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면접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창문도 없고, 벽은 온통 회색이었다. 긴 테이블 뒤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운데 중년 여성 하나, 양옆으로 남자 둘. 셋 다 서류를 앞에 펼쳐 놓고 있었고, 그 서류 맨 위에 붙은 사진 한 장이 유독 눈에 밟혔다.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지금 이 몸의 얼굴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카메라 각도 때문인지 보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진 속 강도윤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강도윤보다 턱선이 좀 더 갔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강도윤 씨, 앉으세요."
중년 여성이 말했다. 이름표에 '기획팀장 오세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다리 감각을 다시 확인했다. 이 몸에 들어온 지 아직 반나절도 안 됐다. 걸음걸이는 어색하게라도 익숙해졌는데, 앉는 자세는 매번 낯설었다.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달랐다. 골반 위치가 달랐다. 이전 몸이었으면 이런 걸 신경 쓸 일도 없었을 텐데.
앉으면서 속으로 계산했다.
지금 이 몸으로 여기 서류에 적힌 강도윤이라는 이름과 실제 내 모습이 안 맞는다는 걸 저들이 알아챈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아니, 쫓겨나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사칭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세연 팀장은 서류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프로필 사진이랑 좀 다르네요."
망했다.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성형했다고 할까. 아니, 그건 너무 빤한 변명이고. 조명 때문이라고 할까. 그것도 어설프고.
"아, 최근에 좀……"
말을 하다가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서 멈췄다.
"메이크업 스타일 바꿔서."
오세연 팀장이 먼저 답을 던져줬다. 그냥 그렇게 넘겼다. 서류에 뭔가 체크하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좋아.
일단 첫 관문은 넘겼다. 심장이 아직도 쿵쿵 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티가 안 났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경력 보니까 IT 회사 다니셨네요. 개발자셨어요?"
"기획 쪽이었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로 삼 년."
이건 진짜였다. 서류에 적힌 이력 중에 유일하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원래 강도윤의 경력인지, 아니면 이 서류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조작된 건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실제로 겪은 삼 년이 거기 그대로 적혀 있었다.
"버튜버 쪽이랑은 거리가 있는데, 왜 지원하셨어요?"
옆에 앉은 남자 면접관이 물었다. 안경을 낀 쪽이었다.
여기서 아까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몸이 바뀐 채로 정신을 차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면접장 앞이었고, 서류에 내 얼굴이 아닌 얼굴이 붙어 있었고 — 이런 걸 다 말하면 정신병원에 가야 할 판이었다. 대신 진짜 이유의 절반쯤만 골라 답했다.
"콘텐츠 기획을 데이터 기반으로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시청자 이탈 구간 분석이나, 라이브 방송 실시간 반응 패턴 같은 걸 다뤄봤고요."
오세연 팀장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이건 좋은 신호였다. 면접관이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는 건, 관심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회사원 시절에 면접을 백 번은 넘게 봤으니 이 정도는 몸으로 안다.
"구체적으로요?"
여기서부터는 내 진짜 무기였다. 나는 회사원 시절 데이터 분석했던 걸 그대로 풀었다.
"보통 버튜버 채널들, 방송 시작 십오 분 안에 이탈률이 가장 높습니다. 초반 온보딩 콘텐츠가 약하다는 뜻이고요. 저라면 첫 오 분 안에 시청자가 채널에 남을 이유를 명확히 심어주는 구조를 짤 겁니다."
남자 면접관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 쓴 쪽이 아니라 반대쪽, 계속 말없이 서류만 보던 남자였다. 그가 처음으로 뭔가 메모를 했다.
"수치로 말씀하실 수 있나요? 이탈률이 정확히 어느 정도라고 보세요."
오세연 팀장이 던진 질문이었다. 압박이었다. 숫자를 못 대면 방금 한 말이 그냥 허풍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채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십오 분 지점에서 삼십에서 사십 퍼센트가 빠집니다. 그 지점에 하이라이트 될 만한 이벤트나 티저를 심어두는 게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고요."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사실 이건 삼 년 내내 내가 회의실에서 백 번쯤 우려먹은 논리였다. 업종만 바뀌었지, 논리 구조는 그대로 갖다 붙이면 됐다.
