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침대 짓는 마도구사

4화

눈을 떴을 때,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고, 갑각지네에게 당한 통증도, 낙하로 인한 충격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발을 움직여보았지만, 감각은 분명 살아있는데 중력만 사라진 것처럼 몸이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편안한 거였다면, 굳이 그렇게 발악하며 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마저 잠깐 스쳤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무한히 펼쳐진 검은 공간과, 그 한복판에 떠 있는 하나의 빛나는 물체뿐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침대였다.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 하나가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떠 있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을 여관의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도, 던전 입구 근처 야영지의 딱딱한 돌바닥도, 전생에서의 흔한 매트리스만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떠 있는 저 침대는 시트의 질감만 봐도 어딘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결이 마치 최상급 견직물 같았고, 베개는 적당히 부풀어 사람의 목선을 그대로 받아줄 것처럼 놓여 있었다. '이 와중에 침구 감상이나 하고 있다니.' 나는 스스로의 태평함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 웃음마저도 이 검은 공간 속에서는 소리 없이 흩어졌다. [안면(安眠) 로드 조건 충족을 감지했습니다.] [숨겨진 클래스 '수면 건축사'가 개방됩니다.]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을 때, 나는 그 문구를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다. '수면 건축사라니, 이건 또 무슨 실없는 클래스명인가.' 마도구사도 모자라 이제는 잠자리까지 지어야 하는 신세인가 싶어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곧이어 떠오른 설명을 읽으면서 나는 웃음기를 지웠다. [수면 건축사: 던전 내 공간을 재구성하여 완전한 안전지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재료의 질에 따라 안전지대의 등급이 결정됩니다.] 이 클래스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던전 안에서, 몬스터도 침입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완벽한 침실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던전 심층에서 안전지대를 만드는 스킬이라니, 이건 생존 확률을 몇 배는 끌어올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까지 던전에 들어온 모험가들이 죽는 이유의 절반은 몬스터의 습격이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탈진이라는 걸, 나는 F등급이지만 나름대로 마도구사로 굴러먹으며 배운 바 있었다. 잠 못 자는 모험가는 무기를 놓치고, 무기를 놓친 모험가는 죽는다. 그 단순한 공식을 뒤집을 수 있는 스킬이 지금 내 손안에 들어온 셈이었다. '이걸 대체 왜 나한테 준 거지.' 시스템의 의도를 곱씹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받은 건 받은 거였다. 그 순간 나는 그 새하얀 침대로 다가가 손을 뻗어보았다. 손끝이 시트에 닿는 감각이 놀랍도록 생생했는데, 마치 실제 세계에서 최고급 리넨을 만지는 것 같은 부드러움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이건 진짜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보여주는 환상인가.' 확신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 감각이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편안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시트를 몇 번 쓸어보았다. 마찰음도 없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손끝에서 팔로, 팔에서 어깨로 번져 올라오는 것 같았고, 그 감각을 따라가다 보니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눕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몸이 그 침대에 닿기 직전, 시야가 다시 뒤틀리며 어둠이 밝음으로 바뀌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축축한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등이 얼얼했고 갑각지네에게 당한 통증도, 낙하의 충격도 다시 온몸을 두들기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방금 전까지 만졌던 시트의 감촉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잠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오므려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만 손가락 사이로 스쳤다. '꿈이었나, 아니면 진짜 시스템의 개입이었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시스템 창이 여전히 눈앞에 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환각은 아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3층 아래, 누구의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었는데, 벽면은 거친 회색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장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인광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으며, 어딘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똑, 똑, 똑. 그 소리가 마치 시계추처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갑각지네는 나를 놓친 듯 근처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거대한 갑각을 두른 놈이 이 좁은 틈까지 쫓아오지 못한 게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제작 스킬: 수면 건축사 Lv.1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재 공간의 안전 지수: 62%] 시스템 창을 확인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갈비뼈는 여전히 뻐근했지만 부러지지는 않은 듯했고, 손끝의 마력 회로도 정상적으로 반응했다. 발목을 몇 번 돌려보고, 어깨를 크게 돌려본 다음, 목을 좌우로 꺾어 우두둑 소리를 냈다. 온몸이 삐걱거리는 게 마치 오래 방치된 마도구 같았지만, 적어도 작동은 하는 상태였다. '살아있다는 건, 결국 또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짐 가방을 뒤져 남은 재료를 확인했다. 몽환수 뿌리 세 개와 마정석 파편들, 그리고 아직 채집하지 못한 수정 이슬. 재료는 부족했지만, 나는 오히려 목표가 더 뚜렷해진 것을 느꼈다. 원래 계획은 재료를 모아 왕도로 돌아가 판매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 던전 안에, 나만의 완벽한 안전지대를, 완벽한 침실을 짓겠다는 결심이 선명하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어차피 왕도로 돌아가도 나를 받아줄 곳은 없다. F등급 무명 마도구사에게 안락한 집은 사치겠지.' 왕도의 마도구 조합에 몇 번이나 등록 신청을 넣었다가 서류 미달로 퉁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등급도 없고 연줄도 없는 마도구사에게 도시는 결코 친절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던전이라면, 내 손으로 안락함을 만들 수 있다.' 몬스터도, 사람도, 나를 무시하던 시선도 닿지 않는 완벽한 공간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근처 바위틈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누군가의 것으로 보이는 손수건 조각이었다. 고급스러운 자수가 놓인, 왕궁에서나 볼 법한 재질의 천이었는데, 그 위에 검을 든 여성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불빛에 비춰보았다. 자수의 결은 기계로 뽑은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손으로 놓은 것이 분명했고, 실의 광택만 봐도 평범한 상인이 다룰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이런 물건은 보통 왕궁 소속의 재봉사가, 아니면 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자가 직접 주문해서 만드는 법이었다. '이런 심층에 왕궁 물건이 왜 떨어져 있지.' 나는 그 손수건을 집어 들며 미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검을 든 여성의 문양이라니, 이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문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인장에 가까웠다. 이 던전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왕궁과 관련된 인물이 먼저 다녀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수건을 뒤집어 보았다. 문양 아래쪽에 작게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흙이 묻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어떤 이름의 이니셜처럼 보였다. 손끝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자 은실로 놓인 자수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이곳은 지도에도 없는, 누구도 밟은 적 없다고 알려진 3층 아래의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손수건의 상태는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실의 색이 아직 바래지 않았고, 흙에 덮여 있던 부분을 제외하면 자수의 은실도 여전히 빛을 냈다. 누군가가,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이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축축하고 어두운 암반 공간으로만 보였던 이곳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만약 이 손수건의 주인이 아직 이 던전 어딘가에 있다면, 그리고 그 인물이 왕궁과 관련이 있다면, 이건 단순한 채집 작업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손수건을 품속에 조심스럽게 챙기며 마른 침을 삼켰다. 갑각지네를 피해 겨우 살아난 것도 잠시였다. 이 미지의 공간에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위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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