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동굴 밖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먼 곳에서 울리는 진동 같았던 것이 이제는 바닥을 타고 올라와 내 등뼈까지 흔드는 실체가 되어 있었다. 쿵, 쿵, 쿵. 그 규칙적인 리듬이 마치 거대한 시계추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 그런 한가한 비유나 떠올리고 있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도훈은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나를 향해 짧게 명령하듯 말했다.
"뒤로 물러서 있으시오. 다치지 않도록."
그 말투는 여전히 어색하고 옛스러웠지만, 눈빛만큼은 사냥감을 앞둔 맹수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방금까지 나를 돌봐주던 손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이 사람 진짜 뭐지.' 협회에서 몇 년을 굴러먹으면서 온갖 각성자들을 봤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발목에서 치솟는 통증에 다시 신음을 흘렸는데, 그 사이 동굴 입구로 첫 번째 미노타우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나를 습격했던 개체보다는 확실히 작았지만, 그래도 3미터에 육박하는 몸집이었다. 검붉은 털가죽 아래로 근육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고,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콧김이 동굴 안 서늘한 공기를 순식간에 데웠다. 저 콧김만으로도 벌써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으니, 실제로 저놈과 부딪히면 어떤 꼴이 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도훈이 지팡이를 앞으로 뻗자, 지팡이 끝에서 푸른 문양이 빙글빙글 돌며 떠올랐다. 마법진이라고 해야 할지, 문자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 도형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며 회전했고, 그 문양에서 뻗어나간 빛줄기가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의 발목을 휘감아 바닥에 고정시켰다. '저게 무슨 마법이지, 협회에서도 못 봤는데.' 나는 협회에서 배운 마법 체계를 머릿속으로 뒤적여봤지만, 저런 방식의 결속 마법은 어떤 교본에도 나온 적이 없었다. 속박계 스킬이라면 대부분 사슬이나 그림자를 이용하지, 이렇게 순수한 빛의 형태로 존재를 고정시키는 방식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광경에 넋이 나가 있었지만, 상황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가 발목을 휘감은 빛을 도끼로 후려쳐 끊어내며 포효했고, 그 진동만으로 동굴 벽에서 흙먼지가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도끼날이 빛의 결속을 잘라내는 순간 파앙, 하는 파열음이 터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도훈은 뒤로 몸을 낮추며 지팡이 끝을 바닥에 짚었고, 그 순간 그의 발밑에서 붉은빛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처음엔 그저 조명 같은 잔잔한 빛이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화염으로 치솟아 미노타우로스의 다리를 태우는 걸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눈에 박혔다. 저게 정말로 사람 하나가 다룰 수 있는 화력인가. 협회 랭킹 상위권 화염계 각성자들도 저 정도 규모의 화염구를 이렇게 즉각적으로 뽑아내진 못했다.
그때 두 번째, 세 번째 미노타우로스가 잇따라 동굴 입구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좁은 입구로 세 마리나 되는 거대한 몸집이 서로 밀치듯 들어오는 광경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절망적이었다. 도훈의 표정에도 처음으로 긴장이 스치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는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이번엔 그 여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 놈은 무리요."
그가 낮게 중얼거리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붙잡았고, 그의 손바닥이 놀랍도록 뜨겁다는 걸 느끼며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거렸다. 방금까지 화염 마법을 쓴 사람의 손이니 뜨거운 게 당연한데도, 그 열기가 마치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나 스스로도 헷갈렸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딴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손 온도 따위를 신경 쓰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런 자조적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가 나를 등에 업듯 끌어안고 동굴 뒤쪽 좁은 틈으로 몸을 던졌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뒤집혔고, 그의 어깨 너머로 미노타우로스들이 서로 부딪히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등 뒤에서 도끼가 바위를 내리찍는 소리가 터졌고, 그 파편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통증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도훈은 좁은 통로를 몸을 반쯤 숙여 빠르게 달렸다. 통로 벽에 어깨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과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이 사람이 정말로 오랫동안 혼자 싸워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등을 통해 전해지는 그 박동은 빠르면서도 일정했다. 겁먹은 심장이 아니라, 이미 수백 번 이런 순간을 견뎌본 심장 같았다. 도대체 이 던전 속에서 얼마나 오래 혼자 버텨온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손을 붙잡았던 온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통로 끝에서 다시 넓은 공간이 열리는가 싶더니, 뒤따라온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좁은 틈을 억지로 부수며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며 그 거대한 몸이 바위틈을 강제로 넓히는 광경은 마치 벽 자체가 살아서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그 힘에 통로 천장 일부가 무너지며 돌덩이가 쏟아져 내렸다.
"엎드리시오!"
도훈이 외치며 나를 감싸 안았고, 그 순간 돌덩이 하나가 그의 어깨를 그대로 강타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퍽, 하는 그 소리가 마치 내 뼈에 맞은 것처럼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그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나를 놓지 않은 채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그의 팔에 힘이 살짝 풀렸다가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저 상태로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건지, 인간의 몸이 저렇게까지 버텨줄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사람 나 때문에 다쳤어.' 나는 그 순간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협회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각성자들이 다치는 걸 봤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 다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낯선 감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지금은 그것을 곱씹을 시간조차 없었다.
도훈은 어깨를 부여잡으면서도 남은 힘을 다해 지팡이를 들어 통로 입구를 향해 화염구를 쏘아 보냈다. 지팡이 끝에서 뻗어나간 불덩이가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며 날아갔고,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가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열기였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열기 뒤에 이어질 무언가였다.
무너지는 돌덩이의 소리, 미노타우로스의 마지막 포효, 그리고 도훈이 나를 붙잡은 팔의 힘. 그 모든 감각이 뒤섞여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지막으로 도훈이 나를 끌어안은 채 무너지는 잔해 사이로 몸을 던지는 감각만을 간신히 붙잡았다. 귓가로 그의 숨소리가 거칠게 스쳤고, 그 숨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끝으로, 세상이 하얗게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