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됐으니 캠핑하겠습니다

4화

백호가 곁에 머물기로 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스킬의 진짜 한계와 가능성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야영지 하나를 만드는 데도 재료와 체력이 소모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나 소모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전생에 나는 뭐든 대충 감으로 넘기다 사고를 치는 타입이었다. 재고 파악도 안 하고 발주 넣었다가 창고를 재난 영화 세트장으로 만든 전적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 생에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킬 하나 가지고도 데이터를 뽑아보겠다는 각오였다. 첫 번째 실험. 나는 기존 야영지를 해체하지 않고, 그 옆에 완전히 새로운 야영지 하나를 추가로 세워보았다. [캠핑 스킬 발동] [두 번째 야영지 설치 시도] [체력 소모: 20%] [재료 소모: 대량] 체력이 확 빠지는 걸 느낌과 동시에, 배도 순식간에 고파졌다. 무릎이 살짝 후들거리고, 눈앞이 잠깐 핑 돌았다. 두 번째 야영지가 완성되자 첫 번째 야영지와 효과가 중첩되는지 확인해보았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야영지 중첩 효과: 없음] [반경 내 효과는 단일 적용] 두 개를 지어도 효과는 늘지 않고, 그저 체력만 두 배로 깎여나가는 셈이었다. 나는 조상신이 버린 듯한 표정으로 두 번째 야영지를 다시 해체했다. "낭비였네." 허탈함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아까운 재료들, 특히 어렵게 캐낸 약초 몇 뿌리가 그대로 증발한 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백호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낮게 웃었다. "당연하지. 힘은 한 곳에 모아야 빛을 발한다." "알았으니까 그렇게 잘난 척 좀 하지 마라." 백호는 대답 대신 꼬리만 한 번 크게 흔들었다. 저 자신만만한 태도가 얄밉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실험. 나는 이번엔 야영지의 규모를 키워보았다. 반경 10미터짜리를 20미터로 확장하는 시도였는데, 스킬창이 곧바로 경고를 띄웠다. [경고: 확장 시 체력 소모율 기하급수적 증가] [예상 소모량: 60%] 60퍼센트라니, 이건 확장 한 번에 하루 치 기력을 다 쓰는 꼴이었다. 회사에서 야근 세 번 몰아서 하고 링거 맞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이 정도로 무모하진 않았는데. 나는 그 시도를 접었다. 대신 규모는 그대로 유지하고, 요리의 질을 올려보는 세 번째 실험을 진행했다. 세 번째 실험. 흔한 산나물이 아니라, 백호가 물어온 산삼 비슷한 귀한 약초를 재료로 요리를 시도했다. [하위 스킬 발동: 야외 요리] [희귀 재료 사용 감지] [결과물: 산삼 영양탕] [특수 효과: 섭취 시 일시적 체력 및 마력 회복 대폭 상승] 완성된 영양탕을 백호에게 먹여보니, 그 큰 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온몸의 털이 하나하나 발광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게 진짜 신수구나, 하고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호도 수치가 눈에 띄게 뛰어올랐다. [신수(백호) 우호도: 22% → 41%] "이거, 재료가 좋을수록 효과가 배가되는 구조구나." 나는 흥미가 확 당겼다. 캠핑 스킬은 단순히 야영지를 세우는 게 아니라, 재료의 질과 조합에 따라 결과물의 등급이 완전히 달라지는 구조였다. 이건 마치 게임의 크래프팅 시스템 같았는데, 전생에 밤새 게임하다 사표를 낸 적도 있던 나로서는 이 구조가 너무 익숙하고 반가웠다. 재료 등급, 조합식, 결과물 옵션까지, 이건 완전히 내가 잘 아는 세계였다. 네 번째 실험은 며칠에 걸쳐 진행됐다. 나는 백호의 도움을 받아 산속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수집했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의 손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산쥐 요괴 한 마리였다. 야영지 근처에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던 그 녀석은, 내가 던져준 나물 부스러기 하나에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이렇게 좋은 냄새는 처음 맡아봤어요!" 산쥐 요괴는 그날부터 야영지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밤에는 야영지 한쪽 구석에 몸을 말고 자면서, 낮에는 내가 재료를 다듬을 때마다 옆에서 알아서 잔심부름을 도왔다. 나뭇가지를 물어오거나, 물을 뜨러 가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는 식이었다. 다음으로는 다리 하나가 부러진 새끼 여우 요괴가 절뚝거리며 나타났는데, 백호가 물어온 약초로 상처를 치료해주자 그 자리에서 눕더니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여기 있으면 안 아파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여우 요괴는, 며칠이 지나자 다리를 절뚝이지 않고 야영지 안을 뛰어다니게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전생에는 누군가를 돌본다는 감각을 잊고 산 지 오래였는데. 야영지의 회복 효과가 요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나는 이 무렵 확실히 깨달았다. 검이나 마법 같은 공격 스킬은 강자에게만 쓸모가 있지만, 캠핑 스킬은 다르다. 약자든 강자든, 인간이든 요괴든, 이 안식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야영지 확장 이벤트 발생] [상주 개체 3 이상 도달 시 야영지 등급 상승 가능] 스킬창에 뜬 새로운 문구를 보며, 나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 걸 느꼈다. 이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무언가를 키워나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가문에서 버림받은 웃음거리 스킬로, 정말 하나의 세력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백호야, 이거 봤어? 상주 개체가 늘면 야영지 등급이 오른대." 백호가 스킬창을 들여다보더니 낮게 감탄했다. "이건 단순한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이건 작은 세계를 짓는 힘이야." 나는 그 말에 묘한 전율을 느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동시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전생에는 회사라는 톱니바퀴 안에서 부품처럼 굴려지다 죽었다. 야근하고, 상사한테 욕먹고, 성과는 남의 것이 되고, 그렇게 갈려나가다 결국 몸이 먼저 무너졌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처음으로 뭔가를 처음부터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버지가 하찮게 여겼던 스킬로. 다섯 번째 실험을 준비하던 그날 오후, 산쥐 요괴가 다급하게 야영지로 뛰어들어왔다. 작은 몸이 벌벌 떨리고, 수염까지 곤두서 있었다. "저기, 저기 산 아래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험상궂은 아저씨들이에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약초를 떨어뜨렸다. 뒤통수가 순간 서늘해지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백호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야영지 경계 쪽으로 향했는데, 그 등의 털이 곤두서 있었다. "인간이다." 백호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수는 둘. 살기가 진하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선우 가문에서 보낸 자들일까, 아니면 정말 그냥 산적일까. 어느 쪽이든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여우 요괴를 등 뒤로 밀어 넣고, 산쥐 요괴에게도 몸을 낮추라고 손짓했다. 백호의 눈빛이 서서히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의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두 사람이 단순한 산적이며, 그들과의 조우가 나의 스킬을 처음으로 실전에서 검증할 기회가 될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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