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마법 수업 첫날.
나는 그날 아침, 유모차 비슷한 물건에 실려 저택 서관으로 옮겨졌다.
'…이거 좀 창피한데.'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의미 없었다.
두 살배기 표정이라는 게 원래부터 무표정에 가까웠으니까.
유모차를 밀던 시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산책 나온 강아지 취급이잖아.'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딱히 반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발로 걸을 수도 없고, 항의할 수도 없고, 그냥 실려 가는 수밖에.
이게 회귀인지 환생인지 뭔지 모를 상황에서 가장 억울한 부분이 바로 이거였다.
정신은 여든다섯 살 노인인데 몸은 두 살.
세상에서 제일 불공평한 신체 스펙 조정 아닌가.
서관 마법 수련실은 원형 강당처럼 생긴 넓은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마법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벽에는 각 원소를 상징하는 수정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하늘빛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건… 완전 마법학교 세트장인데.'
나는 눈을 굴렸다.
어릴 때 즐겨 보던 판타지 애니메이션 배경이 딱 이랬다.
주인공이 첫 등교하는 날, 저런 원형 강당에서 지팡이를 받고 뭔가 폼 나는 대사를 치는 장면.
그런데 나는 지금 지팡이 대신 유모차에 실려 있고, 폼 나는 대사 대신 침을 흘리고 있었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초라하다더니.'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백가(白家) 소속의 마법 교사, 백준서였다.
삼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눈매가 날카롭고 손끝에서 은은한 마력이 새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옷차림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깔끔하게 다린 로브, 허리에 찬 작은 지팡이, 그리고 뭔가 사명감으로 가득 찬 눈빛.
'딱 봐도 원칙주의자 스타일인데.'
나는 그 눈빛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얌전히 있는 게 최선이다.
"오늘부로 강도윤 도련님의 마법 재능 측정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지도하겠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무슨 출사표 읽는 장수 같았다.
'이 세계 사람들은 왜 다들 사극 배우처럼 말하는 거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두 살배기 앞에서 저렇게 격식 차릴 필요가 있나 싶은데, 뭐 어쩌겠나.
이 세계 룰이 그런 걸.
백준서가 작은 수정구를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수정구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고, 안에는 옅은 푸른빛이 소용돌이처럼 맴돌고 있었다.
"마력을 조금만 불어넣어 보시지요."
그가 말했다.
'마력을 불어넣는다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젯밤 촛불 사건을 떠올렸다.
멀쩡히 자고 있던 촛불이 갑자기 화르륵 커졌던, 그 살짝 오싹했던 사건.
그때처럼 집중해보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손끝에 신경을 모았다.
'그냥 살짝만… 아주 살짝만.'
[마력 감지 - 활성화]
[경고: 마력량 임계치 초과 감지]
'…어라?'
나는 순간 당황했다.
뭔가 대괄호 안에 적힌 글자가 눈앞에 둥 떠오른 것 같았다.
'이거 게임 스탯창인가.'
나는 실없는 감탄부터 했다.
'아니,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닌데.'
그 사이 수정구는 이미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마치 태양을 손바닥에 얹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번쩍!
"…!"
백준서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수정구가 쩌적, 금이 가는 소리를 냈다.
"도련님, 그만!"
그가 소리쳤다.
나는 급하게 집중을 풀었다.
다행히 수정구가 완전히 깨지기 직전에 멈췄다.
찌잉-!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백준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수정구를 다시 살펴보던 그의 눈빛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 이건…"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측정 불가 등급입니다."
그가 말했다.
'측정 불가 등급이라니, 이거 나 무슨 게임 밸런스 붕괴 캐릭터냐.'
나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두 살배기가 웃으면 또 이상해 보일 테니까.
대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 무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그냥 아기예요.'
백준서는 그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다시 수정구로 시선을 옮겼다.
수정구 표면에 남은 실금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이 수정구는 백가의 삼백 년 된 유물입니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삼백 년 된 유물을… 방금 내가 깨질 뻔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속으로 아찔했다.
이거 두 살짜리가 문화재 파손범이 되는 건가.
*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백준서는 곧바로 정색을 하며 나에게 다시 마력을 흘려보라고 요청했다.
