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대현자의 마지막 제자

4화

열흘째 아침. 눈을 뜨자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몸속에 남아 있었다. 목이 탔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12분.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손으로 벽을 짚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창고까지 걸어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햇빛이 눈을 찔렀다. 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올라왔다. 문을 열었을 때, 서윤은 이미 와 있었다. 밤새 자지 않은 얼굴이었다. 눈 밑이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손끝에는 붕대 대신 얇은 천이 감겨 있었는데, 그 위로 핏자국이 배어나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밤새 연습했어요." 대답이 즉각적이었다. "내가 쉬라고 했잖아."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평소의 서윤이 아니었다. 조심스럽던 말투가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조급함이 들어앉아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꼈다. 속으로는 화가 나야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다른 생각이 올라왔다. 이 상태로, 밤새 도대체 뭘 했다는 건가. "보여줘 봐." 일단 확인부터 해야 했다. 서윤이 손을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게 보였다. 눈을 감았다. 숨을 골랐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손끝에서 빛이 맺혔다. 작고 희미한 빛이었다. 꺼질 듯 흔들렸다. 1초. 빛이 조금 커졌다. 2초. 형태가 잡히려는 듯 일그러졌다. 3초. 형태가 잡혔다. 작은 화살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영창 없이, 저 정도의 형태를. 4초. 5초. 형태가 흩어지지 않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서윤의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6초. 7초. 8초. 서윤이 눈을 떴다. 화살이 여전히 손끝에 맺혀 있었다. "됐, 됐어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나는 그 화살을 응시했다. 작았다. 약했다. 하지만 완성된 형태였다. 영창 없이 만들어낸 첫 술. 머릿속으로 순서를 되짚었다. 어제 가르친 건 기초 중의 기초였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완성이라니. 말이 되는 속도가 아니었다. "됐어." 짧게 말했다. 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진짜요? 정말요?" "완성된 초식이야. 위력은 형편없지만." 서윤이 웃으며 울었다. 둘 다 동시에 나오는 얼굴이었다. 웃음과 울음이 한 얼굴에서 뒤섞이는 걸 나는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뭔가 목이 뻐근했다. 삼키지 못한 말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오후 1시, 거리로 나섰다. 숙취를 씻어낼 겸 걷는 길이었다. 거리는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낯선 문구가 떠 있었다. 지하 격투장. 실전 타이틀 매치. 지나가는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소환된 후보들끼리 벌이는 시험이라고 했다. 본가가 후보들의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무시하려 했다. 이런 행사는 늘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창고로 돌아오자 서윤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봐주세요." 명단이었다. 명단에 서윤의 이름이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글자가 잘못 읽힌 게 아닌지 확인하듯이. "이미 신청했다는 거야?" "이번 주 안에 참가해야 소환 자격이 유지돼요. 안 가면 그냥 실격이에요." 나는 명단을 다시 보았다. 상대 이름도 있었다. 분가 출신 다른 후보였다. 이름 옆에 붙은 등급 표시를 보았다. 중급. 우리 쪽보다 높았다. "이걸 왜 이제 말해."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어제 통지가 왔어요." "어제면, 오늘 배운 초식 하나로 나가겠다는 거야?" "네." 대답이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내가 말을 잃었다. 시간이 없었다. 계산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처음 완성한 초식. 그것 하나로 실전에 나간다. 미친 짓이었다. "안 나가면?" "낙오자 명단에 확정돼요. 폐인 처리 대상이 돼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폐인 처리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탈락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에 가까웠다. 결정은 서윤이 이미 내려놓은 것이었다. 내가 반대한다고 바뀔 게 아니었다. 나는 명단을 접어 서윤에게 돌려주었다. "다시 손 들어봐."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오후 내내 같은 동작을 반복시켰다. 손을 드는 각도. 숨을 고르는 속도. 빛이 맺히기까지의 호흡. 서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따라왔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오후 6시, 지하 격투장. 계단을 내려가자 열기가 먼저 느껴졌다. 관중석이 붐볐다. 본가 관계자들이 앞줄에 앉아 있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팔짱을 낀 채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뒷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서윤이 무대에 올랐다. 상대는 서윤보다 덩치가 컸다. 검을 쓰는 타입이었다. 움직임에서 이미 실전 경험이 느껴졌다. 관중석에서 배당률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숫자가 압도적으로 상대 쪽에 몰려 있었다. 종이 울렸다. 상대가 먼저 달려들었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서윤이 옆으로 피했다. 간발의 차였다. 검이 스쳤다. 옷이 찢어졌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서윤이 손을 들었다. 눈을 감을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손끝에서 빛이 맺혔다. 낮에 그렇게 반복시킨 게 헛수고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화살이 쏘아졌다. 상대의 어깨에 명중했다. 상대가 비틀거렸다. 관중석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웅성거렸다. 서윤이 다시 손을 들었다. 같은 동작. 같은 호흡. 두 번째 화살. 이번엔 다리에 맞았다. 상대가 무릎을 꿇었다. 관중석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분가 출신, 중간 수준이라 평가받던 후보가 두 번의 영창 없는 술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었다. 앞줄에 앉은 본가 관계자 하나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게 보였다. 서윤이 세 번째 손을 들었다. 상대가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종이 울렸다. 관중석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소리였다. 나는 그 장면을 뒷줄에서 지켜보았다. 손끝이 계속 차가웠다. 오늘 처음 배운 걸로, 실전에서 살아남았다. 그 사실이 뭔가를 건드렸다. 200년 전, 그 사람도 첫 실전에서 그랬다. 배운 지 얼마 안 된 검술로 상대를 베었다. 나는 그때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같은 거리를 두고. 같은 느낌으로. 숨이 턱 막혔다. 가슴 어딘가가 뻐근하게 조여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서윤이 무대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뛰어왔다. 발소리가 급했다. "봤어요? 저 이겼어요!" 얼굴이 상처투성이였다. 찢어진 옷 틈으로 붉은 자국이 보였다. 그래도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마주 보았다.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좁아진 것 같았다. "잘했어." 겨우 그 말을 했다. 서윤이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떨렸어요, 진짜. 화살 쏠 때 손이 안 움직일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움직였잖아."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했어요." 그 말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손끝이 계속 차가웠다. 그날 밤, 나는 창고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서윤을 돌려보낸 뒤였다.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문 앞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낮의 장면이 자꾸 눈앞에 되풀이됐다. 화살이 쏘아지던 순간. 상대가 무릎을 꿇던 순간. 관중석이 조용해지던 순간. 나는 선반에서 술병을 꺼냈다. 뚜껑을 돌렸다. 그런데 마시기 전에,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머릿속에서 뭔가 떠올랐다. 선명한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흐릿하게만 남아 있던 얼굴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황단비.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병을 든 손이 그대로 멈췄다. 기억이 왜 지금, 이렇게 선명하게 돌아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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