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조현민은 검술을 담당하는 조가(趙家) 소속 무인이었다.
대공가의 자제들에게 기초 무술을 가르치는 역할로 이번에 새로 배정되었다고 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압도당했다.
체격이 크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걸음걸이마다 절제된 힘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와, 이거 완전 사극에서 갓 튀어나온 사람인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곧고, 흔들림이 없었다.
"강도윤 도련님이십니까?"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소리마저 낮고 단단해서, 마치 오래된 종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검술 선생까지 붙는다는 건, 이거 완전 정예 육성 코스인데.'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했다.
마법에 검술까지, 이 정도면 대공가에서 나를 그냥 애지중지 키우는 게 아니라 뭔가 대단한 걸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조금 겁도 났다.
마법 수업에서 이미 한 번 사고를 쳤는데, 검술까지 배우면 또 뭔가 터질까 걱정이 됐다.
'설마 검을 잡자마자 검기 폭발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는 속으로 진지하게 걱정했다.
생각해보니 마력이 넘쳐서 촛불 하나에도 방이 다 타버릴 뻔한 애가, 검을 쥐면 무슨 사고를 칠지는 상상만 해도 아득했다.
"응!" 나는 애써 밝게 대답했다.
두 살배기치고는 지나치게 또렷한 발음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도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조현민은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시선이 묘하게 오래 머물렀다.
마치 내 얼굴 뒤에 뭔가 다른 게 숨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뭘 저렇게 봐.' 나는 눈을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옆에 서 있던 한소율의 옷자락을 슬쩍 붙잡았다.
아기다운 행동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되뇌었다.
"소문대로군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한소율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슨 소문이요?" 그녀가 물었다.
조현민은 대답 대신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더 신경 쓰였다.
'저 웃음,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의 웃음인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시험 문제를 미리 본 학생이 답안지를 채우기 전에 짓는 그런 웃음이었다.
"오늘은 인사만 드리러 왔습니다. 정식 수업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정중하게 말을 돌렸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물러났다.
그가 발을 돌려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저 사람도 뭔가 알고 온 거다.' 나는 확신했다.
대공가에서 마법 재능 하나로 이미 소문이 도는 판인데, 검술 선생까지 뭔가를 눈치채고 왔다면, 이건 그냥 소문이 아니라 거의 공식적인 관심사가 되어버린 거였다.
'이거 완전 반에서 전교 1등 됐다고 옆 반 선생님까지 와서 얼굴 보고 가는 수준인데.' 나는 속으로 자조했다.
문제는 나는 시험을 잘 봐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날 때부터 스탯이 이상하게 찍혀서 그런 거라는 점이었다.
*
그날 밤, 나는 침실에서 한소율을 붙잡았다.
정확히는 아기 특유의 방식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침대 옆에 앉아 이불을 정리하던 그녀가, 그 손짓에 잠시 멈췄다.
촛불 하나가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그 불빛에 그녀의 옆얼굴이 유난히 부드럽게 보였다.
"소율." 나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두 살배기가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건,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 또 실수했다.' 나는 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쯤 되면 그냥 조심성이 없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방심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한소율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경계심 대신, 뭔가 미묘한 애틋함이 섞여 있었다.
"도련님은 참 신기한 아기예요." 그녀가 말했다.
혼내는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정한 쪽에 가까웠다.
"낮에 본 것, 아직도 생각나서요." 그녀가 덧붙였다.
'…아, 그 얘기구나.' 나는 안도했다.
식은땀이 슬며시 식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저 낮에 본 학대 장면 때문에 예민해진 아이라고 넘겨짚은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완전히 잘못된 짚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장면은 하루가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낮에 마당을 지나며 얼핏 봤던, 아인족 노예의 뒷모습.
채찍 자국이 옷 사이로 드러났던 그 순간이, 자꾸 눈앞에 떠올랐다.
"왜 그런 거야?" 나는 물었다.
최대한 서툴게, 하지만 진심으로.
발음을 일부러 뭉개면서, 두 살배기의 어눌함을 최대한 흉내 냈다.
한소율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녀의 손끝이 이불 끝을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말을 꺼내기 전에 스스로 정리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전쟁이 있었어요, 도련님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인간족이 이겼고, 그때부터 아인족들은 그렇게… 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마치 그 사실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의 말투였다.
