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모험가 조합의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나무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걱거렸고, 벽에는 낡은 의뢰서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빛바랜 종이 위로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이곳도 예전 그대로구나.' 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2년 전, 처음 이 문을 열었을 때도 같은 냄새가 났었다.
그때는 설렘이었고, 지금은 그저 익숙함이었다.
도윤은 접수대로 다가갔다.
접수대 뒤에는 젊은 접수원이 앉아 하품을 참고 있었다.
"등급 재심사와 파티 배정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접수원이 서류를 뒤적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서류를 넘기는 손가락이 점점 느려졌다.
이름을 확인하는 듯했다.
"토속성 단일 마법사시네요." 접수원의 말투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방금 전까지 사무적이던 목소리에 은근한 비웃음이 섞여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도윤이 담담히 답했다.
"요즘 어느 파티도 토속성 단일은 안 받아요. 방벽 마법사는 흙집게라고 다들 그러죠." 접수원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조롱이 섞여 있었다.
'흙집게라니.' 도윤은 그 단어가 가슴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쓸모없이 땅만 파는 벌레라는 뜻이었다.
누가 처음 그런 말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조합 전체가 아는 말이었다.
"등급 재심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도윤이 화제를 돌렸다.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심사비 은화 50냥, 통과 못 하면 그냥 날리는 거예요. 최근 3년간 토속성 단일로 등급 오른 사람 못 봤는데." 접수원이 서류를 도윤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종이가 탁자 위에서 미끄러지다 멈췄다.
주변에 있던 모험가 몇몇이 그 말을 듣고 낮게 웃었다.
"저 친구, 황금검단에서 잘렸다며?" 누군가 소곤거렸다.
"거기 리더가 자비를 베풀었다던데, 밥이라도 먹여줬으니 다행이지." 다른 이가 맞장구쳤다.
웃음소리가 조합 안을 낮게 맴돌았다.
소문은 이미 여기까지 퍼져 있었다.
누가 퍼뜨렸는지는 뻔했다.
'벌써 이렇게 됐구나.'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은화를 세었다.
품 안에서 꺼낸 주머니가 가벼웠다.
남은 전 재산의 절반이었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그는 그것을 애써 감추었다.
접수원은 그 떨림을 알아챈 듯 다시 한번 피식 웃고는 은화를 챙겼다.
+++
심사비를 내고 안내받은 곳은 조합 지하의 작은 시험장이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낡은 표적과 흙벽이 세워진 좁은 공간이었다.
벽 곳곳에 균열이 나 있었고, 바닥에는 흙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흙벽 하나 세워보시고, 강도 측정할게요." 시험관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손에 든 서류판을 대충 흔들며 자리를 잡는 모습이 심드렁했다.
이미 결과를 정해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도윤은 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올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힘이 퍼져 나갔다.
스르릉-
흙이 솟아올라 벽을 이루었다.
두께나 형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시험관의 표정은 무심했다.
시험관이 벽을 몇 번 두드려보고는 곧 관심을 잃은 얼굴이 되었다.
"음. 방어력은 표준 이하네요. 딱히 특이점도 없고." 시험관이 서류에 무언가를 적었다.
글씨를 쓰는 손놀림조차 대충이었다.
"이 정도면 등급 유지도 어려워요. 오히려 강등당할 수도 있어요." 시험관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전부 예상했던 결과다.' 도윤은 그렇게 되뇌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2년간 쌓아온 실력이 이렇게 초라하게 평가받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황금검단에 있을 때는 서준혁이 늘 말했었다.
"네 방벽이 없으면 우리가 죽어. 넌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는 거야." 서준혁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그 말을 믿었던 자신이 이제는 우스웠다.
같은 방벽이, 같은 마법이, 여기서는 표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파티 배정은 가능합니까." 도윤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목소리에 힘을 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글쎄요. 요즘 신생 파티들도 토속성은 안 찾아요. 화속성이나 수속성, 풍속성 위주라." 시험관이 서류를 정리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도윤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실렸다.
스스로도 낯선 목소리였다.
2년 전에는 이렇게 매달릴 줄 몰랐던 그였다.
"글쎄요, 뭐 특기가 있으시면 몰라도." 시험관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말을 마친 시험관은 이미 다음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도윤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특기.
그 단어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특기라는 게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자리에 서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윤은 시험장 벽에 남은 자신의 흙벽을 잠시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중에 저 벽을 부수고 다른 흔적을 남길 것이었다.
그 무의미함이 오늘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
시험장을 나서던 길, 도윤은 접수대 근처에서 낯익은 이름을 들었다.
계단을 다 오르기도 전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귀에 꽂혔다.
"황금검단 서준혁 말이야, 이번에 새로 영입한 마법사들 덕에 S랭크 심사 통과 확실하다더라." 모험가 하나가 동료에게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거기 원래 토속성 마법사 있었잖아. 그 친구는 어떻게 됐대?" 다른 이가 물었다.
질문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졌다.
"버려졌지 뭐. 서준혁이 원래 그런 식이야. 필요할 땐 곁에 두고, 필요 없어지면 바로 잘라. 예전에도 그런 적 있대." 첫 번째 모험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도윤은 그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발밑의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니.' 도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더 듣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캐묻는 꼴이 될 것이었다.
그것만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조합 건물을 나서는 도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바깥으로 나오자 늦은 오후의 햇살이 눈을 찔렀다.
빛은 밝았지만 조금도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2년간 서준혁을 친구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이제는 전부 다른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밤을 새워 몬스터를 상대하던 기억도, 술잔을 나누며 웃던 기억도, 이제는 전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혹시 처음부터 계산된 관계였을까.' 그 의문이 도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준혁이 처음 접근했던 날도 떠올랐다.
"너 같은 방벽 마법사가 우리 파티엔 꼭 필요해." 그때 서준혁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 웃음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계산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밤이 되어도 그 물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의 얼룩을 세다가, 다시 서준혁의 말들을 되짚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말이 자꾸만 마음을 긁었다.
그렇다면 자신 이전에도 누군가 같은 자리에서 버려졌다는 뜻이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도윤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