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딸깍.
자물쇠가 스스로 열렸다.
그럴 리가.
분명히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물쇠가 제 발로 열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보기까지 했는데 열쇠 구멍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미 열려 있었으니까.
혹시 불량품인가. 요즘 다이소 자물쇠 퀄리티가 떨어졌다더니 이건 다이소도 아니지 않나. 자세히 보니 브랜드도 없는, 어디서 주문 제작한 것 같은 낡은 쇳덩이였다. 이런 걸 인터넷 최저가로 샀을 리도 없고. 할아버지가 직접 대장간에서 맞췄나?
일단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오래된 나무 문이 신음을 냈다. 마치 오랫동안 아무도 열지 않았던 것처럼,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유독 서글프게 들렸다. 이 집 자체가 그런 느낌이었다. 오래 방치된 절, 아니면 폐업한 무당집 같은.
방 안은 어두웠고 향냄새 같은 게 옅게 감돌았다. 절에서 나는 향냄새보다는 조금 더 씁쓸하고, 뭔가 화학적인 향이 섞인 냄새였다. 아로마 디퓨저와 제사상의 어중간한 절충안이라고 해야 할까.
[시편 139:12, 주에게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나니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이다]
그런데 이 방은 낮에도 밤 같았다. 성경 말씀을 배신하는 인테리어였다. 창문이 있긴 한데 두꺼운 암막커튼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어서, 대낮에 여기 들어오면 한밤중이라고 착각할 수준이었다. 하나님, 여기는 예외로 쳐주십시오.
스위치를 찾아 켜자 방 안이 드러났다.
책장, 낡은 마법서 같은 책들, 그리고 한가운데 놓인 작은 침대.
책장을 흘깃 봤는데 제목이 다 한자랑 라틴어 섞인 이상한 것들이었다. 「연금술 대전」, 「소환진 개론」 같은 게 꽂혀 있는 걸 보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판타지 소설 덕질을 하셨나보다. 요즘 노인분들도 라이트노벨 많이 읽으신다더니.
그 침대 위에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하얀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고, 눈을 감은 채로. 마치 코스프레 행사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차림이었다. 십 대 초반,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피부가 이상하게 하얗고 매끈해서 살짝 인형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건 조명 탓이라고 생각했다.
숨은 쉬고 있었다. 다행히 살아 있었다.
근데 이 집에 애가 왜 있어?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유괴, 감금, 뭔가 심각한 범죄의 냄새가 났다. 신고를 해야 하나, 경찰서 번호가 뭐였지, 112였나 119였나 하는 생각까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할아버지한테 숨겨둔 손녀가 있었나? 아니면 무슨 종교단체에서 위탁받은 아이인가? 그것도 아니면 최근 유행하는 코스프레 카페 알바생이 여기서 자다가 그대로 방치된 건 아닐까.
작은아버지가 모르는 사촌 동생?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사람이란 참 편리하게 자기 좋은 대로 결론을 내는 존재구나 싶었다.
조용히 다가가 아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저기, 괜찮아?"
아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금빛에 가까운 노란 눈동자였다. 사람 눈치고는 너무 진했다. 렌즈인가 싶어서 순간 눈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는데, 렌즈 특유의 경계선 같은 게 전혀 없었다. 그냥 원래 저런 색이라는 뜻이었다.
"...도현님."
첫마디부터 내 이름을 알았다.
"어, 그래, 내가 도현인데. 너는..."
"은하입니다. 강만수 님께서 저를 만드셨습니다."
만드셨다니, 낳으셨다는 말을 이상하게 표현한 건가 싶었다. 요즘 애들은 부모님을 창조주라고 부르나. 그것도 나름 존경심 있는 표현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저는 호문쿨루스입니다."
호문쿨루스?
그게 무슨 아이돌 그룹 이름인가. 아니면 최근에 유행하는 서브컬처 밈인가. 확실히 요즘 초등학생들 아는 게 나보다 많다는 소문은 들었다.
일단 나는 그 단어를 한국어로 못 알아들은 척, 그냥 웃으며 넘겼다.
"아, 그래. 하여튼 조카였구나. 반갑다."
은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 동작이 어딘가 어색했다. 목이 마치 인형처럼 뚝 끊어지듯 움직였다.
"조카가 아니라 호문쿨루스입니다만."
"응응, 그래."
나는 대충 그 말을 '무슨무슨 지역 사투리로 조카를 이르는 말인가 보다'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경상도에 이런 사투리가 있었나. 아니면 전라도? 어디든 상관없었다.
선의는 원래 이렇게 오해를 낳는다.
