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대현자의 마지막 제자

5화

그 얼굴을 떠올리는 게 반갑지 않았다. 200년 동안 억눌러 온 것이었다. 일부러 잊은 척했다. 아니, 정말로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서윤이 마법을 완성한 순간부터, 그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웃는 얼굴. 검을 쥔 손. 뒤돌아보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 "지유야, 같이 가자." 그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끝이 차가웠다. 왜 지금 이게 떠오르는 걸까. 서윤이 그 사람의 후손이라서? 서윤이 그 사람처럼 실전에서 웃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냥, 200년이나 지났으니 더 버틸 힘이 없어진 걸까. 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 목소리가 들렸고, 눈을 뜨면 천장이 낯설게 느껴졌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얕은 잠에 들었다가, 6시에 다시 눈을 떴다. 다음날, 나는 창고에 가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지하 서고로 향했다. 200년 전, 마왕 토벌대의 기록이 보관된 곳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203개의 계단. 셌던 기억이 있었다. 20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이 계단을 셌다. 그때마다 숫자는 같았고, 나만 그대로였다. 관리인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대현자 서은은 2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전설로만 기억했다. 초상화 속의 얼굴로, 동상의 표정으로, 책 속의 문장으로만.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는 기억하지 않았다. "토벌대 기록을 보고 싶은데." "어느 시대 것을요?" "200년 전." 관리인이 잠시 나를 훑어보았다.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 시대를 직접 궁금해하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관리인은 별다른 말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몇 분이 길게 느껴졌다. 관리인이 낡은 서류를 꺼내왔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었다. 토벌대 명단. 대현자 한지유. 용사 황단비.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 글씨체를 알아보았다. 직접 서명했던 손글씨였다. 200년 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옆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 나란히 적으니까 좋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 아래로 다른 동료들의 이름도 있었다. 대부분 사망 처리되어 있었다. 황단비. 사망일자: 200년 전, 마왕 토벌 직후. 아니, 사망 120년 경과라는 표기가 다른 페이지에 있었다. 토벌은 200년 전이었고, 그 사람은 80년을 더 살았다. 인간이었으니 그렇게 늙어 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서류로 확인하는 게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숫자 하나가 사람의 남은 생을 설명했다. 80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었다. 어중간하게, 가끔 찾아가고 대부분 피하면서, 그렇게 80년을 흘려보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떠올랐다. 노쇠한 얼굴. 하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 손을 잡았을 때, 그 손은 뼈만 남은 것처럼 가벼웠다. 한때는 검을 쥐고도 흔들리지 않던 손이었다. "지유, 넌 늙지 않는구나." 그 말에 나는 웃지 못했다. 목이 말랐다. 대답을 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부럽지 않아. 나는 이대로 계속 널 지켜볼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방을 나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문을 닫는 순간,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봤다면 다시는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았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창고 구석에 숨어서 하루를 보냈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찾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 뒤로 120년, 나는 그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속였다. 서류를 덮었다. 손이 떨렸다. 관리인이 물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토벌대가 마지막으로 싸운 던전 위치." 관리인이 다른 서류를 찾아왔다. 지도였다. 지금은 봉인되어 있는 던전이었다. 마왕의 본거지. 지도 위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표시 옆에 작은 글씨로 '접근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 던전 최하층에서, 나와 황단비는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마왕을 베었다. 그 순간, 그 사람이 크게 다쳤다. 검이 옆구리를 깊게 갈랐고, 피가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나는 치료 마법을 걸었지만 완전히 낫지 않았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 안쪽에 남은 무언가는 아물지 않았다. 그 상처가 이후 그 사람의 수명을 갉아먹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 생각이 200년째 떠나지 않았다. 만약, 만약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200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벽이 되어 있었다. 서고를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발이 자연스럽게 그 던전 방향으로 향했다.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몰랐다. 걷는 동안 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전설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30분쯤 걸었을까. 던전 입구가 보였다. 던전 입구는 여전히 봉인석으로 막혀 있었다. 봉인석에는 오래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200년 전, 내가 직접 새긴 문양이었다. 그때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오랫동안 봉인석을 바라보았다. 손을 대면 열릴 것 같았다. 열면 무엇이 나올까. 그 사람의 기억? 그 사람의 목소리? 아니면 아무것도 없을까. 빈 던전, 그저 어둠뿐인 공간. 그게 더 두려웠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나는 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렸다. 두려웠다. 무엇이 두려운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확인하는 것이 두려운지, 확인해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 두려운지. 세 번째로 손을 뻗었을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서윤이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한참을 뛰어온 모양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창고에 안 오셔서 찾아다녔어요." "찾을 필요 없었어." "연락도 없이 사라지시면 어떻게 알아요." 서윤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 걱정이 낯설었다. 누군가 나를 걱정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100년? 150년? 아니,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숫자로도 셀 수 없을 만큼 오래전의 일이었다. "여긴 무슨 곳이에요?" 서윤이 봉인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서윤의 표정에 의아함이 번졌다. "200년 전, 여기서 마왕을 잡았어." 서윤의 눈이 커졌다. "그럼... 여기가 그 유명한..." "그래." "할머니의 할머니가 여기서..." 서윤이 말을 멈췄다. 뭔가 눈치챈 얼굴이었다. 서윤의 시선이 봉인석에서 나에게로, 다시 봉인석으로 옮겨갔다. 뭔가를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200년 전이라는 시간과, 지금 내 얼굴을 겹쳐 보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나는 봉인석에서 손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목소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는 걸 서윤도 눈치챘을지 모른다.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20일. 서윤이 마스터해야 할 시간이 20일 남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되살아난 기억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20일 안에 답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두 개의 다른 무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윤에게는 성장의 시간이고, 나에게는 붕괴의 시간이었다. 서윤이 내 옆에서 봉인석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이, 순간 그 사람과 겹쳐 보였다. 옆으로 넘어가는 머리카락의 곡선. 턱을 살짝 든 채 위를 바라보는 자세. 그런 사소한 것들이 200년 전 그 사람과 똑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서윤은 그냥 서윤이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래도 심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저기, 정말 아무 일 없으신 거죠?" 서윤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서. "아무 일도 없어." 내 목소리가 스스로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가 규칙적으로 가까워졌다. 하나, 둘, 셋. 점점 커지는 소리에 서윤의 표정이 먼저 굳었다. 본가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였다.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새겨진 문양. 서윤이 그 문양을 보는 순간 몸이 굳는 게 보였다. 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저 마차..." 마차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검은 예복을 입은 사람이 내렸다. "황서윤 후보님." 그 사람이 서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본가에서 긴급히 전할 명이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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