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골목에서 눈뜨니 소녀였다

3화

콰아아앙—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리기 전, 나는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트럭의 경적음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낮고 둔중한, 마치 커다란 짐승이 숨을 몰아쉬는 듯한 진동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상이 뒤집혔다.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 발밑에 있어야 할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하늘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그런 비현실적인 순간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했다. 침착했다기보다는 뇌가 상황을 이해하길 거부한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미터를 날아 도로 위에 처박혔는데, 등짝이 아스팔트에 짓이겨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렸는데도 통증이라는 감각이 도착하지 않았다. 죽은 건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동안에도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트럭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문을 박차고 뛰어내리는 소리, 근처를 지나던 누군가의 짧은 비명, 그리고 그 짐승 같은 진동과는 전혀 다른, 얄궂게도 또렷한 스마트폰 셔터음까지 겹쳐 들려왔는데,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있으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만 뜬 채로 하늘을 보고 누워서, 씨발 이대로 뒤지는 건가 하는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픔이 오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몇 초는 몸 전체가 산산조각 난 것처럼 감각이 뒤죽박죽이었다. 어디가 부러졌는지, 어디가 찢어졌는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신호가 뒤엉켜 들어왔는데, 그 뒤죽박죽했던 감각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누가 몸속에서 퍼즐을 재조립하는 것처럼, 통증이어야 할 자리에 대신 뜨끈한 열기가 차오르며 몸 전체로 번져나갔다. "학생! 학생 괜찮아요?!" 트럭 기사가 다급하게 외치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손길에 반응해서 눈을 제대로 뜨자,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기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겁을 먹은 상태였다. —사람 하나 치어 죽인 줄 알았겠지.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근데 아저씨, 그거보다 더 놀란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건 모르시겠지. 몸을 일으켜 보니 정말로 아프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있어야 할 아픔의 잔상조차 없었다. 방금까지 몇 톤짜리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혔는데, 팔을 들어보고 다리를 굽혀봐도 상처 하나 없었고, 심지어 입고 있던 옷조차 찢어지거나 늘어난 흔적이 전혀 없었다. 트럭 앞유리에는 금이 가 있는데 내 몸은 멀쩡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어... 저..." 뭐라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얼버무렸다. 트럭 기사는 오히려 더 당황한 얼굴로 내 팔과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게, 분명 정면으로... 아니 잠깐만, 병원 가야 해요, 지금 당장! 119 불러야지, 이거 이상이 있을 텐데!" 목소리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다가, 그 사람이 멀쩡하게 일어나 앉는 걸 보고 안심 반, 그리고 이게 뭔가 하는 의심 반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렇게 걱정되는 표정 짓지 마세요, 아저씨. 그거 나한테 더 안 좋아요. 사람들 시선 끄니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근처 상가에서 나온 사람들, 지나가던 행인들, 하나같이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구경하는 얼굴이었는데, 몇몇은 벌써 스마트폰을 들어 이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렌즈가 나를 향해 겨눠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건 안 된다. 지금 이 상황이 인터넷에라도 올라가면, 조회수 몇 개 붙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였다. 방금까지 나를 뒤쫓던 경찰이 이 영상을 보게 되면, 곧바로 신원 조회에 들어갈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조회의 끝에 뭐가 나올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 몸의 진짜 신원이 뭔지도 모르는 판국에. "저 괜찮아요, 죄송해요, 가볼게요." "아니 학생, 잠깐만요! 이거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잖아요!" 기사가 다급하게 팔을 뻗었지만, 나는 슬쩍 몸을 틀어 그 손을 피하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기사가 뭐라 소리치는 게 들렸는데, 그 소리를 뒤로하고 달리는 내 다리는 이상하게 멀쩡했다. 방금까지 트럭에 정면으로 치인 사람 다리가 이렇게 힘이 넘칠 리가 없는데. 몸속에는 여전히 미열 같은 게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고의 후유증이라기보다는, 뭔가 훨씬 근본적인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몸 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걸 품고 있었던 것처럼. 달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혔는데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냥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이 몸이 원래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몇 번을 자문해봐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아까 정수리에서 느꼈던 그 이물감이 다시 떠올랐다. 뿔 같은 게 솟아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던 그 감각. 트럭에 부딪히기 직전에 느꼈던, 짐승이 숨을 몰아쉬는 듯한 그 진동도 어쩐지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이 몸의 정체와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냥, 알 수 없었다. 골목을 몇 개 지나 인적이 드문 뒷길로 들어서고서야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이 가빠지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체력이 금방 돌아왔고,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방금 그 사고를 겪고 이렇게 멀쩡하게 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친..." 작게 중얼거리며 손등을 살펴보았다. 트럭에 부딪힌 자리쯤 될 만한 부위였는데, 흠집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만 남아있었다. 옷을 걷어 팔뚝이며 어깨까지 살펴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멍조차 없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몸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나는 지금 뭐가 된 걸까. 단순히 성별과 외모만 바뀐 게 아니라, 몸 자체가 아예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 지갑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이제는 내 몸이 정확히 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이 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니. 하-. 이게 무슨 꼴인지. 일단은 배가 고팠다. 사고니 뭐니 정신없는 와중에도 배는 어김없이 고파오는 게 참 신기했는데, 그거보다 더 급한 건 어딘가 몸을 숨길 곳이었다. 이 몰골로 계속 큰길을 돌아다니다간 또 다른 시선을 끌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저 앞쯤에서 낡은 다세대주택 앞에 택배 상자를 든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회색 조끼에 커다란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눌러도 응답이 없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놓고 있었다. 택배기사였다. 그는 마침 그쪽으로 걸어오던 나를 발견하고는, 반쯤은 지쳤고 반쯤은 반가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학생, 혹시 이 집 사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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