그때 방구석에서 뭔가 움직였다.
검은 형체가 스르륵 기어나왔다.
고양이였다. 새까만 털에 눈만 형광 초록으로 빛나는. 흡사 할로윈 소품 가게에서 파는 장식용 고양이 같았는데, 그게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NYAAAAA."
고양이가 울었는데 뭔가 사람 말 같기도 했다. 마치 외국어로 뭔가를 항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순간 고양이 통역 앱이라도 켜야 하나 고민했다.
"어, 얘도 할아버지가 키우신 고양이인가 보다."
고양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사람처럼 두 발로 서더니, 입을 열었다.
"드디어 왔구먼, 씨."
말을 했다.
고양이가 말을 했다.
그럴 리가.
나는 순간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이건 성대모사를 하는 새인가, 아니면 몰래카메라인가. 방구석에 카메라라도 숨겨져 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저기... 방금 말한 게 너야?"
"당연히 나지 냥. 안 그럼 누구냥."
목소리는 분명 고양이 발성에서 나오는데, 문장 구조는 완벽한 한국어였다. 이 조합이 묘하게 소름 돋았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이건 양이 아니라 고양이인데요, 하나님. 성경도 가끔 오타 나나 봅니다.
"저는 미르입니다냥. 강만수 님의 사역마이자 씨의 새로운 마법 선생이 될 몸이지요냥."
마법 선생이라니.
말하는 고양이가 이런 소리를 하니 오히려 더 판타지스러웠다. 만약 그냥 평범한 고양이가 "저는 수학 선생님입니다" 했으면 그게 더 무서웠을 텐데, 이건 이미 말하는 고양이라는 시점에서 개연성을 초과한 상태라 오히려 뭐든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은퇴 후 취미로 이상한 애완동물이랑 코스프레하는 아이를 키우셨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요즘 노인분들 취미가 다양해진다더니, 이건 좀 과했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본 어떤 할아버지는 드론으로 논밭 촬영하고 유튜브 하시던데, 그것보다는 특이한 취미겠거니.
실은 그게 훨씬 더 이상한 취미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자, 그럼 은하야, 미르야. 일단 이 집에서 같이 살면 되는 거지?"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만수 님의 유언에 따라, 저와 미르는 도현님을 새로운 마스터로 모시게 됩니다."
마스터라니, 회사에서도 못 들어본 호칭을 이 조그만 애한테 듣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다. 팀장님한테도 못 받아본 대접을 초등학생 외모의 호문쿨루스에게서 받는 이 아이러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오케이, 그럼 오늘부터 잘 지내보자. 저녁은 뭐 먹을래?"
은하가 냉장고 쪽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제가 요리하겠습니다. 강만수 님께서 저에게 그 기능을 부여하셨습니다."
기능이라니, 마치 로봇청소기 설명서 같은 말투였다. 냉장고 문을 열자 안에는 놀랍게도 신선한 채소와 고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은 것 같던 집에 어떻게 이런 식재료가 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 물어보게 되는 법이니까.
미르는 그 사이 소파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가 앞발로 얼굴을 씻는 시늉을 했다. 방금까지 말하던 존재가 갑자기 평범한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게 더 이상했다.
"넌 저녁 안 먹어?"
"고양이 사료면 되지요냥. 신경 쓰지 마시라냥."
사료라니. 말하는 고양이가 사료를 먹는다는 게, 뭔가 격에 안 맞는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은하가 차린 된장찌개는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농담이다. 그냥 배가 고팠던 것뿐이다. 하지만 진짜로 맛있긴 했다. 강만수 할아버지가 저 아이한테 요리 기능을 어떻게 부여했는지 몰라도, 결과물만 보면 미쉐린 스타 셋은 그냥 줘도 될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은하가 그릇을 치우는 동안,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미르를 바라봤다.
"저기, 미르야."
"뭐냥."
"너 진짜 마법 가르쳐줄 수 있어?"
"당연하지냥. 씨는 이제부터 강만수 님의 뒤를 이을 몸이니까,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지냥."
마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이 모든 게 무슨 정교하게 짜인 몰래카메라거나, 아니면 내가 어딘가에서 이상한 버섯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카와 고양이가 생겼다.
괜찮은 삶이다, 이 정도면.
말하는 고양이와 호문쿨루스라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 꿈이었다고 밝혀질 확률도 없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날 밤, 창밖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마당의 감나무 쪽에서였다.
분명 아까까지는 없던 빛이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살짝 젖히자 마당 한복판, 감나무 아래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이 집에 온 지 한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 초자연적 현상을 목격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안에 몇 개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