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개 짖는 소리는 금방 잠잠해졌다.
한참을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더 이상 들리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괜한 걱정이었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세상에 폭염 늑대가 매일 밤 마을을 습격하면 그게 마을이겠냐, 무슨 던전 입구지.
이불을 다시 덮고 눈을 감았는데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낡은 목재 천장에서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신경을 긁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몸이 이 시간에 저절로 깨는 습관을 아직 못 버린 모양이었다.
시계도 없는 세계인데 몸이 알람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여섯 시 오십 분,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그 시각에.
···야근하던 몸뚱이가 이세계까지 따라올 줄이야.
억울했다. 회사는 망해서 못 다니는데 몸에 새겨진 스케줄은 멀쩡히 살아있다니, 이게 웬 저주인가.
몸을 일으키자 어제 삽질도 안 했는데 벌써 팔다리가 뻐근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 이 세계로 떨어지면서 온몸을 굴렀으니 근육통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였다.
오두막 밖으로 나서자 아침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차갑고, 습하고, 흙냄새가 진하게 섞인 냄새.
서울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마을 공동 밭은 오두막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였다.
가는 길에 몇몇 집 앞을 지나쳤는데, 벌써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곳도 있었다. 나만 늦잠 잔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시계도 없이 다들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김덕수는 벌써 그곳에서 흙투성이 손으로 뭔가를 심고 있었다.
허리를 굽힌 채로, 손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일찍 왔구먼."
"네, 뭐부터 하면 됩니까?"
"저기 감자를 캐야 하오. 삽은 저쪽에 있소."
삽을 집어 들자 생각보다 묵직했다. 손잡이는 나무였는데 오래 써서 반들반들했다.
삽질을 시작했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서 헛삽질만 계속했다.
땅은 딱딱했고, 힘을 준 만큼 삽이 파고들지 않았다. 세 번 찍으면 한 번은 감자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회사 다닐 땐 이런 노동을 안 해봤으니 당연했다.
키보드 두드리던 손목이 삽질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었다.
"이봐요, 그렇게 하면 감자 다 상하겠소."
김덕수가 다가와 삽질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뜻밖에 자상한 면이 있었다.
"삽을 세워서 찍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짝 눕혀서 밀어 넣는 거요. 감자는 생각보다 땅속에서 넓게 퍼져 있으니까."
직접 손을 잡아 삽 각도를 잡아주기까지 했다. 무뚝뚝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노인, 겉으론 까칠한데 속은 다정한 타입인가.
몇 번 시도해보니 확실히 헛삽질이 줄었다. 상처 난 감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하는 틈틈이 그가 이런저런 말을 흘렸다.
"이 세계는 대륙 다섯 개로 나뉘어 있소. 우리가 사는 곳은 동부 대륙, 왕국 이름은 세하란이오."
"왕국이요?"
삽질을 멈추고 물었다. 세계관 설명 나오면 일단 멈추고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소. 왕도까지는 여기서 말을 타고 열흘은 가야 하지. 우리 이슬촌은 왕국의 가장 변두리에 붙은 촌락이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위험한 일 없어요?"
"몬스터가 종종 나오지만, 대부분 약한 놈들이오. 어제 만난 폭염 늑대 정도가 그나마 강한 편이지."
···그게 강한 편이라니, 그럼 진짜 강한 놈은 뭔데.
어제 그 늑대 눈빛만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한데, 그게 약한 축이라니 이 세계 몬스터 등급표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해졌다.
"모험자라는 사람들도 있소. 몬스터를 잡거나 던전을 탐사하며 돈을 버는 이들이지. 실력 좋은 이들은 왕도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하고."
"던전이요?"
던전이라는 말에 나는 게임에서 보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다. 반지하 술집 같은 곳에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그런 곳.
"산 너머 폐허라든가, 지하 유적 같은 곳을 말하오. 마법 도구나 희귀한 재료가 나온다 하오."
"거기 들어가면 다 부자 되는 거예요?"
"죽는 사람이 더 많소."
즉답이 서늘했다. 나는 조용히 삽질을 계속했다.
···던전은 로또가 아니라 도박판이었구나. 그것도 목숨 걸고 하는.
일하면서 정보가 하나씩 쌓였다. 이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생기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봤다. 세하란 왕국, 동부 대륙, 이슬촌은 그중에서도 가장 끝자락. 몬스터는 약한 놈들 위주지만 가끔 강한 놈이 온다. 모험자라는 직업군이 존재하고, 던전이라는 위험하고도 돈 되는 곳이 있다.
정리해놓고 보니 딱 판타지 소설 설정집 같았다. 다만 내가 그 설정집 속에 들어가 살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저기, 촌장님은 여기 오래 사셨습니까?"
"이 마을에서 태어났으니 육십 년쯤 됐지."
육십 년이라니, 이 노인 생각보다 훨씬 오래 산 모양이었다.
예순이 넘었을 텐데도 삽질하는 손놀림은 나보다 훨씬 능숙했다. 아니, 이 세계에서는 근력이 나이를 배신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동안 마을에 큰일은 없었어요?"
