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침 알람이 세 번째로 울렸을 때,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창밖으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방 안 공기는 따뜻했고, 어딘가에서 고소한 냄새가 흘러왔다.
(또 늦잠 잤네.)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십 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별일은 아니었지만,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던 탓인 것 같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이설이 프라이팬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빛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익어가는 소리가 치이익 하고 났다.
"도윤 씨, 일어났어요?"
이설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언제 봐도 눈부셨다.
"어, 좋은 아침."
나는 식탁 의자에 앉으며 짧게 대답했다.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설은 접시에 계란말이를 옮겨 담으며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런 평온함이... 낯설면서도 편해.)
이설과 함께 살게 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서로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침을 함께 먹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아침마다 부엌에서 움직이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도마 위에서 칼이 부딪히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어느새 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계란말이랑 된장국이에요. 도윤 씨가 좋아하잖아요."
"고마워."
짧게 대답했지만, 이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듯 다시 웃었다.
식탁 위로 김이 오르는 된장국 냄새가 퍼졌다.
나는 숟가락을 들며 창밖을 바라봤다.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벚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 풍경이었다.
이설이 맞은편에 앉으며 자신의 몫을 덜었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는 그녀의 모습이,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평범함 속에서도 끝없이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이 세계는 원래 마법소녀들의 세계였다.
소녀들이 변신하여 악을 물리치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애니메이션 속 세계.
그리고 나는, 남자였다.
남자는 이 세계의 시스템상 절대로 마법소녀가 될 수 없었다.
마법 자체를 받아들일 몸도, 영혼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다른 것을 갖고 있었다.
마법에 대한 완전한 면역.
좋게 말하면 축복이고, 나쁘게 말하면 저주였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축복이라 부르기엔 너무 외로웠고, 저주라 부르기엔 너무 다행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이설이 그릇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설거지 소리가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거리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다.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
옆집에 사는 소녀였다.
밝고 순수한 성격으로, 나를 볼 때마다 오빠라고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도 창밖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방을 멘 채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아직은 그저 평범한 여고생처럼 보였다.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답했다.
(저 아이가 언젠가 각성할 텐데.)
원작에서 한여름은 마법소녀 아이리스 시리즈의 초대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코드네임 선샤인.
그리고 언젠가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뒤로하고, 자신의 운명을 마주해야 할 아이였다.
그 순간이 오면, 저 밝은 웃음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도윤 씨, 무슨 생각해요?"
이설이 다가와 소파 옆에 앉으며 물었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이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창밖을 함께 바라봤다.
그 침묵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살짝 내 어깨에 닿았고, 나는 그 온기를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
그날 밤, 나는 다시 그 꿈을 꿨다.
온통 검은 공간이었다.
발밑도, 하늘도, 사방이 전부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명백히 악의로 가득한 존재였다.
(안 돼... 오지 마.)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목이 마치 검은 안개 그 자체에 붙들린 것처럼 무거웠다.
검은 손이, 아니 손이라 부를 수도 없는 무언가가 내 목을 향해 뻗어왔다.
숨이 막혔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또 그 꿈이야.)
명혼단.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떨렸다.
전생하기 전,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몸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압도적인 위협인지를 몸으로 새기게 되었다.
여러 행성을 정복하고,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자원으로 삼는 우주의 침략자들.
그들이 사용하는 암흑귀는 이 세계의 마법소녀들조차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명혼단이라는 조직은, 단순한 악의 집단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하고 체계적인 무언가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갔다.
어두운 거실에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은은한 빛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설의 방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나는 이런 세계에 떨어진 걸까.)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눕고서도 한참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무늬를 세듯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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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평소처럼 거리를 걷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 시내로 나가는 길이었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사람들이 오가고, 상점가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빵집 앞을 지날 때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코를 스쳤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골목을 하나 지나칠 때, 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뭐지, 이거.)
공기가 살짝 무거워진 것 같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도 평소처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렸고, 상점가의 음악은 여전히 흥겹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피부에 닿는 바람마저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낯선 파문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에 완전히 면역인 내가 이런 걸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원래 이런 종류의 기운은 마법사나 마법소녀들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설마... 이게 그거야?)
나는 이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암흑귀가 강림하기 전, 종종 이런 미세한 기운의 뒤틀림이 감지된다고 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삐걱거리는 듯한, 낯선 파문 같은 것.
그녀는 그 감각을 설명하며, 마법소녀들조차 그것을 놓치기 쉽다고 했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집으로 돌아가 이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그런데 그 순간, 골목 끝 그늘진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스윽.
분명 사람의 형체는 아니었다.
검고 흐릿한, 마치 그림자가 스스로 일어난 듯한 형체가 벽을 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그 형체와, 지금 눈앞에서 사라진 그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진짜였구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어디선가 다시 그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늘진 골목 안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