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조용히 살고픈 만능장인

5화

개 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캉캉캉, 낮고 다급한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한 마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 개들이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오두막 문을 살짝 열어 밖을 살폈다. 마을 쪽에서 불빛이 여러 개 흔들리고 있었다. 횃불인 모양이었다. ···뭐야, 설마 벌써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는 건가.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제 김덕수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조심하라는 말, 소문이 퍼질 거라는 경고. 그 노인네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정작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문틀을 붙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불빛은 오두막 쪽이 아니라 밭 반대편, 마을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봤다. 불빛은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집 앞에서 멈춰 섰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를 겨냥한 불빛은 아니었다. 다행히 나를 찾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을 닫았다. 그래도 그날 밤은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도 자꾸 창밖 소리에 귀가 쏠렸다. * * * 다음 날 아침, 밭에서 일하다가 오정재라는 젊은 농부를 처음 만났다. 근육질 몸에 그을린 피부, 시원시원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팔뚝은 내 허벅지만 한데 삽을 든 손놀림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어이, 당신이 그 서준혁이란 사람이오?" "네, 맞습니다." "촌장님한테 얘기 들었소. 밭일 도와주러 왔다고." "아, 예. 그렇습니다." 오정재가 삽을 하나 건네며 옆에 자리를 잡았다. 흙 묻은 손으로 어깨를 툭 치는데, 그 힘이 만만치 않아서 나는 한 발 물러날 뻔했다. "어제 마을에 좀 소란이 있었소. 몬스터 흔적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돌아서." "몬스터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티 안 나게 침을 삼켰다. "별거 아니오. 늑대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폭염 늑대치고는 상처가 심하더라던데." ···그거 나 때문인데. 식은땀이 났다. 소화기로 늑대를 후려친 그 흔적이 발견된 모양이었다. 하필 그 소화기, 아직도 오두막 구석에 그대로 세워져 있는데. "그 늑대, 잡혔습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눌러 냈다. "아니, 도망갔소. 근데 다들 걱정이 많소. 다친 몬스터는 더 위험할 수도 있어서." 다행히 나한테로 화살이 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의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삽질하는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오정재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삽질을 하면서도 계속 이런저런 소식을 늘어놓았다. 밭 한 뙈기를 갈아엎는 동안 마을 사람 절반의 근황을 다 들은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촌장님이 요즘 뭔가 좋은 걸 마신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시더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피로가 싹 풀리는 음료라고." ···아, 이거 벌써 자랑하고 다녔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김덕수가 조심하라면서 정작 본인이 소문을 내고 있었다니. 어제 그 진지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하던 얼굴이 떠올라서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조심하라고 한 사람이 제일 먼저 떠벌리고 다니면 그건 대체 무슨 경고였던 거지. "그,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최대한 모르는 척을 했다. 삽으로 흙을 퍼내는 동작에 괜히 더 힘을 실었다. "당신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촌장님이 그거 당신한테 받았다고 하던데." 오정재가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눈치가 빠른 게 이 노인이나 이 청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들 눈치 하나로 먹고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어물쩍 넘겼다. "나도 한 번 맛보고 싶은데, 안 되겠소?" 곤란한 부탁이었다. 여기서 한 명 더 알게 되면,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분명했다. 촌장 한 명한테서 시작된 소문이 벌써 이 정도인데, 오정재까지 알게 되면 그야말로 산불처럼 번질 게 뻔했다. 하지만 이 사람도 마을에서 알아야 할 사람이고, 계속 밭일을 같이 할 사이인데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저 팔뚝으로 삽질을 도와주는데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뭐했다. "…나중에요. 지금은 재료가 부족합니다." 일단 시간을 벌기로 했다. "재료? 그거 재료가 있어야 만드는 거요?" "네, 뭐 그렇습니다." 적당히 얼버무렸다. 사실은 재료 없이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재료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냥 시스템이 만들어 준다고? 오정재는 다행히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씩 웃으며 삽을 고쳐 잡았다. "뭐, 알겠소. 대신 나중에 진짜 한 잔 줘야 하오. 우리 어머니가 요즘 무릎이 안 좋아서 그러오."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번엔 무릎이라니. 촌장의 피로부터 오씨네 아이 얘기까지,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요."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계속 계산이 돌아갔다. 이러다가 마을 사람 전체한테 한 병씩 돌려야 하는 건 아닐까. * * * 일이 끝나고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 어귀에서 중년 부부와 마주쳤다. 오씨 부부였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남편 쪽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에 어색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네?" "촌장님께 들었는데, 그… 특별한 음료를 만드신다고요." ···벌써 여기까지 퍼졌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촌장, 오정재, 이제 오씨 부부까지. 하루 사이에 소문이 이렇게 뻗어 나갈 줄은 몰랐다. 이슬촌이 무슨 SNS라도 하는 건가. 부인 쪽이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저희 집 애가 요즘 몸이 약해서 걸음도 잘 못 걷는데, 촌장님이 그 음료 마시고 몸이 훨씬 좋아지셨다고 해서요." 애 얘기까지 나오니 거절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부인의 눈에 눈물까지 살짝 고이는 걸 보니, 이 사람은 진심으로 다급한 모양이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났다.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질 줄은 몰랐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마을 전체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이러다 옆 마을까지 소문이 넘어가는 건 아닐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제가 지금은 좀 여유가 없어서요.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일단 자리를 피했다. 부부의 아쉬운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게 느껴졌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흙바닥을 밟는 발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듯 앉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등을 타고 스며들었다. 숨을 크게 내쉬자 오두막 안의 텁텁한 공기가 그대로 되돌아왔다.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는데, 벌써 이 지경이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릎을 세우고 이마를 그 위에 얹은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이 정도면 차라리 마을 사람들 다 불러다 놓고 한 잔씩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그러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데. 재료도 없이 매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어진다. 머릿속이 뒤엉킨 채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배가 슬슬 고파 왔다. 저녁이라도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창밖에서 이상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규칙적인 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였다. 몸이 저절로 굳었다. 마을 사람들은 말을 거의 타지 않는다고 김덕수가 얼핏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럼 이건 누구지.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오두막 바로 앞에서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창문 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비쳤다. 말에서 내리는 인기척, 갑옷인지 뭔지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섞여 들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여자 목소리였다. "여기가 그 소문의 오두막이 맞나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의 말투 같았다. 이슬촌 안에서 도는 소문치고는, 말투와 억양이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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