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카메라 렌즈 위쪽에 뜬 조그만 숫자, 시청자 수 34,721. 나는 헬멧 안쪽에 붙은 소형 디스플레이로 그 숫자가 초 단위로 오르는 걸 곁눈질로 확인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었다. 개인 방송을 시작한 지 이 년, 던전 탐험 콘텐츠로 먹고사는 스트리머치고 이 정도 시청자 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오늘 방송 잘하면 슈퍼챗 좀 들어오겠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헬멧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검은숲 던전의 47층입니다. E급 탐험자 치고는 꽤 깊이 들어온 거 아시죠?"
채팅창에 하트와 웃는 이모티콘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소라님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시네요', '47층이면 거의 기록 아니에요?', '팀 좋다ㅋㅋ 부럽다' 같은 글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며 나는 입꼬리를 조금 더 올렸다. 정작 내 옆에 선 팀원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그저 던전 특유의 압박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팀장인 박현수 오빠가 유독 시선을 피하는 게 이상했다. 평소라면 카메라 앵글 신경 쓰면서 장난이라도 한 번 걸었을 사람인데, 오늘은 시선을 바닥이나 벽에만 고정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긴장한 거려니.' 나는 그렇게 넘겼다. 47층이면 우리 팀 최고 기록이었으니, 오빠도 부담이 될 만했다.
던전 최심부 특유의 습한 공기가 목덜미에 감기고, 벽면을 뒤덮은 이끼에서 풍기는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장은 사람 키의 세 배는 되어 보였는데, 그 위쪽 어둠 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울렸다. 저 안쪽 통로에서 낮게 울리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고, 나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헬멧 렌즈 너머로 지운 언니가 지도를 펼쳐 든 채 뭔가를 현수 오빠와 눈빛으로 주고받는 게 보였다. 짧고, 은밀하고, 뭔가를 결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기, 다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묻는 순간, 지운 언니가 손에 든 지도를 접으며 낮게 말했다.
"소라야, 잠깐 여기서 대기해. 우리가 앞쪽 확인하고 올게."
그 말투가 평소와 다르게 사무적이었다. 지운 언니는 원래 나한테 존댓말 반, 반말 반 섞어가며 장난치듯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엔 그 특유의 온도가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넵! 저는 여기서 시청자분들이랑 놀고 있을게요!"
채팅창에는 여전히 웃는 이모티콘이 올라오고 있었다. '언니들 다녀와요~', '소라야 심심하겠다ㅋㅋ' 그런 댓글들을 읽으며 나는 카메라를 향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여기 검은숲 던전은 원래 D급 이상만 진입 허가가 나는 곳인데, 저희가 특별 승인받아서……" 그렇게 시청자들과 수다를 떠는 사이, 두 사람의 발소리가 통로 저편으로 멀어졌다. 뒤돌아보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마치 예정된 일을 처리하듯 걷는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등을 돌려 사라진 지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통로 저편에서 땅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겁고, 크고, 규칙적인. 처음엔 그저 던전 자체의 진동인가 싶었는데, 소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직감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낌과 동시에 헬멧 디스플레이에 붉은 경고문이 떠올랐다. [경고: 강력한 마력 반응 감지]. 나는 그 문구를 세 번쯤 읽고서야 그게 오작동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다.
'설마'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통로 모퉁이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3미터는 훌쩍 넘는 신장, 온몸이 검붉은 근육으로 뒤덮인 그것은 미노타우로스였다. 소, 정확히는 소의 머리를 닮은 두상 위로 굽은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눈동자는 새빨간 색으로 번뜩였다. 손에 쥔 도끼만 해도 내 몸통보다 두꺼웠고, 도끼날에는 이미 마른 핏자국 같은 게 눌어붙어 있었다.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 뜨거운 김을 만들어내며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거 몇 급 몬스터야, 최소 B급은 되어 보이는데.' E급 탐험자 팀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현수 오빠! 지운 언니!"
나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통로 저편에서는 그저 정적만이 흘렀고, 그 침묵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건 배치가 아니라 버림이었다는 걸. 왜, 무슨 이유로, 라는 질문을 던질 시간조차 그 순간엔 허락되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치켜드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도끼가 바닥을 내리찍으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고, 돌 조각 하나가 뺨을 스쳐 지나가며 얇은 열기를 남겼다. 채팅창은 순식간에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소라야 도망쳐!', '팀원들 어디 갔어요??', '이거 설마 방송 사고야??',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 글자들을 곁눈질로 읽으면서도 다리에 힘을 실어 뛰기 시작했다. 발밑의 돌바닥이 미끄러워서 두 번이나 균형을 잃을 뻔했고, 헬멧 안에서 내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두 번째 도끼질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방어구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 여파로 몸이 붕 떠올랐다가 벽에 부딪히면서 갈비뼈 어딘가에서 둔탁한 통증이 치솟았다. 시야 한쪽이 잠시 하얗게 점멸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일어섰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이 꺾이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게 다 방송용 근육 운동으로는 절대 대비할 수 없는 종류의 위기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스쳤다.
시야가 흐려지고, 헬멧 디스플레이에 뜬 [생명력 22%]라는 숫자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 아래로 채팅창의 글자들이 여전히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지 읽을 수도 없을 만큼 뭉개져 보였다. 미노타우로스가 느릿하게 다가오는 걸음, 도끼를 다시 고쳐 잡는 손, 그 도끼날에 반사되는 던전 안쪽의 푸른 발광석 빛까지,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눈에 새겨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재차 치켜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도 어이없게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거 방송 역대 최고 조회수 나올 것 같은데.' 죽음 앞에서까지 조회수를 걱정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게 지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하게 익숙한 생각이기도 했다. 도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 궤적을 지켜보았고, 그리고 세상이 새하얗게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