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철컥.
팀장이 도장을 찍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렸다.
"오늘부터 계약직 자문이야."
팀장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본업은 그대로 유지하고, 남는 시간에 백서윤 씨 자료 분석만 도와주면 돼. 월급은 따로 나가고, 계약 기간은 일단 3개월."
나는 도장 찍힌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8년 만에 처음 생긴, '자료실 직원' 말고 다른 직함이었다.
자료실 직원 이도현. 그 앞에 뭔가가 하나 더 붙는 게 이렇게 낯설 줄은 몰랐다.
"싸인은 여기, 여기."
팀장이 손가락으로 두 군데를 짚었다.
"참고로 이거 실패하면 원래 자리로 그냥 복귀야. 부담 갖지 말라는 소린데, 부담 가지라는 소리로 들리지?"
"조금요."
"흐흐, 잘하겠지. 8년 동안 서류만 넘기던 놈이 갑자기 실전으로 나가는 거니까 나도 좀 궁금하긴 해."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첫 훈련장은 길드 소속 시뮬레이션 룸이었다.
지하 3층, 벽 전체가 스크린으로 덮인 원형 공간.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서윤이 헤드셋을 쓰고 가상 던전에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모니터로 지켜봤다.
모니터 앞에는 관제 담당자와 나, 그리고 빈 의자 하나가 더 있었다.
"3구역 지형 재현 중."
관제 담당자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화면 위로 절벽과 협곡이 픽셀 단위로 그려졌다.
화면 속 서윤이 바람을 일으켜 몸을 띄웠다.
치맛자락 같은 바람 궤적이 화면 가득 번졌다.
나는 어제 서윤의 기억에서 본 장면과 지금 화면을 겹쳐 보았다.
왼발, 호흡, 바람의 타이밍.
셋 중 하나가 반 박자씩 어긋나 있었다.
'저기다.'
"지금이에요."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왼발 축을 반 박자 먼저 들어오게 하세요."
관제 담당자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 눈빛엔 '이 사람이 뭘 안다고'라는 게 살짝 묻어 있었다.
화면 속 서윤이 자세를 바꿨다.
몸이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의 궤적이 한 번에 곧게 뻗었다.
"오."
관제 담당자가 감탄했다.
"이거 방금 뭐예요? 밸런스 수치가 확 올라갔는데."
"기록에 있던 겁니다."
나는 짧게만 답했다.
서윤이 시뮬레이션을 끝내고 나와 헤드셋을 벗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방금 그거, 확실히 나았어요.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없어졌어요."
"세 번 더 확인해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까다롭네요."
서윤이 픽 웃었다.
"보고서 쓰는 사람은 다 그렇게 까다로워요?"
"자료실 8년 동안 배운 거예요. 한 번 맞았다고 다 맞는 게 아니거든요."
그때 훈련장 문이 열렸다.
텅.
문이 벽에 부딪힐 정도로 세게 열렸다.
방송 카메라와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익숙했다.
강현우.
8년 전 감정식장에서 나를 조롱했던 그 사람.
지금은 SS랭크, 던스타TV 구독자 300만.
그때보다 어깨가 더 벌어졌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서윤 씨, 여기 있었네."
강현우가 넉살 좋게 다가왔다.
"촬영 협조 건 때문에 왔어요. 근데..."
강현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어? 도현이 아니야?"
"오랜만입니다."
나는 짧게 인사했다.
"아직 여기 있어? 대단하네, 진짜."
강현우가 웃었다. 8년 전과 똑같은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강당을 가득 채웠던 그날의 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렸다.
"기록 등급, 아직도 F인가?"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강현우 씨, 지금 도현 씨는 제 자문이에요."
"자문?"
강현우가 눈을 크게 떴다.
카메라 감독이 슬쩍 렌즈 방향을 조정했다.
"이 친구가?"
그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된 감각이 다시 올라오는 걸 느꼈다.
심장이 조여왔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목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또 이거구나.'
8년 전, 강당 앞줄에 앉아 있던 백여 명의 시선. 그 시선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웃음을 터뜨렸던 순간이 겹쳐 보였다.
"뭐가 웃겨요?"
서윤이 차갑게 물었다.
"아니, 서윤 씨. 이 친구 F등급이야. 최하급. 던전은커녕 감정 장치 앞에서 손 얹은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해."
강현우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신입 때 이 친구 감정받는 거 봤거든. 강당이 그때 웃음바다였어. 스킬이 없다고 판정 나오는 순간, 다들 배를 잡고 웃었잖아."
