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낙제생, 용의 피를 깨우다

5화

대공녀는 청연문 후원, 인적 없는 정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바람이 정자 기둥 사이로 지나갔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그녀의 검은 베일이 살짝 흔들렸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서늘한 기운만은 여전했다. 나는 정자 앞에 서서 예를 갖췄다. "감옥패를 손에 넣었다고." "예." "이걸 미끼로 쓰겠다는 생각도 네가 한 거고." "예."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정자 아래 연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풍덩. "위험한 도박이다. 임지훈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 "직접 나서면 좋지요." "..." 그녀는 이번엔 웃는 듯 어깨를 살짝 떨었다. "좋다는 게 무슨 의미냐." "작은 것들만 계속 상대하다 보면, 시간만 낭비되지 않습니까. 큰 물고기가 낚여야 이야기가 빨리 끝나지요." "네 목숨을 걸고 하는 계산이다." "제 목숨 값이 궁한 건 아니시죠." "..." 그녀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정자의 등불이 흔들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한참 후, 그녀가 낮게 말했다. "허락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역룡지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개화하기 전까지는 절대 최대로 쓰지 마라. 안 그러면 네 몸이 먼저 부서진다." 그 말에 처음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몸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웅웅거리던 열기가, 그 순간만큼은 잠깐 멈춘 듯했다. "...알겠습니다." "명심해라. 화로가 뜨겁다고 무작정 장작을 던져 넣으면, 화로 자체가 갈라진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베일 자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소문이 퍼졌다. 하청 짐덩어리가 사파의 감옥패를 훔쳤다더라. 처음엔 주방 아이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가, 다음 날엔 무술 훈련장 구석까지 번졌다. 소문은 하루 만에 청연문 전체에 퍼졌고, 사흘째 되던 날 밤, 처소 앞뜰에 여섯 명의 하급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임지훈의 수하 중에서도 성질 급한 자들이었다. 횃불도 없이 몰려온 걸 보면, 은밀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물건 순순히 내놔라." 앞장선 자가 팔짱을 낀 채 이죽거렸다. 나는 목검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의 흙이 발밑에서 부드럽게 눌렸다. "밥값 정도는 받고 넘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 새끼가..." 그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여섯 개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좁혀 들어왔다. 나는 팬던트의 열기가 온몸에 도는 걸 느끼며, 위에서 아래로, 가장 정직하게 목검을 내려쳤다. 퍽! 첫 번째가 나가떨어졌다. 퍽! 두 번째가 무릎을 꿇었다. 콰아앙!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한꺼번에 담벼락 쪽으로 밀려나갔다. 남은 둘은 서로 눈치를 보다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짧은 순간, 여섯 명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숨소리가 거칠어졌지만, 몸속의 화로는 아직도 여유가 많이 남은 느낌이었다. 목검을 어깨에 걸치고, 쓰러진 그들 사이를 걸었다. 발밑에서 흙과 신음이 뒤섞였다. 나는 낮게 말했다. "돌아가서 전하십시오." "..." "제가 갖고 있는 물건, 직접 오시면 넘겨드리겠다고." 그중 한 명이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봤지만,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처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임지훈이 청연문 대전에 처음으로 나를 정식으로 호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을 전해준 아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서찰을 내밀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그의 이름으로 된 서찰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내일 정오, 연무장에서 끝을 보자." 글씨체는 짧고 굵었다.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필체였다. 나는 서찰을 접으며 쇄골의 팬던트를 매만졌다. 그것은 여전히, 조용히 뜨거웠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일 정오. 연무장. 그 두 마디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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