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됐으니 캠핑하겠습니다

2화

청명산 입구에서 마차는 나를 내려놓고 곧바로 돌아가 버렸는데, 마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 등에는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채찍 소리 한 번, 바퀴 굴러가는 소리 몇 번, 그리고 정적. 밤이었다. 달빛조차 두꺼운 나뭇가지에 가려 스며들지 못하는, 그런 완벽한 어둠 속에 열 살짜리 몸뚱이 하나가 던져진 것이다. ·····아, 조졌다. 나는 산 입구에 서서 잠시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조차 인색한 밤이었다. 전생에 나는 야근하다 죽었으니 자연이라는 것과 십 년은 담을 쌓고 지낸 몸이었는데, 이제 와서 산속에서 생존을 해야 한다니 이건 인과율이 나를 억까하는 게 분명했다. 캠핑용품점 근처도 안 가본 인생이었다. 등산화라고는 회사 워크숍 때 억지로 신어본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발에 물집이 잡혀서 다음 날 절뚝거리며 출근했던 기억뿐이었다. 손이 떨리고 무릎이 후들거렸으나, 이상하게도 절망보다 먼저 배가 고파왔다. 감정식이 끝나고 나서 물 한 잔도 못 마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뱃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 상황에 배가 고프다니, 인간의 몸뚱이라는 게 참 얄궂었다. 나는 일단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발이 이끄는 대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소름이 돋았고, 발밑에서 뭔가 바스락거릴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벌레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에 몇 번이나 몸을 떨었다. 도시에서 자란 전생의 감각이, 이 낯선 야생의 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삼십 분쯤 걸었을까,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문득 스킬창을 다시 띄워보았다. 이거라도 없으면 진짜 이 산속에서 시체로 발견될 것 같았다. "캠핑, 발동." 순간 눈앞에 반투명한 메뉴창이 떴다. [캠핑 스킬 발동] [하위 스킬 해금: 야영지 설치] [반경 10미터 내 안전지대 형성 가능] [재료: 주변 자연물 활용] 안전지대라니. 반신반의하며 나는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와 마른풀을 주워 모았는데,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몸에 저장된 경험치가 있는 것처럼, 가지를 엮는 방법도, 불씨를 살리는 방법도, 배운 적 없는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가지 사이를 오가며 매듭을 짓고, 넝쿨을 감아 고정하는 그 모든 동작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게 뭐야, 나 이런 거 할 줄 알았어? 삽시간에 작은 오두막 형태의 쉼터가 완성됐다. 나뭇가지와 넝쿨로 얽은 벽에, 마른 잎으로 덮은 지붕까지. 어른이 봤다면 며칠은 걸릴 작업을, 나는 채 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끝냈다. 완성된 쉼터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전생에 회사 파티션 하나 조립하는데도 삼십 분씩 걸려서 팀장한테 잔소리를 들었던 내가, 이제 와서 오두막을 십 분에 짜맞추고 있다니. [야영지 효과 발동] [반경 내 몬스터 및 야생동물 위협도 자동 하향 조정] [휴식 시 체력 회복 속도 300% 상승] 뭐지, 이거. 나는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등급이 SS인 이유가 이거였나 싶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배는 고팠고, 몸은 지쳤고, 확신은 없었다. 나는 야영지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근처에서 주운 산나물과 야생 뿌리채소를 캠핑 스킬의 안내를 따라 손질했다. 불씨가 처음엔 잘 붙지 않아 몇 번이나 부싯돌 비슷한 돌을 부딪쳐야 했는데, 그마저도 손끝에 익숙한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요리라는 하위 스킬이 해금된 건 그때였다. [하위 스킬 해금: 야외 요리] [재료의 영양·풍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림] [조리 시 향기 확산 범위 대폭 증가] 야생 뿌리를 삶고, 산나물을 볶고, 남은 재료로 국물을 끓이는데, 그 냄새가 상상 이상으로 진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정말로 코를 찌를 만큼 향기로운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그 냄새에 취해 침을 삼켰다. 재료라고는 이름도 모르는 풀떼기와 흙 묻은 뿌리뿐이었는데, 스킬이 개입하는 순간 그것들이 마치 고급 레스토랑 재료처럼 변모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냄새가 문제였다. 부스럭. 뒤편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청명산에는 맹수가 들끓는다는 말이 그냥 겁주려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손에 쥐고 있던 나무 국자가 툭 떨어졌다. 부스럭, 부스럭. 나뭇잎 사이로 커다란 형체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털, 검은 줄무늬, 성인 남자 두 명은 족히 삼킬 만한 거대한 체구. 호랑이였다.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온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신수 급의 존재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확 돋았다. 안면 근육이 통째로 굳었다.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죽은 척을 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졌지만, 다리는 이미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뚝, 뚝, 뚝.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잡아먹히는 건가. 열 살짜리로 다시 태어나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싶어 억울함이 확 밀려왔다. 호랑이는 천천히 야영지 경계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커다란 코가 조리 중인 국물 냄비를 향해 킁킁거리며 움직였다. 어라. 호랑이의 위협적인 자세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귀가 앞으로 쫑긋 서고, 꼬리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시무시한 눈빛에 살기 대신 어떤 다른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건 다름 아닌 관심이었다. "·····배고파?"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지만, 호랑이는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듯한 동작을 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몇 번이나 깜박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으로, 나는 손을 뻗어 국물을 나무그릇에 담아 호랑이 쪽으로 조심스레 밀어주었다. 손끝이 여전히 떨렸지만, 이상하게도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느낌보다 궁금하다는 감정이 앞섰다. 그릇을 밀어주는 손목이 파르르 떨렸는데, 무서워서인지 흥분해서인지 나 자신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호랑이는 조심스레 그릇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결심한 듯 국물을 핥아먹기 시작했는데, 그 큰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놀랍게도 새끼 고양이 같은 골골거림이었다. 저 거대한 덩치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나는 잠시 공포도 잊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특수 이벤트 발생: 야생 개체 우호도 상승] [신수(백호) 우호도: 15%] 스킬창에 뜬 문구를 보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 이게 진짜였구나. SS급이라는 게, 이렇게 작동하는 거였구나. 요리 한 그릇으로 신수급 맹수의 우호도를 올리다니, 이건 무슨 육아용 게임도 아니고. 호랑이는 국물을 다 핥아먹고 나서 만족스러운 듯 자리에 배를 깔고 앉았다. 그 거대한 몸이 야영지 한쪽을 통째로 차지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등에 닿는 그 따뜻한 열기가, 지금까지 십 년 동안 이 가문에서 느껴본 적 없는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온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만난 맹수의 곁에서 나는 처음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 옆으로 다가가 등을 기댔다. 호랑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낮게 숨을 내쉬며, 커다란 눈을 슴벅이며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호랑이가 그냥 지나가던 맹수가 아니라,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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