서윤이 나를 쳐다봤다.
부정도 긍정도 없는 눈빛이었다.
"그때 얘기, 도현 씨한테 들었어요."
"그래?"
강현우가 다시 웃었다.
"그럼 잘 아네. 이 친구 실력이 딱 그 정도야. 실력이 아니라, 실력이 없다는 게 실력이지. 킥킥."
촬영 스태프가 카메라를 살짝 돌렸다.
혹시 방송에 나갈까 봐서였다.
붉은 녹화등이 여전히 깜빡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강당 밖으로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손끝이 차가운 채로, 나는 머릿속으로 서류철 하나를 떠올렸다.
지난달 자료실로 들어온 사고 보고서 뭉치. 그중 한 장.
"강현우 씨."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하게 나왔다.
"네?"
"지난달 방송에서 4구역 몬스터한테 밀려서 낙사 직전까지 가셨죠. 편집으로 잘렸지만."
강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웃음기가 순식간에 얼굴에서 빠져나갔다.
"...그건 어떻게 알아?"
"길드 사고 보고서는 방송 편집이랑 상관없이 다 자료실로 들어옵니다. 제가 8년 동안 정리한 서류가 그거예요."
촬영 스태프가 서로 눈치를 봤다.
카메라 감독이 슬쩍 손을 들어 촬영을 멈추려는 시늉을 했다.
"그날 밀린 이유는, 하강기류를 상승기류로 판단해서 각도를 잘못 잡은 거였습니다. SS랭크치고는 실수치고는 좀 컸죠. 보고서에는 '판단 지연 1.8초, 낙하 거리 22미터, 구조 인력 투입'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그건 순간 판단 오류였고..."
강현우가 말을 더듬었다.
"오류도 실력의 일부죠. 저는 그냥 자료를 읽는 F등급인데, 방금 그 자료를 읊으니까 SS랭크가 말을 더듬네요."
정적이 흘렀다.
서윤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관제 담당자도 모니터 뒤에서 어깨를 살짝 떨었다.
강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자식이..."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손이 살짝 올라갔다.
순간 공기가 팽창하는 느낌이 들었다.
훈련장 안의 온도가 한순간 낮아진 것 같았다.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발은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거기까지 하세요."
서윤의 목소리가 훈련장을 갈랐다.
동시에 바람이 낮게 일었다. 강현우의 발밑 먼지가 흩어졌다.
바람의 결은 아까 시뮬레이션 화면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경고입니다."
강현우가 손을 내렸다.
숨을 몰아쉬며 카메라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촬영, 나중에 다시 오죠."
그가 스태프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훈련장에 울렸다.
쾅.
서윤이 나를 쳐다봤다.
"방금 그거, 진짜였어요?"
"네?"
"그 낙사 직전 얘기."
"네. 보고서에 있었어요. 22페이지, 3항."
서윤이 잠깐 나를 뚫어보다가, 픽 웃었다.
"도현 씨,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네요."
"저는 그냥 자료를 읽었을 뿐입니다."
"그 자료를 그 순간에 딱 꺼내서 쓰는 게 무서운 거예요."
나는 손끝이 아직도 떨리는 걸 느꼈다.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고,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8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되받아친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에서 뭔가 확실해졌다.
『기록』이라는 스킬. 이건 단순히 종이를 정리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훈련장을 나서면서 서윤이 물었다.
"저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놀린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긴 얘기예요."
"짧게 해줘요. 저 원래 긴 얘기 싫어해요."
"8년 전에 등급 판정 받는 날, 저 사람이 관객 중에 있었어요. 제가 F등급 나왔을 때 제일 크게 웃었던 사람이 저 사람이었고요."
서윤이 잠깐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오늘 좀 갚은 거네요."
"조금이요."
그날 밤, 나는 집에서 다시 감정서를 꺼냈다.
방 안엔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고,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이번엔 손을 얹지 않았다.
대신 서윤의 명함을 만졌다.
웅.
또 그 진동.
손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팔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 장면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도, 소리도, 색채도 없었다.
대신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전송.'
나는 그 단어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전송. 전송. 전송.
기록한 걸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경험이라면.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명함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만약 이게 정말 가능하다면.
내가 본 것을, 서윤의 몸에 그대로 심을 수 있다면.
그건 F등급짜리 '기록'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이름이 필요한 무언가였다.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지나갔다.
나는 명함을 내려놓지 못한 채, 다음 순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