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침대 짓는 마도구사

1화

왕궁 마도구 공방의 새벽 세 시는 언제나 똑같은 냄새를 풍겼다. 마정석이 과열되며 나는 탄내와, 벌써 사흘째 갈아입지 못한 로브에서 올라오는 쉰내가 뒤섞인,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살아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참아내는 냄새'였다. 나는 작업대에 이마를 붙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든 척 눈을 떴는데, 시야 한쪽 구석이 뻐근하게 저려오는 걸 보니 또 삼십 분쯤 앉은 채로 졸았던 모양이었다. 창밖으로는 별도 뜨지 않은 캄캄한 하늘이 보였고, 벽에 걸린 마등의 푸른 불빛만이 작업대 위 도면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도면 위에는 반쯤 완성된 창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붉은 마정석 가루로 그려낸 선들이 습기를 먹어 번져 있었다. '전생에는 야근하다 과로사한 회사원이었는데, 이번 생에는 야근하다 과로사할 마도구사라니, 참으로 일관성 있는 팔자로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자조하면서 손끝에 남은 마력의 잔열을 느꼈고, 그 잔열이 손톱 밑까지 스며드는 감각에 몸을 살짝 떨었다. 전생에서는 상사가 던지는 서류 뭉치를 받아내며 밤을 새웠고, 이번 생에서는 왕자가 요구하는 마도구를 만들어내며 밤을 새운다. 달라진 건 서류가 마정석으로, 상사가 왕자로 바뀐 것뿐이었다.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제작 진행률: 87%] [경고: 사용자의 수면 부족 지수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딸려온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참으로 성실하게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갱신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창을 손끝으로 휙 밀어냈지만, 경고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깜박거렸다. '알아, 나도 안다고. 근데 네가 마정석을 대신 응축해줄 것도 아니잖아.' 문이 벌컥 열리며 향수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백단향과 사향이 섞인, 값비싸다는 것만 확실한 그 냄새는 이 공방의 탄내와 정면으로 부딪혀 묘하게 역겨운 조화를 이루었다. 제1왕자 이제하였다. 금발을 넘긴 이마와 반듯한 콧날, 백성들이 '단월의 태양'이라 부른다는 그 얼굴이 오늘도 흠잡을 데 없이 반짝였는데, 나는 그 반짝임을 볼 때마다 형광등 밑에서 억지로 웃는 관리자의 얼굴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저 사람도 나 못지않게 피곤할 텐데, 화장도 흐트러지지 않고 옷깃도 빳빳한 걸 보면 인간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세공된 마도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유진, 축복의 창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나?" 그가 팔짱을 낀 채 묻자,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팔십칠 퍼센트입니다, 전하. 마정석 응축이 예상보다 늦어져서요." "그래? 그럼 아침까지 끝내게. 남부 원정에 쓸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는데, 지금이 새벽 세 시였고 아침이라면 다섯 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시스템이 알려준 것도 아닌데 이런 계산만은 왜 이렇게 빨리 되는지, 전생의 야근 본능이 이 몸에도 여전히 새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사람은 사람의 몸을 마정석처럼 응축시킬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군. 아니면 내가 잠을 자는 시간을 마력으로 계산에 넣지 않는 건가.' "전하, 이 마도구는 정밀한 마력 정제가 필요해서, 아침까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손바닥에는 이미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로브 자락에 몰래 문질러 닦아냈다. 이제하는 미소를 지웠다. 그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의 낙차가 얼마나 큰지, 삼 년째 겪어온 나로서는 이미 몸이 먼저 반응했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갑자기 쿵쿵 뛰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한 건, 저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것만으로 공방 안의 공기 온도가 실제로 변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는 점이었다. 마도구사로 삼 년을 살다 보니 온도 변화에는 민감해졌는데, 지금 이건 마정석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인 것이었다. "불가능? 하유진, 나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몇 번을 말했나." "전하, 저도 이 몸이 하나뿐이라, 마력을 무한정 뽑아낼 수는—" "됐어." 그가 손을 들어 내 말을 끊었다. 그 손짓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마치 파리를 쫓듯 가벼웠는데, 그 가벼움이 오히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손짓 한 번에 삼 년치 밤샘의 무게가 통째로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자네는 삼 년 동안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축복의 검, 방어구, 성혼의 반지, 다 자네가 늦었어." 나는 속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늦은 게 아니라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정을 준 거잖소. 축복의 검은 마정석 세 개를 하나로 융합하는 작업이었고, 방어구는 대륙 최고급 마수의 가죽을 다뤄야 했고, 성혼의 반지는 애초에 재료 수급이 두 달이나 늦어졌지 않소.'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것보다 훨씬 순해빠진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전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삼 년 동안 하루에 한 번은 했을 것이다. 습관이 되어버린 사죄는 이제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불씨 같은 것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간이 나를 자를 생각이라면,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 최근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잦아졌는데, 삼 년 동안 잠을 온전히 잔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고, 그 대가로 얻은 건 궁정 마도구사라는 직함과 만성적인 눈밑 그늘뿐이었다. 전생에서도 결국 몸이 망가져 죽었는데, 이번 생에서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이건 신이 나를 데려온 이유가 뭔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었다. 이제하는 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이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자네를 해고하겠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벽에 걸린 마등의 불빛조차 순간적으로 흔들린 것 같았는데, 그건 아마 내 착각이었을 것이다. "해고… 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되물으면서도 목소리에서 배어나오는 것이 놀람인지 기쁨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안 됐다. 심장은 여전히 쿵쿵 뛰고 있었지만, 그 박동의 성질이 조금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공포로 뛰던 심장이, 이제는 뭔가 다른 것으로 뛰고 있었다. "그래. 자네 같은 무능한 자에게 왕실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지. 오늘 안으로 궁을 떠나게." 그가 등을 돌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억울함 때문인지 아니면 안도감 때문인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마정석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떨림이 가라앉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하가 문을 나서기 직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덧붙인 한마디가 있었다. "참고로 왕실 마도구사 자격증은 즉시 회수되고, 자네가 삼 년간 개발한 시제품들은 모두 왕실 소유일세. 개인 물품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자식, 해고를 시켜주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건가.' 삼 년치 봉급을 대신할 퇴직금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밤낮으로 매달렸던 연구 자료마저 몰수당한다는 소리였다. 작업대 서랍 안에 있는 미완성 마도구들, 서고에 쌓아둔 도면들, 그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남의 것이 되어버린다는 뜻이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뭔가 항의하려 했지만, 이제하는 이미 문을 닫고 사라진 뒤였다. 향수 냄새가 서서히 옅어지고, 다시 마정석의 탄내가 공방을 채웠다. 텅 빈 공방 안에 홀로 남은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낮고 갈라져서, 마치 오래 쓰지 않은 마도구가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억울해서 웃는 건지, 후련해서 웃는 건지, 이번에도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있었다. 나는 이제 왕궁 마도구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삼 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두고 빈손으로 궁문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도, 이제야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작업대 위에 놓인 87퍼센트짜리 축복의 창이, 마치 나를 비웃듯 붉은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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