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날, 서윤은 정각에 나타났다.
팔에는 부목을 대고 있었다.
어제 치료했는데도 다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엘프의 마법과 인간의 회복력은 속도가 다르다.
나는 뒷골목 낡은 창고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 술병이 있었다.
오전 9시.
"뭐부터 배워요?"
서윤의 눈이 반짝였다.
지친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제 팔이 부러졌던 사람의 눈빛치고는 지나치게 맑았다.
나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마력을 느껴봐."
"어떻게요?"
"손바닥을 펴고, 눈을 감아."
서윤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바람이 창고 틈으로 들어와 서윤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서윤은 눈을 감은 채로도 흔들리지 않았다.
"느껴져요."
"뭐가."
"마력이... 흐르는 느낌이요."
"그건 네 혈액순환이야."
서윤의 눈이 커졌다.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혈액순환과 마력의 흐름은 감각적으로 비슷하다.
둘 다 몸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초심자는 늘 착각한다.
200년 전, 나도 그랬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후 3시.
서윤은 손바닥에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후 5시.
똑같았다.
해가 지고 나서도 똑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서윤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내일 또 올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틀째, 사흘째, 나흘째.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서윤은 손바닥을 펴고 서 있었다.
마력의 흐름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형태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창 없이 술을 시전하려면, 마력을 이미지로 먼저 그려야 한다.
그 이미지가 안개처럼 흩어지지 않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했다.
서윤에게는 그 집중력이 없었다.
정확히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그걸 가르칠 방법을 몰랐다.
이틀째 오전.
서윤은 눈을 감고 서서 이를 악물었다.
손끝이 떨렸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흘째 오후.
서윤은 같은 자세로 서 있다가 갑자기 비틀거렸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지러워서요."
"쉬어."
"아니요, 더 할 수 있어요."
그 고집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흘째, 서윤은 코피를 흘렸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말해주자 그제야 손등으로 닦았다.
"이런 건 처음 겪어요."
"마력이 몸에 부담을 준 거야. 네 몸은 아직 마력을 견디는 훈련이 안 됐어."
"그럼 어떻게 해야 견딜 수 있는데요?"
"몰라."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왜 안 되는 거예요."
다섯째 날, 서윤이 물었다.
목소리에 지친 기색이 묻어 있었다.
"몰라."
"그럼 뭘 가르쳐 주고 있는 건데요."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해."
무책임한 말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몰랐다.
200년 전, 나는 이런 걸 배운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됐다.
그게 재능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을, 나는 몰랐다.
그 사람은 나에게 검을 가르쳐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검을 쥐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다.
가르침이 필요 없는 사람과, 가르침이 절실한 사람.
나는 늘 전자만 보아왔다.
엿새째 날.
서윤은 마력을 형태로 만들어내는 대신, 그 형태가 뭉개지는 걸 반복했다.
손끝에서 뭔가 나타났다가 바로 흩어졌다.
"됐어요! 방금 됐어요!"
서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니야."
"방금 분명히..."
"그건 마력이 새어나온 거야. 통제가 안 된다는 뜻이지."
서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 표정을 보는 게 힘들었다.
기대가 무너지는 얼굴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 이건 실패한 거예요?"
"실패는 아니야. 그냥... 아직 아니야."
궁색한 위로였다.
서윤도 그걸 알아챈 것 같았다.
일곱째 날.
서윤은 아침부터 말이 없었다.
손바닥을 펴고 눈을 감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덟째 날.
똑같았다.
나는 서윤을 지켜보며 점점 확신이 옅어졌다.
이 아이는 재능이 없다.
한 달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왜 내걸었을까.
황단비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건 이유가 되지 않았다.
서윤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후손이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보면, 서윤은 그냥 재능 없는 인간 여자아이였다.
마력 감응률이 평균보다 낮고, 집중력이 오래 가지 못하고, 몸이 마력을 견디지 못해 코피를 흘리는.
그런 아이에게 21일 만에 시술 생략을 가르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내가.
아흐레째 날, 나는 처음으로 다른 것을 시도했다.
"이미지를 그리지 말고, 필요한 걸 먼저 정해."
"필요한 거요?"
"화살이든, 방패든.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정해. 그다음에 마력을 그 형태에 맞춰."
서윤이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손끝에 희미한 빛이 맺혔다.
그리고 흩어졌다.
"조금 오래 버텼어요."
"1초."
"그래도 늘었잖아요."
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속도로는 남은 시간 안에 목표에 도달할 수 없었다.
계산이 그랬다.
남은 시간은 21일이었다.
21일 안에 시술 생략을 완성해야 한다.
지금 속도로는 210일이 걸려도 부족했다.
숫자가 나를 조여왔다.
그날 오후, 서윤의 손끝에서 빛이 1.5초 버텼다.
잠시 후, 1.7초.
다시, 1초로 떨어졌다.
증가와 감소가 불규칙하게 반복됐다.
어떤 규칙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밤에 혼자 창고에 앉아 그 숫자를 곱씹었다.
21일.
1초.
210일.
계산이 맞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무리한 조건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서윤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던전에서 거인에게 짓눌려 죽어가던 여자아이.
황단비의 성을 물려받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인간.
그런데도 나는 그 아이를 살렸다.
그리고 가르치겠다고 했다.
내가 원한 게 뭐였는지, 이제는 헷갈렸다.
술병을 다시 열었다.
입가로 술이 흘렀다.
목구멍이 뜨거웠다.
그런데 아무것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서윤이었다.
밤인데도 다시 온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연습이요."
"밤에는 쉬어."
"시간이 없잖아요."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서윤은 어두운 창고 한구석에 앉아 손바닥을 펴고 있었다.
혼자.
부목을 댄 팔로도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게 보였다.
그 자세가 어색해서, 오히려 더 눈에 밟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뭔가 익숙한 자세였다.
포기하지 않는 모양이.
그 사람도 밤새 검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달빛 아래서 땀에 젖은 등이 흔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그렇게 강해졌다.
재능 위에 노력을 쌓아서.
서윤에게는 재능이 없다.
그런데 노력만은 똑같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나는 그 기억을 밀어냈다.
지금은 아니었다.
서윤은 서윤이었다.
"몇 시간이나 그렇게 있을 거야."
"될 때까지요."
"오늘은 안 돼."
"그럼 내일도 안 될 거예요."
서윤의 목소리에는 억지도, 원망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투였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한참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고 안에는 서윤의 숨소리와 술병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선생님도 처음엔 이렇게 어려웠어요?"
"아니."
"그럼 왜 저를 가르치려고 해요?"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정확히는, 대답이 있긴 했는데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 사람과 닮은 이름 때문에.
그 사람과 닮은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그런데 서윤에게서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자."
"선생님도 주무세요."
서윤은 결국 창고 바닥에 웅크려 잠들었다.
부목을 댄 팔을 조심스럽게 감싸안은 채였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술병을 비웠다.
그래도 손끝이 계속 차가웠다.
술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밖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1일 중, 아흐레가 지났다.
남은 시간은 열이틀.
열이틀 안에 무언가가 바뀌지 않으면, 이 훈련은 시작부터 실패로 끝날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윤을 깨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