'전쟁으로 진 쪽을 통째로 노예화했다는 거구나.' 나는 속으로 정리했다.
어디서 많이 본 서사였다.
전생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 열 편 중 여덟 편은 이런 배경을 깔고 시작했다.
다만 소설 속에서는 늘 주인공이 그 부조리를 뒤엎었는데, 여기서는 그 주인공 역할을 지금 두 살배기 상태인 내가 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걷지도 못하는데 무슨 혁명이야.'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일단 기저귀부터 떼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소율이도 마법사야?" 나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오늘 촛불을 껐던 손짓이 신경 쓰였다.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익숙한 동작이었다.
한소율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네, 화계(火屬) 마법을 조금 다룰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평민 출신 마법사는 흔하지 않은데, 도련님 시녀로 뽑힌 것도 그 재능 덕분이었어요." 그녀가 덧붙였다.
'그렇구나. 그래서 촛불을 그렇게 능숙하게 껐던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안도가 피어올랐다.
'평민인데 마법사라니. 이 세계도 완전히 막힌 곳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노력이나 재능으로 신분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인족들에게는 여전히 그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았지만.
적당히 흥미로운 정보였고, 동시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어도 이 저택 안에, 완전히 남 얘기하는 것처럼만 세상을 보지 않는 사람이 하나는 있는 거니까.
나는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았다.
작고 통통한 아기 손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한소율이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한번 웃었다.
이번 웃음은 아까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
며칠 뒤, 백준서와 조현민이 나란히 강태호의 서재로 불려갔다는 이야기를 나는 하인들의 대화에서 우연히 들었다.
정확히는, 우연이 아니라 몰래 엿들은 것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던 나는, 서재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한소율이 나를 안고 지나가려 했지만, 내가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자연스레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됐다.
두 살배기가 어른들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이럴 때는 참 유용했다.
"두 분 다, 강도윤 도련님에 대해 보고할 게 있다고 하셨지요." 강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였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그 목소리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백준서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나긋나긋한 말투와는 다르게, 어딘가 긴장이 섞여 있었다.
"물론이오." 강태호가 답했다.
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이 저택의 주인다운, 재고 따지지 않는 말투였다.
"도련님의 마력 재능은… 정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백준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 밖에서 그 말을 듣던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거 완전 상담실 밖에서 성적표 엿듣는 학생 심정이네.' 나는 속으로 자조했다.
다만 진짜 상담실이었다면 나는 이미 도망쳤을 것이다.
지금은 도망칠 다리조차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한소율의 팔에 안긴 채로, 나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숨소리 하나까지 조절하려고 애썼지만, 아기의 몸은 생각보다 통제하기 어려웠다.
작은 딸꾹질이 튀어나올 뻔해서, 나는 속으로 사색이 됐다.
'지금 딸꾹질하면 완전 다 들킨다.' 나는 속으로 애원했다.
다행히 딸꾹질은 목구멍 근처에서 간신히 멈췄다.
문 안쪽에서는 백준서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력량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력의 결이 일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강태호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침묵이 흐르는 그 몇 초가, 나에게는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력의 결이 일정하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속으로 의문을 삼켰다.
전생의 게임으로 치면 스탯 창에 이상한 버그가 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 사범, 자네도 검을 봤다고 들었는데." 강태호가 이번엔 조현민을 향해 물었다.
"예. 아직 검을 쥐어 보이신 건 아니지만, 도련님의 신체 반응만 봐도 확신했습니다." 조현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과는 다르게, 서재 안에서의 그의 목소리는 훨씬 더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확신을 말하는 건가." 강태호가 물었다.
문 밖에서 그 말을 듣던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한소율이 그 움직임을 눈치채고 나를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저 사람이 뭘 확신했다는 거지.'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검을 쥐어 본 것도 아닌데, 신체 반응만 보고 뭘 확신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조현민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건 좀 더 확실한 자리에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태호의 낮은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허허! 그래, 그래. 그렇게 하지." 강태호가 말했다.
사람 좋은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기대감이 문틈을 타고 넘어오는 것 같았다.
'뭔가 더 있다.'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건 단순히 마법 재능 하나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검술 선생까지 뭔가를 확신했다면, 이 저택 전체가 나를 두고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소율의 품에 안긴 채, 나는 그 문 너머의 목소리들을 계속 엿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쿵거리고 있었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이제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