"조금 더 약하게, 아주 약하게 부탁드립니다."
그가 말했다.
이번엔 그가 직접 새 수정구를 꺼내며 말했다.
이 수정구는 훨씬 작고 낡아 보였다.
'…이건 그냥 연습용인가 보네.'
나는 안도했다.
방금 그 삼백 년 유물이 아니라면, 조금 실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력을 흘렸다.
이번엔 정말 살얼음 걷듯 조심했다.
숫자로 치면 백 중에 일 정도의 힘만 쓰려고 했다.
그런데—
[경고: 마력 제어 실패]
[체내 마력 역류 발생]
'…이건 또 뭔데.'
나는 순간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마력이 몸 안에서 역류한다는 느낌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치 목구멍으로 뜨거운 콜라를 거꾸로 마시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보다 더 지독했다.
뜨거운 콜라를 마시다가 갑자기 사이다처럼 역류하는데, 그 탄산이 식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오는 느낌.
배 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으에엥!"
나는 결국 그냥 울어버렸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몸이 아프면 아기든 어른이든 우는 게 정상이다.
"도련님!"
백준서가 다급히 나를 안아 들었다.
그의 품에서도 나는 계속 눈물을 쏟았다.
억울했다.
아무리 조심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이건 마치 시험에서 답을 다 아는데 손이 떨려서 마킹을 잘못한 기분이었다.
그가 손바닥을 내 배 위에 대고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구절을 중얼거리자, 몸속의 뜨거운 감각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구절은 아마 고대어 같은 걸로, 뭔가 리듬감이 있는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왔다.
'이것도 무슨 마법 언어인가.'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와중에 궁금해졌다.
배움병이라는 게, 몸이 두 살이어도 정신머리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력 역류 진정]
[페널티: 마력 회복 속도 24시간 저하]
'…아, 이거 진짜 게임이구나.'
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생각했다.
이곳의 마법에는 재능만 있는 게 아니라 확실한 페널티도 존재했다.
이건 무슨 뽑기 게임에서 초강력 카드를 뽑았는데, 쿨타임이 이십사 시간이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재능은 SSR인데 왜 쿨타임은 하루야.'
나는 속으로 억울해했다.
유아의 몸은 원래 마력을 소량씩만 다룰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데, 나는 어른의 정신으로 그 그릇을 무시하고 마력을 퍼부었던 것이다.
결과는 역류.
다시 말해, 재능은 만렙인데 신체는 만렙이 아니라는, 아주 전형적인 밸런스 문제였다.
이건 마치 레벨 1짜리 캐릭터한테 만렙 장비를 입혀놓고 던전에 던진 격이었다.
장비는 화려한데, 캐릭터 몸이 그걸 못 버텨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상황.
'…이거 초반 튜토리얼부터 밸런스 조정 실패네.'
나는 속으로 게임 기획자를 원망했다.
물론 이 세계에 기획자가 있을 리는 없었지만.
백준서는 나를 진정시킨 뒤,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깃펜을 든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저거 분명 보고서다.'
나는 직감했다.
두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는데, 그 눈빛이 마치 신기한 표본을 관찰하는 학자 같았다.
'…나 지금 관찰당하는 중인가.'
나는 조금 불편해졌다.
그는 나를 쳐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도련님 나이에 나올 수 있는 재능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혼잣말치고는 너무 크게 말해서, 나에게 확실히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들켰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두 살배기가 어른 흉내를 내려다가 완전히 자충수를 둔 셈이었다.
백준서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이번엔 좀 더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도련님, 혹시… 무언가 느껴지시는 게 있으십니까."
'느껴지는 거요? 지금 배 속이 조금 얼얼한데요.'
물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눈만 깜빡였다.
"…역시 말은 못 하시겠지요."
그가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또 왜 스스로 반성해.'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다.
백준서는 종이를 접어 품에 넣고는, 나를 다시 유모차에 눕혔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가주님께 즉시 보고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조용한 저택에서, 오늘 하루의 소동이 얼마나 크게 퍼질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유모차가 다시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저택의 복도가, 아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저택 전체가 뭔가 심상치 않게 조용해졌다는 걸 느꼈다.
마치 태풍이 오기 직전, 바람이 딱 멈추는 그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