라는 게 원래 불꽃놀이 재료 아닌가. 그걸로 사람을 죽인다니, 우스운 이야기지." 도현은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무기고에서의 웃음소리가 다시 떠올랐지만, 이번엔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자신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조롱을 견디기만 했다. 지금은 달랐다. 손에 든 종이 한 장이 그때와는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직접 실험해보시면 압니다." 도현이 말했다. "관의 내경과 화약의 밀도, 못의 길이만 정확히 맞추면 갑옷도 관통할 수 있습니다." "갑옷을?" 다솜이 웃음을 멈췄다. "이런 조그만 관으로?" 그녀의 시선이 다시 종이 위로 내려갔다. 이번엔 흘려보는 눈이 아니었다. 도현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격발 구조의 세부 설계가 더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압력을 견디는 이중 강관, 발화 지연을 위한 뇌관의 위치, 반동을 줄이는 손잡이 각도까지. 선 하나하나에 숫자가 붙어 있었다. 길이, 두께, 각도. 대충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다솜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이 그림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손끝이 종이 위를 따라가며, 이따금 멈춰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 뇌관 위치는... 어떻게 생각해낸 건가."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발화 시 압력이 균등하게 퍼져야 관이 터지지 않습니다. 위치를 잘못 잡으면 손 쪽으로 폭발이 역류합니다." "역류라." 다솜이 중얼거렸다. "그 말은... 실제로 터진 걸 본 적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강관의 두께가 부족하면 관 자체가 파열됩니다. 최소 이 두께 이상이어야 합니다." 다솜은 종이를 들고 한동안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작업대 위의 촛불이 흔들렸고, 공방 안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종이 위를 몇 번이나 오갔다. 마치 머릿속으로 이미 그것을 조립하고, 다시 분해해보는 듯했다. "이거..."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거 진짜로 될 수도 있겠는데." 도현의 가슴이 조금 뛰었다. 그것은 며칠간 참아왔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속에서 다른 목소리도 함께 올라왔다. '이 지식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전생에서 가져온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내 재능인가, 아니면 그냥 훔쳐온 것인가.' 그 의문은 며칠째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무기고에서 조롱을 받았을 때는 결심으로 눌러버렸지만, 다솜의 감탄 앞에서는 도리어 더 선명해졌다. '저 표정은 진심으로 놀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놀람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도련님." 다솜이 그를 불렀다. "이 설계, 혼자 생각한 건가?" "...네." 도현이 짧게 대답했다.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목 안쪽이 살짝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생의 지식을 이 세계에 맞게 다시 짜맞춘 것은 분명 그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관의 내경을 이 세계의 강철 순도에 맞춰 계산한 것도, 화약의 배합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바꾼 것도, 모두 그가 직접 밤을 새워가며 해낸 일이었다. '그러니 이건 절반의 진실이다. 그리고 절반의 진실이라도,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걸 열다섯도 안 된 놈이 혼자." 다솜이 감탄과 의심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 원하는 게 뭔가."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시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솜은 잠시 그를 뜯어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 짧은 침묵 동안 그녀의 눈은 도현의 손을, 그다음 눈을 번갈아 보았다. "재밌겠구먼. 마침 요즘 심심하던 참이었지."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단, 실패해도 내 탓은 아니야." "물론입니다." 도현이 그 작은 손을 맞잡았다. 손은 작았지만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악수하는 순간, 도현의 속에서 결심이 다시 단단해졌다. '훔쳐온 지식이든 아니든, 그걸 이 세계에서 실제로 만들어내는 건 오직 내 손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 공방을 나서며, 도현은 뒤를 돌아 다시 한번 물었다. "다솜 님, 이 소식이 다른 기사들에게도 알려질까요." "당연하지." 다솜이 웃으며 말했다. "기사단 대장장이가 애송이 도련님과 손잡고 이상한 걸 만든다는데, 소문이 안 나겠나." "공방 안에서 무슨 소리가 며칠씩 나면, 다들 궁금해서 미치려 들 거야." 도현은 그 말에 잠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문제가 될까요." "글쎠. 재밌어하는 사람도 있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솜이 어깨를 으쓱였다. "특히 그... 요즘 여기 자주 오는 그 성질 사나운 기사, 한서은 말이야. 그 사람이 알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검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거든. 화약 같은 걸로 만든 물건이 검을 대신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 이 공방 문짝을 부수러 올 거야." 도현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한서은.' 낯선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앞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설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걱정 마시게." 다솜이 웃으며 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일단 물건이 제대로 나오면,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어질 테니." "제 몫은 다하겠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서혜란이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공방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도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세를 풀었다. "어땠느냐." 그녀가 물었다. "협력을 얻었습니다." 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다솜이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 사람이 아닌데." 서혜란이 살짝 놀란 눈으로 아들을 보았다. "무슨 수를 썼느냐." "그림 한 장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서혜란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마차 문을 열어주며 짧게 말했다. "타거라. 밤이 늦었다." 마차가 다시 영지로 향해 출발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스쳐 지나갔고, 마차 바퀴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도현은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다솜의 놀란 표정, 종이 위를 오가던 손가락,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낯선 이름 하나. '한서은.' 아직 만나본 적 없는 그 이름이, 왜인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날 밤 도현은 오랜만에 편히 잠들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부터 눈이 감겼고,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이었다. 하지만 그 잠은, 다음 며칠간 이어질 밤샘 작업의 마지막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뒤, 공방의 문 앞에서 그는 그 낯선 이름의 주인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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