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김덕수의 얼굴이 어딘가 심각했다.
평소 같으면 밭일 얘기나 날씨 얘기로 시작했을 텐데, 오늘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 표정 하나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속으로는 이미 별별 상상을 다 하고 있었다.
밭에서 시체가 나왔나. 마을에 도둑이 들었나. 아니면 내가 뭔가 실수한 건가.
"별건 아니오. 그냥… 낮에 밭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었소."
···아, 커피 냄새.
심장이 덜컥했다.
머릿속에서 어제 오두막 안 풍경이 빠르게 재생됐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종이봉투에서 원두를 꺼내고, 그 향이 문틈으로 슬금슬금 새어나가던 모습까지.
그때는 그냥 좋았다. 오랜만에 맛본 커피 한 잔에 취해서, 냄새가 어디까지 퍼질지는 생각도 안 했다.
바보 같았지. 여기가 무슨 도심 오피스텔도 아니고, 사방이 논밭인 마을인데 냄새가 안 퍼질 리가 없잖아.
"이상한 냄새요?"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표정 관리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렇소.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소."
김덕수의 회색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이 묘하게 사람을 압박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확인만 하려는 눈치였다.
이 노인, 은근히 예리하다니까.
농사꾼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 뒤에 저런 눈치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거, 제가 만든 겁니다."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마을 근처에 사는데 계속 숨기는 것도 무리였다.
애초에 냄새라는 게 숨길 수 있는 종류의 증거가 아니었다. 지문이나 발자국이라면 어떻게든 지워보겠지만, 향은 그냥 바람 따라 퍼져나가는 거니까.
"뭘 만들었단 말이오?"
"커피라는 음료입니다. 제 고향에서 마시던 겁니다."
"고향?"
"…멀리서 왔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자세한 설명을 피하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김덕수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무섭게 길었다.
시계도 없는 오두막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체감상으로는 족히 십 분은 지난 것 같았다.
노인의 시선이 나에게서 방 안 구석에 놓인 종이봉투로 옮겨갔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뭘 저렇게 재는 거야. 설마 마을 사람들 다 부르러 가는 건 아니겠지.
"한 잔 마셔볼 수 있겠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네? 아, 예. 잠시만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냄비에 물을 올렸다. 손이 살짝 떨렸다.
괜찮을까. 이상한 눈으로 보면 어쩌지. 마을 사람들한테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혹시 이게 이 세계의 금기 같은 거면 어쩌지. 어디 마녀사냥 당하는 거 아니야.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냄새를 맡았다고 하니 되돌릴 수 없었다.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보글보글, 냄비 안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커피를 우려 낡은 나무 잔에 담았다. 마을에서 쓰는 컵이 딱히 없어서 어제 만든 종이컵을 재활용했다.
향이 다시 오두막 안을 채웠다. 어제보다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양만 우렸는데도 향은 여전히 진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김덕수가 잔을 받아 조심스레 향을 맡았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 반응 하나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입 마셨다.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처음엔 미묘하게 찌푸려지더니, 곧 눈이 크게 떠지고, 마지막에는 뭔가 놀란 듯한 표정으로 잔을 다시 내려다봤다.
"이건… 대체 뭐요?"
"커피입니다. 씨앗을 볶아서 만드는 음료입니다."
"이런 맛은 처음이오. 씁쓸한데 그 뒤로 뭔가 달큰하고, 마시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구먼."
김덕수가 진지하게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 진지함이 오히려 웃겼다.
농사꾼 얼굴로 커피 품평회 심사위원 흉내를 내는 걸 보고 있으니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지금 웃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김덕수의 피로도가 30% 감소했습니다.]
···뭐야 이거, 진짜 효능이 있는 거였어?
갑자기 뜬 시스템 문구에 나는 흠칫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정보였다. 그냥 향이 좋고 맛있는 음료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피로도라는 스탯에 영향을 준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커피에 이런 효과까지 붙는 건 몰랐다.
혹시 이거 각성제 같은 스킬 효과 아니야. 아니면 힐링 포션 비슷한 건가.
머릿속에서 게임 용어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이 세계에서 스탯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할 때마다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어디서 배웠소?"
"제 고향에서는 다들 마시는 음료입니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최대한 별거 아닌 척 말했지만 김덕수의 표정은 여전히 놀란 채였다.
"이런 음료가 흔하다면, 그 고향은 대체 어디요."
목소리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기색이 실려 있었다. 아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압박이었다.
"…그건 좀 복잡한 사정이라서요."
적당히 말을 흐렸다. 이 이상 파고들면 곤란해질 것 같았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정말로 마녀나 이상한 존재로 몰릴지도 모른다.
김덕수는 다행히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잔을 비우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서준혁 씨, 이 마을에 남을 생각이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조심이요?"
"이런 음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마을 사람들 눈이 다 여기로 몰릴 거요. 그리고 그 소문은… 마을 밖으로도 퍼지기 마련이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조용히 살고 싶다고 신한테 그렇게 말했는데, 시작부터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애초에 조용히 시골에 정착해서,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싶었던 게 이번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전생에서 남들 시선 신경 쓰느라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벌써 이렇게 관심을 끌게 될 줄이야.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글쎄. 일단은 나만 알고 있겠소. 하지만 서준혁 씨도 조심하시오. 마을 사람들 눈이 매섭소."
김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노인이 잠시 멈춰서, 문설주에 손을 짚고 뒤를 돌아봤다.
"오늘 이 잔에 대한 값은… 밭일 반나절로 치겠소."
"예?"
너무 갑작스러운 계산법에 순간 말을 잃었다.
"공짜로 받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오."
노인이 씩 웃으며 문을 나섰다.
···이 양반, 커피 한 잔에 밭일 반나절이라니, 이게 무슨 프랜차이즈 커피값이냐.
아메리카노 한 잔에 사천오백 원 하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카드 한 번 긁으면 끝이었는데, 여긴 노동력으로 계산하는구나.
헛웃음이 나왔지만 동시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어도 이 노인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태도가, 어쩐지 믿음직스러웠다.
문이 닫히고 오두막 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남은 커피 가루가 든 종이 봉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봉투는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원두를 다시 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 벌써 이렇게 많이 써버린 게 후회되기도 했다.
조심하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세계에서 조용히 살려면, 이 스킬을 아무한테나 보여주면 안 된다는 걸 이제야 실감했다.
하지만 이미 김덕수는 알아버렸고, 낮에 밭에서 냄새를 맡았다면 다른 사람도 맡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밭이 마을 초입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는 걸 생각하면, 냄새를 맡은 사람이 김덕수 한 명뿐일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되면, 나 진짜 조용히 살 수 있는 거 맞나.
창밖으로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어제보다 훨씬 요란했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동시에, 뭔가에 놀란 듯 짖어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섞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 같은 것도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아니,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종이봉투를 조용히 다시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넣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어둠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