"삼 년 전, 몬스터 웨이브라는 게 있었소. 그때 마을 사람 몇이 죽었지."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삽질하던 손을 멈췄다.
김덕수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흙을 다지던 손도 잠깐 멈춰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요? 그게 뭡니까?"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서 인간 마을을 습격하는 걸 말하오. 왜 그러는지는 학자들도 모른다더군. 어느 날 갑자기 몰려오는 거지."
전조 증상도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지금은 안전한 건가요?"
"당분간은 그렇소. 다시 오려면 십 년은 걸릴 거란 얘기가 있으니."
십 년이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십 년 안에 조용히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네.
십 년이면 길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삼 년 전에도 왔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십 년'이라는 숫자도 그냥 통계일 뿐 확신은 아니라는 게 더 불안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감자를 캤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삽자루를 쥔 손바닥 안쪽이 화끈거렸다. 처음엔 그냥 뻐근한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물집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터지면 진짜 아플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소. 수고했소."
"감사합니다."
허리를 펴자 뻐근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뚜두둑, 하는 소리가 등 쪽에서 났다. 몇 달 치 뭉친 근육이 한꺼번에 항의하는 소리 같았다.
[【만능생성】 스킬을 사용해 진통 연고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뜬 시스템 문구에 나는 흠칫했다.
연고라니, 그런 건 만들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데.
내가 아는 연고는 약국에서 사는 튜브형 제품이 전부였다. 성분표도 못 읽는 내가 그걸 만들 수 있다고?
"저, 이거 잘 모르는 물건도 만들 수 있어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김덕수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뭘 만든다는 거요?"
"아,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습니다."
김덕수의 눈초리가 잠깐 가늘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다행히 더 캐묻지는 않았다.
조심해야겠다. 이런 데서 스킬 얘기 함부로 흘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세계 사람들이 스킬이나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데, 괜히 이상한 놈으로 찍히면 곤란했다.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시험 삼아 스킬을 써보기로 했다.
일단 연고는 나중에, 지금은 좀 더 익숙한 걸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믹스커피."
작게 중얼거렸다. 회사에서 십 년 넘게 하루 세 잔씩 마신 그 커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였다. 혹시라도 누가 보면 또 이상한 놈 취급받을 테니까.
손안에서 작은 종이 봉투가 형태를 갖췄다. 반투명한 갈색 가루가 안에서 살랑였다.
포장지 디자인까지 그대로였다. 회사 탕비실 서랍에 항상 쌓여있던 그 익숙한 노란색 포장.
[생성 완료. 완성도 98%.]
완성도 98퍼센트라니, 이거 완전 회사 근속 십 년의 결과물이잖아.
2퍼센트는 어디서 깎인 건지 모르겠지만, 내 커피 인생에 대한 채점표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억울하면서도 뿌듯했다.
오두막에 도착해서 낡은 냄비에 물을 끓였다. 다행히 부엌에 화로가 있었다.
불씨를 살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성냥도 라이터도 없는 세계에서 불붙이는 법을 새로 배워야 했는데, 어제 김덕수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리며 겨우 불을 붙였다.
뜨거운 물에 가루를 붓자 익숙한 향이 확 퍼졌다.
달콤하고, 씁쓸하고, 그리운 냄새.
김이 올라오면서 좁은 오두막 안이 온통 그 냄새로 가득 찼다. 코끝이 먼저 반응하고, 그다음에 위장이 반응했다.
한 입 마시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거 진짜다. 이 맛, 이 향, 완전히 그대로다.
혀에 닿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반응하는 것 같았다. 야근하던 밤, 회식 다음 날 숙취로 죽어가던 아침, 상사한테 욕먹고 화장실 가서 몰래 마시던 그 커피까지,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황빛이 창틀 너머로 길게 들어와서 낡은 나무 바닥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 커피 한 잔이 이렇게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걸, 나는 마흔둘이 되어서야 알았다.
한 잔을 다 비우고도 아쉬워서 봉투 안쪽을 손가락으로 긁어 남은 가루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이게 무슨 청소년도 아니고,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상관없었다.
다음 날, 밭에서 일하다가 문득 김덕수에게 그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냥, 그의 무뚝뚝한 얼굴이 이 커피를 마시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던 것 같다.
어제 삽질 가르쳐주면서 손 잡아주던 그 무뚝뚝한 다정함에 대한 답례 같은 거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이 맛있는 걸 나만 알기가 아까웠던 것일 수도 있었다.
일하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삽질하는 리듬에 맞춰서 '커피, 한 잔, 대접, 하고 싶다' 하는 단어들이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하고 두 번. 이슬촌에서는 노크 소리도 여기 흙벽만큼이나 투박했다.
김덕수였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저녁 어스름 속에서, 그의 얼굴은 어제 낮에 봤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서준혁 씨, 잠깐 시간 있소?"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삽질 가르쳐줄 때의 그 느긋한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