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사흘은 짧았다.
도현은 그동안 새로운 시제품을 서둘러 조정했다.
밤이 깊어도 공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고, 낮이 밝아도 다솜과 도현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다솜은 밤낮없이 그를 도왔다.
강관의 두께를 재고 또 재었고, 화약의 배합비를 몇 번이나 다시 맞췄다.
한 번은 배합이 틀어져 시제품 하나가 폭발음만 요란하게 내고 멈춰버렸다.
"이래서는 안 돼." 다솜이 잔해를 살피며 혀를 찼다. "화약이 너무 많으면 폭발력은 세지지만 명중률이 떨어진다. 너무 적으면 관통력이 안 나와."
"균형이 필요하군요." 도현이 재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균형." 다솜이 되뇌었다. "결국 모든 게 균형이지."
그렇게 몇 번을 실패한 뒤에야, 마지막 시제품이 완성됐다.
"이 정도면 갑옷 하나는 확실히 뚫는다." 다솜이 마지막 시제품을 건네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상대다. 움직이는 상대. 그건 갑옷보다 훨씬 어려운 표적이야."
"압니다." 도현이 무기를 받으며 대답했다.
그 무게가 손에 익숙하지 않았다.
쥐어본 적은 여러 번이었지만, 이번엔 그 무게 뒤에 진짜 목숨이 걸려 있었다.
'이게 실패하면, 다음은 없다.'
도현은 무기를 허리춤에 매달고, 몇 번이나 뽑고 넣는 동작을 반복했다.
손목이 저릿해질 때까지 계속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현은 서혜란에게 결투 소식을 알렸다.
"한서은과 결투를 하겠다고?" 서혜란의 표정이 굳었다. "그 아이는 실력이 확실한 기사다. 신체 격차도, 경험도, 네가 크게 밀린다."
"압니다." 도현이 다시 같은 말을 했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서혜란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인정도 섞여 있었다.
그러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 정식 결투는 규칙이 엄격하다. 한번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어느 한쪽이 항복하거나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도주도 허락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판정은 원로가 내린다. 외부 개입은 일절 금지되고, 개입한 자는 그 자리에서 자격을 잃는다." 서혜란이 덧붙였다. "즉, 네가 쓰러져도 아무도 도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이건 놀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서혜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짜 목숨이 걸린 자리라는 뜻이다."
도현은 그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물러설 곳이 없다. 이건 시험이 아니라 생사결이다.'
서혜란은 더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의 어깨를 짧게 짚었다.
"살아서 돌아와라. 그거면 됐다."
그날 밤, 언니들과 여동생들이 하나둘 그의 방으로 찾아왔다.
첫째 도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대신 싸우겠다고 하면, 넌 안 받아들이겠지."
"제 이름으로 신청된 결투입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제가 나서야 합니다."
도서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검집을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그럼 적어도 이거 하나는 명심해라. 한서은은 초식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조언이 아니라 경고다." 도서린이 낮게 말했다.
둘째 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방문 앞에서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손수 짜온 천 조각 하나를 건네고 돌아갔다.
땀을 닦으라는 뜻이었다.
막내 도아린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라버니, 무섭지 않아요?"
도현은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무섭다. 하지만 지금 물러서면, 앞으로도 계속 물러서게 될 거다. 그게 더 무섭다."
도아린은 그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그저 그의 옷자락을 조금 더 세게 붙잡았다가 놓았다.
"오라버니는 지지 않아요." 도아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죠?"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었다.
+++
결투 전날 밤, 도현은 다시 다솜의 공방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다솜은 등불 아래에서 시제품을 이리저리 살폈다.
손끝으로 강관의 이음새를 짚어보고, 방아쇠의 결을 몇 번이나 당겨보았다.
"장전은 두 발까지 가능해. 첫 발이 빗나가면, 두 번째 기회는 아주 짧을 거다." 그녀가 말했다.
"한 발로 끝내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래." 다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서은은 빠르다. 네가 방아쇠를 당길 틈을 쉽게 주지 않을 거야."
도현은 그 말을 곱씹었다.
전술이 필요했다. 힘으로 이길 수 없다면, 상대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틈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밤새 다솜과 함께 훈련장의 지형을 그려가며 접근 경로와 거리를 계산했다.
연무대는 사각형의 좁은 공간이었고, 벽이 없어 상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반대로, 상대가 예측 가능한 동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되었다.
"검사는 보통 세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 다솜이 종이 위에 선을 그으며 설명했다. "직선으로 파고들거나, 측면으로 돌거나, 아니면 유인해서 반격을 노리거나."
"한서은은 어느 쪽입니까?"
"내가 본 바로는, 직선이다." 다솜이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속도를 믿는 자들은 대개 그렇지.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한서은은 검사다. 검사는 거리를 좁히려 한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그 직선의 궤도가 곧 내가 노릴 순간이다.'
도현은 종이 위에 화살표를 그리며 그렇게 결론지었다.
"만약 예상이 틀리면?" 다솜이 물었다.
"그럼 두 번째 발도 준비해야겠지요."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경우입니다."
다솜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낮게 웃었다.
"도련님, 자네 진짜 재능은 무기가 아니라 이런 계산인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릅니다." 도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새벽이 오는 것도 모르고 종이 위의 선을 몇 번이나 다시 그렸다.
창밖이 희붐해질 때쯤에야, 다솜이 종이를 접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 몸이 버텨야 손도 버틴다."
도현은 그 말에 따라 손을 놓았다.
하지만 머릿속의 선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
결투 당일 아침, 하늘은 맑았다.
연무대 주변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기사들이 여럿 서 있었다.
대부분은 비웃음 섞인 표정이었고, 몇몇은 순수한 흥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장난감 든 도련님이 진짜 기사한테 도전한다며?" 누군가 낮게 속삭였고, 주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현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웃으라고 해. 결과가 말해줄 테니.'
서혜란과 다솜, 그리고 언니들 몇이 관중석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도서린은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이었고, 도아린은 서혜란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다.
도현은 그들을 향해 짧게 목례하고, 연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맞은편에서 한서은이 걸어 나왔다.
가벼운 경갑을 걸치고, 허리에는 익숙한 손길로 검을 차고 있었다.
걸음마다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왔군." 그녀가 도현을 훑어보며 말했다. "장난감은 챙겨 왔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도현이 허리춤의 파일 벙커를 가볍게 만졌다.
"솔직히 말해서," 한서은이 검자루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네가 신청을 물릴 줄 알았다. 대부분은 하루 지나면 겁을 먹고 취소하니까."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재밌겠군." 한서은이 입꼬리를 올렸다.
심판을 맡은 기사단 원로가 앞으로 나섰다.
"이 결투는 기사단 규정 제7조에 따른 정식 실전 평가 결투다. 어느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도주는 허락되지 않으며, 심판의 판정이 있기 전까지는 외부의 개입도 금지된다."
원로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현은 그 말을 들으며 손끝의 감각을 다시 확인했다.
무기의 무게, 방아쇠의 저항, 손목의 떨림까지.
'계산한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한서은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날이 아침 햇살을 받아 짧게 빛났다.
"각오는 됐나, 애송이." 그녀가 낮게 물었다.
"됐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원로가 손을 들었다.
연무대 위에는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관중석의 웃음소리도, 속삭임도 모두 멈췄다.
"시작."
그 순간, 한서은의 몸이 지면을 박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훅-
도현은 눈을 크게 뜬 채, 계산해둔 그 직선의 궤도를 향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승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