오세연 팀장이 서류에 뭔가를 다시 적었다. 이번엔 좀 더 길게 적었다.
"최근 트렌드는 어떻게 보세요?"
이 질문이 나올 걸 알았다.
사실 나는 미래 얘기를 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몇 달 뒤 버튜버 업계에 터질 큰 이슈들을 신문 기사로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었다. 회사 다닐 때 점심시간마다 습관적으로 넘겨보던 뉴스 피드에, 이 바닥 얘기가 종종 흘러들어왔었다. 그걸 지금 아는 척 풀 수는 없었지만, 흐름만 살짝 얹으면 됐다.
"단기적으로는 숏폼 재활용이 중요해질 겁니다. 라이브 방송 클립을 실시간으로 잘라서 배포하는 게 채널 성장 속도를 좌우할 거고요."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건 좀 조심스럽지만."
말을 잠깐 끊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다 나한테 붙었다. 이 정적을 이용해야 했다.
"버튜버 개인 신원이나 실루엣이 갑자기 바뀌는 이슈가 생길 때 대응 매뉴얼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말하면서 스스로도 소름이 돋았다. 지금 내 상황을 은근슬쩍 정당화하고 있었다. 뭘 대비하냐고, 나부터가 지금 신원이 바뀐 채로 앉아 있으면서.
오세연 팀장이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물었다.
"신원이 바뀐다는 게 무슨 뜻이죠?"
"예를 들면, 목소리나 외형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요. 성형이든, 다른 이유든."
다른 이유든, 이라는 말에 힘을 좀 실었다. 회피가 아니라 정면 돌파였다. 어차피 저 사람들이 진짜 이유를 알아챌 방법은 없었다. 알아챌 수 없는 걸 굳이 숨기려고 애쓰다가 말이 꼬이는 것보다는, 진실의 언저리를 태연하게 밟고 지나가는 게 나았다.
역시.
먹혔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뭔가 적었다. 안경 쓴 면접관도 볼펜 끝으로 자기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오세연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 낌새였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여기서 몇 개 질문만 더 잘 넘기면, 오늘 이 몸으로 저지른 첫 사고는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경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니, 실제로 컸는지는 몰라도, 방 안의 정적이 워낙 팽팽했던 탓에 그렇게 느껴졌다.
면접관 세 명이 동시에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세 번 났다.
"대표님."
오세연 팀장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한 톤 높아졌다.
나도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다리가 아직 낯선 몸이라 살짝 휘청였는데,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무릎 뒤쪽 근육이 순간적으로 긴장했다가 풀리는 감각이 낯설게 지나갔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슈트가 몸에 딱 맞았고,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셔츠 첫 단추까지 풀어놓은 채였는데, 그게 흐트러진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로 보였다. 표정에도 힘을 뺀 여유가 흘렀다.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방 안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놓는 사람이었다.
"계속하세요."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명령이라기보다는 그냥 흘러나오는 말투였는데도, 방 안의 세 사람은 마치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서준혁이라는 이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회사 홈페이지 대표 인사말에서 본 얼굴이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인상이 강했다. 사진에서는 그냥 웃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웃음 뒤에 뭔가 계산이 깔린 눈빛이었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와 뒤쪽 벽에 등을 대고 팔짱을 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에 뭔가 있었다.
놀라움이 아니었다.
확인, 같은 것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자리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을지 알고 있었다는 듯한 눈빛.
시선이 내 얼굴 위에서 잠깐,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서류로 옮겨갔다. 아니, 서류를 보는 게 아니었다. 서류를 보는 척하면서 계속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각도, 그 온도.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심함이었다.
오세연 팀장이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질문을 이어가려 했다.
"그럼, 강도윤 씨. 콘텐츠 방향성 관련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혁이 벽에서 등을 떼고 테이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오 팀장님."
"네, 대표님."
"이 지원자, 제가 좀 더 얘기해봐도 될까요."
방 안 온도가 순간적으로 몇 도쯤 내려간 느낌이었다.
오세연 팀장이 나를 한 번, 서준혁을 한 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 쓴 면접관과 다른 남자 면접관도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조용히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판단이 안 섰다. 대표가 면접에 직접 끼어드는 게 흔한 일은 아닐 텐데, 하필 내 순서에.
망했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